늦여름의 더위가 바로 엊그제 있었던 것 같은데 벌써 가을의 문턱을 넘어선 것 같다. 우리나라의 사계절은 이제 봄, 여름, 장마, 겨울이라는 말을 농담처럼 하지만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날씨를 보면, 이제 겨울이 얼마 남지 않은 느낌이 든다. 가을의 단풍과 낙엽 그리고 맑고 파란 하늘이 자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소중하게 느끼게 된다.
`이렇게 계절은 쉽게 오가는데 우린 또 얼마나 어렵게 살아가야 하는지~'라는 노래가사가 이 가을에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병마와 힘들게 싸우고 있는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환자들에게는 이 가을의 풍경은 분명 그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의대생 시절 허구한날 치러지는 시험에 몸살을 앓았었는데 의사면허를 딴 후 지긋지긋한 시험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나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모두 시험문제였다. 환자들은 애매모호한 증상을 이야기를 하는데 의사는 어떤 수를 쓰던지 병명을 맞추어야 한다. 지금처럼 첨단의 영상장비가 없던 시절이야 오진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현재에는 오진을 용납해 주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중요한 진단이 늘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의사의 존재는 환자가 있기 때문이다.이전 시대의 의사들이 병명을 찾기 위해 신체의 이학적 검사와 환자의 증상을 듣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면, 현재는 CT, MRI 같은 영상장비나 혈액검사 등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다. 즉, 현대의 의사들은 환자의 병을 보고 치료하는데 중점적으로 노력하는 반면에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실존적인 가치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년 전 나는 모야모야병을 앓고 있는 어린아이를 수술하는데 유명한 TV 프로그램에서 수술 장면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요청을 하였고, 환자의 부모도 흔쾌히 허락하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아이의 어머니가 같은 모야모야병으로 나에게 수술 받았던 환자였고 상태가 호전되어 아이도 나에게 수술을 부탁했다. 다행히 수술이 잘되고 아이도 상태가 좋아져서 퇴원하였다. 그 이후에 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이 방송이 나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됐다. 방송의 소제목은 `엄마와 개똥벌레' 이었는데 내용 중에는 수술 전 아버지의 기도하는 모습과 괴로워하는 모습, 모야모야 환자였던 어머니는 병을 자식에게 물려준 것에 대한 괴로움 등이 표현되었고, 뇌수술을 받기 전 힘들어 했던 가족의 모습과 의사인 나에게 믿고 기대하는 그 마음들이 표현되는 방송을 보면서 나는 눈시울을 적실 수 밖에 없었다.
환자를 가족같이 생각하라, 설명을 친절하게 잘해라, 환자를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보다는 환자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하라 등등 훌륭한 교수님들이 나에게 이야기했던 말들이 주마간산처럼 생각이 나고 참으로 내 자신이 부끄러웠었다.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의사의 설명 그 자체가 환자에게 치유의 능력이 될 수 있다.
명탐정 셜록홈즈는 조그마한 단서를 가지고 추리해내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자다. 그러한 능력은 타고났다기 보다는 많은 훈련과 학습을 통해 습득해낸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들은 셜록홈즈와 같이 환자가 제시한 단서를 통해 정확한 진단을 해내야 하고,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여 치료를 해야 하고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에 맞서야 한다. 따라서 의사는 전문분야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없어야 한다. 만약 모르는 것이 있다면 연구하여 밝혀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과연 현대의 의사들은 어느 정도로 자기의 전문분야에 대하여 알고 있을까? 환자의 생명을 걸고 벌이는 시간과의 사투에서 얼마나 빨리 방대한 의학적 지식을 머리 속에서 끄집어 내어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의학적 지식들은 단순히 얻어진 것이 아니다. 이런 지식들이 확립되기 전까지 어떤 환자들은 목숨을 내놓으면서 의사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첨단의 장비들로 진단의 정확성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판독을 하는 주체는 여전히 의사들이다. 진단장비가 하나 더 개발되면, 의사들의 지식과 연구 또한 더 늘어나게 되며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첨단기술의 맹점을 보완하는 것이 의사의 진찰이며, 오감을 이용한 섬세한 진찰을 통해 신체가 들려주는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조성진 순천향대 신경외과 교수
`이렇게 계절은 쉽게 오가는데 우린 또 얼마나 어렵게 살아가야 하는지~'라는 노래가사가 이 가을에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병마와 힘들게 싸우고 있는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환자들에게는 이 가을의 풍경은 분명 그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의대생 시절 허구한날 치러지는 시험에 몸살을 앓았었는데 의사면허를 딴 후 지긋지긋한 시험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나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모두 시험문제였다. 환자들은 애매모호한 증상을 이야기를 하는데 의사는 어떤 수를 쓰던지 병명을 맞추어야 한다. 지금처럼 첨단의 영상장비가 없던 시절이야 오진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현재에는 오진을 용납해 주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중요한 진단이 늘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의사의 존재는 환자가 있기 때문이다.이전 시대의 의사들이 병명을 찾기 위해 신체의 이학적 검사와 환자의 증상을 듣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면, 현재는 CT, MRI 같은 영상장비나 혈액검사 등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다. 즉, 현대의 의사들은 환자의 병을 보고 치료하는데 중점적으로 노력하는 반면에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실존적인 가치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년 전 나는 모야모야병을 앓고 있는 어린아이를 수술하는데 유명한 TV 프로그램에서 수술 장면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요청을 하였고, 환자의 부모도 흔쾌히 허락하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아이의 어머니가 같은 모야모야병으로 나에게 수술 받았던 환자였고 상태가 호전되어 아이도 나에게 수술을 부탁했다. 다행히 수술이 잘되고 아이도 상태가 좋아져서 퇴원하였다. 그 이후에 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이 방송이 나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됐다. 방송의 소제목은 `엄마와 개똥벌레' 이었는데 내용 중에는 수술 전 아버지의 기도하는 모습과 괴로워하는 모습, 모야모야 환자였던 어머니는 병을 자식에게 물려준 것에 대한 괴로움 등이 표현되었고, 뇌수술을 받기 전 힘들어 했던 가족의 모습과 의사인 나에게 믿고 기대하는 그 마음들이 표현되는 방송을 보면서 나는 눈시울을 적실 수 밖에 없었다.
환자를 가족같이 생각하라, 설명을 친절하게 잘해라, 환자를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보다는 환자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하라 등등 훌륭한 교수님들이 나에게 이야기했던 말들이 주마간산처럼 생각이 나고 참으로 내 자신이 부끄러웠었다.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의사의 설명 그 자체가 환자에게 치유의 능력이 될 수 있다.
명탐정 셜록홈즈는 조그마한 단서를 가지고 추리해내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자다. 그러한 능력은 타고났다기 보다는 많은 훈련과 학습을 통해 습득해낸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들은 셜록홈즈와 같이 환자가 제시한 단서를 통해 정확한 진단을 해내야 하고,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여 치료를 해야 하고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에 맞서야 한다. 따라서 의사는 전문분야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없어야 한다. 만약 모르는 것이 있다면 연구하여 밝혀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과연 현대의 의사들은 어느 정도로 자기의 전문분야에 대하여 알고 있을까? 환자의 생명을 걸고 벌이는 시간과의 사투에서 얼마나 빨리 방대한 의학적 지식을 머리 속에서 끄집어 내어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의학적 지식들은 단순히 얻어진 것이 아니다. 이런 지식들이 확립되기 전까지 어떤 환자들은 목숨을 내놓으면서 의사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첨단의 장비들로 진단의 정확성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판독을 하는 주체는 여전히 의사들이다. 진단장비가 하나 더 개발되면, 의사들의 지식과 연구 또한 더 늘어나게 되며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첨단기술의 맹점을 보완하는 것이 의사의 진찰이며, 오감을 이용한 섬세한 진찰을 통해 신체가 들려주는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조성진 순천향대 신경외과 교수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