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친구에게 느닷없이 연락이 왔다. 초등학교 시절 여학생들의 우상이었던 한 남자동창의 급작스런 죽음을 알리는 전화였다. 지난 20여년간 만나본 적은 없어도, 그 동창의 이름이며 얼굴은 기억 속에 또렷했다. 훌쩍 큰 키에 잘생긴 외모 때문에 학교우편함으로 날아오는 앳된 글씨의 `러브레터`로 여학생들을 수군거리게 만들었던 시골학교의 전교학생회장이었다.
그런 친구가 자살을 했다고 한다. 벤처 CEO로 자금줄이 끊겨 은행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고향집 과수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얘기에 이르자, 어찔한 충격으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오죽했으면 나이 마흔에 세상을 버렸을까.
전화를 끊고나서, 필자는 낡은 졸업사진첩을 꺼냈다. 소풍을 가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의 친구 얼굴 위로, 몇해 전 프랑스로 출장을 갔을 때의 한 장면이 오버랩됐다. 현지 벤처캐피털리스트(VC)들의 모임을 취재하러 갔을 때였다. 장소는 파리 최고의 번화가 중 하나인 몽파르나스의 메리디앙 호텔. `캐피털-IT'라는 이름의 투자설명회였다.
행사장 안에 들어서자, 연미복에 삐죽한 검은 모자를 쓰고 은색 탁상시계를 목에 건 남자가 서 있었다. 장소를 잘못 찾았나 두리번거리는 나를, 이 우스꽝스런 옷차림의 남자가 테이블로 안내했다. 알고보니 그는 이벤트 진행요원이었다. 옆자리의 리베라시옹 기자는 "연단에 나가 비즈니스 플랜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허용된 시간을 지나치면, 기다렸다가 물총을 쏘거나 얼굴에 대고 부풀린 풍선을 터뜨리는 일이 그의 임무"라며 웃어보였다.
심사위원석엔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앉아있었다. 이들은 마치 칸영화제 심사위원처럼 유쾌한 표정으로, 비즈니스 플랜이 소개될 때마다 점수를 매겼다. 결과는 전자투표기를 거쳐 실시간으로 집계됐고, 그날 우승(?)한 벤처사장에겐 커다란 트로피가 주어졌다.
그날 내게는 벤처투자 설명회도 마치 축제처럼 떠들썩한 이벤트로 만드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이 꽤나 인상깊었다. 남프랑스의 IT단지 `소피아 앙티폴리스'에서 올라온 젊은 CEO에게 회사의 슬로건을 묻자 `태양 아래 기술과 즐거움을 접목시키자(Mixing technology with fun in the sun)'라는 대답도 신선했다. 그는 다락방에서 바게트를 씹으며 투자자를 기다리는 배고픈 벤처사업가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정보선진국의 IT단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산과 구릉이 어울린 휴양지다. 실리콘밸리도 나무와 풀로 뒤덮인 녹지다. 그런 환경이라야 자유롭고 창의적인 벤처정신을 고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삭막한 빌딩숲에 인파로 붐비는 우리의 테헤란밸리와는 대조적인 풍경들이다.
안타까운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벤처사업도 운동경기처럼 결과만큼이나 과정을 즐기는 게임이 되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누구나 성공을 꿈꾸지만, 벤처는 실패확률이 지극히 높은 게임이다.
정말 벤처를 육성하고 싶다면,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나 교통시설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눈부신 햇살과 바람과 나무와 숲이 어우러진 자연 속에 벤처단지를 건설해야 하지 않을까. 인생도 벤처도, 즐기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 친구가 자살을 했다고 한다. 벤처 CEO로 자금줄이 끊겨 은행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고향집 과수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얘기에 이르자, 어찔한 충격으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오죽했으면 나이 마흔에 세상을 버렸을까.
전화를 끊고나서, 필자는 낡은 졸업사진첩을 꺼냈다. 소풍을 가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의 친구 얼굴 위로, 몇해 전 프랑스로 출장을 갔을 때의 한 장면이 오버랩됐다. 현지 벤처캐피털리스트(VC)들의 모임을 취재하러 갔을 때였다. 장소는 파리 최고의 번화가 중 하나인 몽파르나스의 메리디앙 호텔. `캐피털-IT'라는 이름의 투자설명회였다.
행사장 안에 들어서자, 연미복에 삐죽한 검은 모자를 쓰고 은색 탁상시계를 목에 건 남자가 서 있었다. 장소를 잘못 찾았나 두리번거리는 나를, 이 우스꽝스런 옷차림의 남자가 테이블로 안내했다. 알고보니 그는 이벤트 진행요원이었다. 옆자리의 리베라시옹 기자는 "연단에 나가 비즈니스 플랜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허용된 시간을 지나치면, 기다렸다가 물총을 쏘거나 얼굴에 대고 부풀린 풍선을 터뜨리는 일이 그의 임무"라며 웃어보였다.
심사위원석엔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앉아있었다. 이들은 마치 칸영화제 심사위원처럼 유쾌한 표정으로, 비즈니스 플랜이 소개될 때마다 점수를 매겼다. 결과는 전자투표기를 거쳐 실시간으로 집계됐고, 그날 우승(?)한 벤처사장에겐 커다란 트로피가 주어졌다.
그날 내게는 벤처투자 설명회도 마치 축제처럼 떠들썩한 이벤트로 만드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이 꽤나 인상깊었다. 남프랑스의 IT단지 `소피아 앙티폴리스'에서 올라온 젊은 CEO에게 회사의 슬로건을 묻자 `태양 아래 기술과 즐거움을 접목시키자(Mixing technology with fun in the sun)'라는 대답도 신선했다. 그는 다락방에서 바게트를 씹으며 투자자를 기다리는 배고픈 벤처사업가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정보선진국의 IT단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산과 구릉이 어울린 휴양지다. 실리콘밸리도 나무와 풀로 뒤덮인 녹지다. 그런 환경이라야 자유롭고 창의적인 벤처정신을 고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삭막한 빌딩숲에 인파로 붐비는 우리의 테헤란밸리와는 대조적인 풍경들이다.
안타까운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벤처사업도 운동경기처럼 결과만큼이나 과정을 즐기는 게임이 되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누구나 성공을 꿈꾸지만, 벤처는 실패확률이 지극히 높은 게임이다.
정말 벤처를 육성하고 싶다면,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나 교통시설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눈부신 햇살과 바람과 나무와 숲이 어우러진 자연 속에 벤처단지를 건설해야 하지 않을까. 인생도 벤처도, 즐기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