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27일 '고물가와 소비' 보고서를 통해 "주요국과 마찬가지로 금융자산을 부채에 비해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고령층에서 물가 상승의 부정적 영향이 컸던 영향이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이후 최근까지의 누적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총 12.8%로 2010년대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민간소비의 경우 올해 들어 재개되는 조짐이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추세를 큰 폭으로 하회했다.
물가와 소비 흐름을 재화와 서비스로 나눠 살펴보면, 공급요인의 영향이 큰 재화소비를 중심으로 물가 상승에 따른 소비둔화가 뚜렷했다. 공급요인이란 글로벌 공급 차질, 이상기후 등으로 원자재와 식료품 가격 등이 상승함으로써 물가는 올라가고 소비는 감소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서비스소비 증가율은 수요 압력이 약해지며 과거 평균에 근접했다.
물가 상승의 가계별 영향을 보면 물가상승률이 높은 품목을 많이 소비하는 가계일수록 실제 체감하는 실효 물가상승률이 더욱 높아 물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가계의 소비품목 구성(소비바스켓)의 차이를 고려한 실효 물가상승률은 식료품 등 필수재 비중 이 큰 고령층(2020~2023년 중 16%)과 저소득층(15.5%)에서 청장년층(14.3%)이나 고소득층(14.2%)보다 높게 나타났다.
한은은 "다만 이들 취약층의 물가 영향은 연금 등 공적이전소득의 증가에 힘입어 상당폭 완화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가계가 금융자산과 부채를 각각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에 따라 물가상승에 따른 영향도 달랐다.
빚보다 자산이 많은 고령층은 물가 상승의 타격이 타 연령층보다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청년층은 생애주기상 부채를 많이 보유하는 연령층임에도 불구하고, 전세거주자의 전세보증금 실질가치가 하락한 데 따른 영향으로 물가 상승의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 상승의 부정적 영향이 컸던 고령층은 전반적으로 물가 상승의 손해를 보는 대신, 금리 상승으로는 이득을 보는 계층이었다.
이와 반대로 주택담보대출 등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저연령층 자가거주자는 물가 상승에 따른 부채가치 하락의 이득을 봤지만, 금리 상승으로 이자비용이 늘어 그 효과가 상당 부분 상쇄됐다.
부채와 전세보증금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어 물가와 금리에서 모두 손해를 입거나, 양 측면 모두에서 이득을 보는 계층도 있었다.
한은은 모형을 통해 정량적으로 분석한 결과 2021년부터 급격히 상승한 물가는 민간 소비를 상당폭 둔화시킨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물가 상승은 2021~2022년 중 실질구매력 축소 등을 통해 소비증가율을 약 4%p 내외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이후 크기가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소비 감소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은은 "앞으로 물가 오름세가 둔화됨에 따라 가계소비가 물가로 인해 위축되는 효과도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고물가는 가계의 실질구매력을 전반적으로 약화시킬 뿐 아니라 취약층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부정적인 재분배 효과도 있는 만큼, 물가 안정 기조를 유지해나가는 것이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미선기자 alread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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