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DT현장] "선 넘지 맙시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108/2021081702102269781001[1].jpg "[DT현장] \"선 넘지 맙시다\"")
당시 반도체 핵심제품 생산라인에 문제가 발생해 잠시 가동을 멈췄던 것으로 확인됐다. 설비 점검 뒤 즉각 정상 가동해 생산차질 등 피해는 거의 없었다고 해당업체 측은 설명했다.
문제는 이 생산라인이 철강이나 정유·화학, 반도체와 같은 공정이라 잠깐만 가동이 멈춰도 피해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까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다. 다행히 해당 업체가 즉각적인 조치를 해 큰 문제가 없었고, 일부 언론 보도에도 발빠르게 대응해 시장 혼선을 최소화했다. 해당 업체의 주가도 소폭 상승한 상태로 장을 마감해 주주들의 손실도 없었다.
문제는 이 같은 민감한 이슈가 내부 직원에 의해 블라인드라는 커뮤니티에서 알려졌다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해당 소식은 지난 밤 블라인드에 가입한 한 직원이 글을 올리면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해당 업체 내부에서는 "개념이 있는 건가"라는 등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전제로 회사에 피해를 주는 정보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외부에 공개해도 되느냐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칫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줬을 경우 주가하락은 물론 쏟아지는 거래선의 문의에 대응해야 하는 등 적잖은 파장이 발생했을 것"이라며 "전혀 공익적이지도 않고 어디서 월급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온라인 커뮤니티의 익명성 뒤에 숨어 소위 '팀킬'을 하는 경우는 적잖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한 공기업에서 투기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블라인드에서는 일부 직원들이 "내부에서는 신경도 안씀", "공직 쪽에 종사하는 직원들 중 땅 산 사람 한명 없을까?" 등의 글을 올려 자사 조직에 대한 여론의 비난을 부추기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들은 해당 커뮤니티를 수시로 체크하는 등 추가적인 부담을 감당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에서는 SNS와 같은 개인 커뮤니티와 소위 '지라시'(선전을 위해 만든 종이쪽지를 일컫는 일본어)에 익숙한 젊은 직장인들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애사심보다 이슈를 만들어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심리가 더 강하게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익명으로 회사 눈치 볼 것 없이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는 블라인드는 회사 내 부조리나 문제점을 바로잡을 수 있는 창구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일종의 '대나무 숲' 역할을 하는 것인데, 이번 사례는 익명 댓글처럼 금전적 피해는 물론 그 이상의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한 재계 관계자는 "개인사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소통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이니 무방하지만, 직장에 몸담고 있으면서 자신이 속한 조직에 이유 없이 해를 가하는 것은 직장인의 윤리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기업들도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표현의 자유와 책임에 대한 구분을 할 수 있는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본다. 요즘 새삼 온라인을 떠도는 소위 '가짜뉴스'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고, 정부여당은 가짜뉴스 처벌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반대쪽 측면에서는 언론탄압이라는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물론 위의 경우와 같이 분별없이 자신의 소속, 그리고 상대방이 당할 고통은 고려하지 않고 그냥 '아는 척' 하고 싶은 사람의 심리가 있는 것도 인정한다. 백신 음모론과 같은 사회적 파장이 큰 논란도 있다. 그러나 가짜뉴스 처벌법은 중대재해기업 처벌법과 비슷하다. 일종의 공포정치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얼마 동안은 난무하는 가짜뉴스와 개념 없는 폭로에 적잖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싫든 좋든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변화가 무섭다고,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고 시간이 돌아가진 않는다. 무의미하다. 선 넘는 사람들이 나온다고 똑같이 선을 넘어서 보복하겠다고 한다면 그냥 세상이 다 선을 넘는 또 다른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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