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칼럼] 절망의 늪에 빠진 과학기술 인사](http://contents.dt.co.kr/images/202105/2021050402102269073001[1].jpg "[이덕환 칼럼] 절망의 늪에 빠진 과학기술 인사")
후보자의 개인 신상 문제로 청문회의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신상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대부분의 의혹에 대한 사실 관계는 언론 보도를 통해서 충분히 확인됐다. 심지어 이사장 공모의 명백한 결격 사유였던 정당의 당적 보유 사실도 서면 답변으로 증명된 셈이다. 굳이 후보자의 옹색한 변명·해명을 듣겠다고 서로 목청을 높이고, 낯을 붉힐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후보자의 논문에 대해서 일부 의원들이 제기하고 언론이 증폭시킨 의혹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공계 대학원 학생의 학위논문은 대부분 지도교수가 장기간에 걸쳐서 수행하는 더 큰 연구과제에서 파생된다. 학위논문의 연구와 지도교수가 수행하는 연구과제가 언제나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공계의 학위논문은 학생의 독창적인 창작물로 보지 않는다. 지도교수의 기여를 절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교수가 학위논문을 '도용'했다는 주장은 의미가 없다.
학위논문의 학술지 발표가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학위논문의 학술지 발표는 더 이상 '중복 발표'라고 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관행이다. 심지어 학위논문에 학술지 발표 논문을 통째로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이공계 교수들이 학술지에 발표하는 논문은 전부 대학원 학생들의 학위논문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이제 학위논문은 대학의 학사행정에 필요한 자료이고, 학위논문의 학술적 가치는 학술지 논문으로 평가받는 것이 현실이다.
학위논문과 학술지 논문에 대한 표절 시비는 의미가 없다. 표절 판정 소프트웨어를 들먹일 이유도 없다. 선행 논문의 출처를 명시하기도 어렵고, 발표 시기의 선택도 자유롭지 않다. 학위논문의 제출 시기는 대학의 학사일정에 따라 정해지지만, 학술지 논문의 발표 시기는 연구과제의 진행과 필요성과 학술지의 발간 일정에 따라 결정된다.
논문의 저자와 저자의 표시순서에 대한 논란도 무의미하다. 학술지 논문의 저자 표시 순서는 연구과제의 특성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학위논문을 제출한 학생이 반드시 학술지 논문의 1저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떠한 근거도 찾을 수 없는 억지다.
이공계 대학의 총장을 역임한 기계공학자로 이공계 논문의 특성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김영식 의원의 의혹 제기는 몹시 부끄러운 것이다. 사정이 이공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회과학 분야의 석·박사 학위를 가진 허은아 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허 의원이 제기한 '삼각 표절'은 듣도 보도 못한 망측한 지적이다. 훨씬 더 많은 국제 학술지 논문은 제쳐두고 국내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만 문제 삼은 것도 떳떳하지 못한 일이다.
임 후보자 부부는 같은 대학과 대학원의 같은 학과에서 학위를 받고, 같은 연구소에서 함께 근무한 매우 독특하고 드문 경력의 소유자들이다. 2003년 서울에서 함께 교직 생활을 시작한 두 사람이 연구실을 갖추는 동안 공동으로 연구를 수행했고, 그런 과정에서 대학원 학생이 공동의 연구과제에 참여했던 사실은 아무도 탓할 수 없다.
과학기술계는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 전혀 다른 차원의 국회 검증을 기대하고 있다. 임혜숙 후보자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전문성과 국가 발전에 대한 비전을 분명하게 확인해줘야 한다. 사기가 땅에 떨어져버린 과학기술계의 회생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과기부 장관은 반드시 정보통신 분야에서만 맡아야 하는 이유도 알고 싶다. 도대체 절망의 늪에 빠져버린 과학기술계를 이끌어가기 위해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어디에서 어떤 준비를 해왔는지를 분명하게 밝혀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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