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규제 조치를 둘러싼 한일 양국 갈등이 '장기전'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중단했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재개하고, 1심 재판부 격인 패널 설치를 요청하기로 했다. 당초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성격인데다, 수출규제로 인한 국내 기업의 피해도 적은 상황에서 양국의 정치적 판단이 갈등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나승식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은 2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정부는 잠정 정지했던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WTO 분쟁해결절차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일본 정부는 문제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현안 해결을 위한 논의는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지난달 12일 일본 정부에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해달라고 요청했다. 일본이 수출규제 명분으로 문제 삼았던 △수출관리 조직·인력 미비 △재래식 무기에 대한 캐치올 통제 미흡 △한일 정책대화 중단 등 3가지 사유가 모두 해소됐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당초 정부가 제시한 답변 시한(5월 31일)까지 일본이 전향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자, 양국 간 논의를 위해 잠시 중단한 WTO 제소 절차를 재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나 실장은 "(우리 정부 요청에 대한) 일본 측의 회신은 있었으나, 우리가 기대했던 답변은 아니었다"며 "지금 상태로는 양자협의는 끝났다고 생각하며, WTO 제소를 통해 일본의 조치에 대한 불법성과 부당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겠다"고 말했다.
제소국인 우리나라가 WTO에 패널 설치 요청서를 제출하면 WTO는 본 재판 절차에 돌입하게 된다. 패널 심리는 통상 6개월 정도 소요된다. 심리가 끝나면 양국은 패널 보고서에 대해 동의할지 여부를 결정하고, 동의가 이뤄질 경우 WTO 분쟁해결기구가 보고서를 채택해 결론을 낸다. 양국은 패널 결론에 대해 항소할 수 있기 때문에 최종 판결은 3~4년까지 걸릴 수 있다.
미중 무역분쟁 속 존재감을 잃은 WTO가 실효성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된다. WTO 사무총장 자리도 공석인데다, WTO 최종심 격인 상소기구는 미국의 상소위원 선임 반대로 힘을 잃은 상태다. 상소기구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 무역갈등에 대한 최종 판결이 무기한 연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수출규제 대응책으로 정부가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및 수입처 다변화를 추진하면서 국내 업체 생산에 차질이 없다는 점도 오히려 피해 입증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나 실장은 "WTO 절차는 일본이 수출허가제를 남용하지 않도록 하고, 향후 유사한 조치를 반복하지 않도록 사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라며 "분쟁 과정에서 일본의 부당성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 형성도 이뤄질 수 있어 WTO 분쟁해결절차를 재개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이날 우리 정부 발표에 대해 "그간 수출관리 당국 간의 대화가 계속됐음에도 한국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유감"이라고 반응했다. 은진기자 jineun@dt.co.kr
산업통상자원부 나승식 무역투자실장이 2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일본 수출규제 관련 한국정부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