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현대상선 자구안
부채비율 축소에만 '초점'
선박·터미널 등 핵심 매각
생존기반 자체 위협 상황
결국 법정관리 피하지 못해
중장기적 발전대책 세워야
부채비율 축소에만 '초점'
선박·터미널 등 핵심 매각
생존기반 자체 위협 상황
결국 법정관리 피하지 못해
중장기적 발전대책 세워야
■한국 해운산업을 살리자 (상)
[디지털타임스 양지윤 기자] 2002년 12월 11일 0시. 현대상선에는 뼈아픈 날이다. 현대상선에 속해 있던 자동차 운반선 76척과 영업조직, 영업권 등의 소유권을 15억달러, 당시 우리돈 1조8000억원에 유럽계 해운사인 유코카캐리어스에 넘겨줬다. 당시 현대그룹이 유동성 위기와 대북 송금 의혹 사건 등으로 부도위기로 몰리자 내놓은 고육지책이다. 매각대금 13억달러는 채권단과 협의를 거쳐 차입금 상환에 사용하고, 나머지 2억달러는 자동차 운반선의 차입금 원리금을 갚으며 현대상선의 유동성에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현대상선은 유코카캐리어스를 매각한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순손실 누적액이 1조4019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유코카캐리어스의 순이익 누적액은 1조4189억원이다. 현대상선이 자동차 운반선 사업부를 팔지 않았더라면, 충분히 만회했을 규모다.
유코카캐리어스 매각 건은 한국 해운업 구조조정 양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두 회사 모두 오너의 경영실패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지만, 정부와 채권단이 해운업 구조조정을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한 부채비율 축소에만 초점을 맞춘 점 역시 화근이었다는 분석이다. 해운사들이 자구안을 이행할수록 사업 포트폴리오가 단순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해운산업 구조조정은 10여년 전의 복사판이다. 당장 닥친 위기를 넘기기 위해 알짜재산 매각에 치중하다 보니 생존 기반 자체를 위협받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알짜 자산 매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당장 유동성을 확보해 부채비율은 낮출 수 있지만, 안정적인 현금 창출원을 잃는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특히 업황 침체가 장기화한 상황에서 주력 사업의 손실을 상쇄할 안전판의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해운업 구조조정은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
실제로 지난 9월 1일 법정관리를 개시한 한진해운과 지난 7월 말 자율협약을 졸업한 현대상선은 돈이 될만한 자산은 모두 팔아치웠다. 현대상선은 액화천연가스(LNG)선과 벌크선 사업부와 현대로지스틱스 등을 매각하는 등 2013년부터 경영정상화를 위해 2조9000억원의 자구 계획안 가운데 4조3000조원을 이행했다. 이로 인해 2조6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고, 이행률이 152%에 달했으나 현대증권과 부산신항지분을 추가로 팔아야 했다.
한진해운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벌크선 사업부를 매각하고, 유상증자와 영구채 발행으로 6000억원의 자본을 확충해 자구계획 이행률이 132%에 달했다. 올 들어 상표권과 런던사옥, 선박 등도 팔았지만 결국 법정관리를 피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국적 선사들이 위기에 놓인 핵심 요인으로 금융 논리에만 갇혀 있는 구조조정 추진을 꼽는다. 해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선박과 터미널 등의 매각을 무리하게 요구해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단순화시켜 수익성을 떨어뜨리고, 해운사들은 다시 자산 매각에 나서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한진해운의 좌초 이후 국내 유일의 국적선사로 남은 현대상선에 대해 업계 안팎에서 기대보다 우려의 시선이 많은 점도 이런 이유에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올바른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선종과 사업 다각화 등 사업구조 재편에 초점을 맞춰야 했으나 금융 논리가 주도하다 보니 중장기 발전대책이 미흡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해운은 수출 물류의 98%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국가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금융 논리로만 구조조정을 추진하다 보면 해운 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물론 수출 경쟁력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양지윤기자 galil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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