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방미인' 토종 냉중성자 기술, 유럽에 꽃피운다
네덜란드 '오이스터 프로젝트'에 한국컨소 참여
RID 연구로 설비 구축… 암치료 연구 등 활용
설계·예산 등 마무리 단계… 2018년 완료 계획
네덜란드 '오이스터 프로젝트'에 한국컨소 참여
RID 연구로 설비 구축… 암치료 연구 등 활용
설계·예산 등 마무리 단계… 2018년 완료 계획
![[르포]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원자력연구소`를 가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511/2015111602100976788001[1].jpg "[르포]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원자력연구소`를 가다")
"이 장비의 이름은 '펄'(Pearl)로, '오이스터'(Oyster)가 낳은 첫 번째 진주입니다."
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원자력연구소(RID:Reactor Institute Delft). 2MW급 연구용 원자로 'HOR' 안으로 들어서자 릭 린슨 RID 부소장이 앞에 놓인 설비를 보며 이같이 설명했다.
연구로와 연결된 펄의 외부에는 델프트에서 태어난 화가 요하네스 베메르의 미술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모자이크 형태의 추상화로 그려져 있었다. 중성자의 회절 각도와 강도 등을 측정해 물질의 원자 구조를 분석하는 장비인 펄은 앞으로 수소 저장장치와 리튬 배터리 등 에너지 분야 연구에 쓰일 예정이다.
네덜란드의 유일한 연구용 원자로를 보유한 RID는 10년간 1억1700만 유로를 들여 에너지와 의료 연구에 쓰일 다양한 중성자 연구장비를 추가로 설치하거나 개선하는 '오이스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펄은 오이스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된 첫 번째 연구장비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연구로에서 나오는 중성자를 영하 253도의 액체수소에 통과시켜 에너지를 낮춘 '냉중성자' 연구설비를 구축하는 것이다. 냉중성자는 열중성자보다 낮은 운동에너지를 갖고 있어 살아있는 세포를 관찰하거나 물질의 구조를 분석하는 데 다양하게 쓰인다. RID는 앞으로 설치될 냉중성자 연구시설을 델프트공대를 비롯한 3개 대학이 공동으로 설립을 추진하는 '네덜란드 양성자 암치료센터(Holland Proton Theraphy Center)'와 연계해 새로운 방사선 암 치료법인 '양자선 치료' 연구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린슨 부소장을 따라 원자로 위쪽으로 올라가자 8m 깊이의 수조 아래 냉중성자 발생장치가 설치될 부분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곳에 무인로봇을 이용해 장치를 설치하고 나면 원자로 외부로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 다양한 냉중성자 연구설비가 설치된다.
린슨 부소장은 "연구로에 냉중성자 설비를 달아 중성자를 더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되면 물질 분석과 측정 등 더 다양한 연구가 가능해진다"며 "리튬 배터리 등 에너지 분야와 신체 영상 촬영 같은 의료 분야 등에 활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덜란드는 1963년부터 오랜 기간 연구로인 HOR를 운영한 경험이 있고 핵연료 생산부터 고준위 폐기물 처리시설까지 원자력 전주기에 대한 기술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번 냉중성자 연구설비 구축사업은 한국의 힘을 빌려 진행한다. 지난해 11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이 컨소시엄을 이뤄 이 사업을 수주했다. 프랑스와 독일, 러시아 기업과의 경쟁을 뚫고 처음으로 선진국 원자력 기술 시장의 문을 연 것이다.
원자력연은 지난 2010년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에 이곳 원자로에 설치되는 것과 같은 냉중성자 연구시설을 설계부터 정상운전까지 자력으로 완성한 경험이 있다. 이미 가동 중인 원자로의 고방사선 환경에서 냉중성자 설비를 추가로 설치해본 경험은 우리나라가 유일했고, 이런 경험에서 나온 창의적인 기술력이 네덜란드 연구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린슨 부소장은 "한국은 이미 기존 연구로에 냉중성자 설비를 추가로 구축한 경험이 있고 대기압 상태에서도 액체수소를 극저온 상태로 유지하는 독특한 기술을 보유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며 "기술과 가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한국이 경쟁국들과 비교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말했다.
현재 냉중성자 연구설비 구축사업은 설계와 소요 예산을 산출하는 1단계를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다. 연말까지 한국 컨소시엄이 비용을 제출해 네덜란드의 최종 승인을 마치면 내년부터 구축에 들어가 2018년에 최종적으로 설치를 마칠 계획이다.
론 후트야르(Ron Goetjaer) 오이스터 프로젝트 책임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로 안전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지난달 발효된 네덜란드 원자로 안전요건(DSR·Dutch Safety Requirements)을 충족하기 위해 몇 가지 조건이 추가돼 현재 한국 측과 가격 등을 협상하고 있다"며 "내년 1월이면 2단계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나올 전망"이라고 밝혔다.
델프트(네덜란드)=남도영기자 namdo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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