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세대 이통기술 상용화 불구 퀄컴에 로열티 악몽
표준특허 선점 관건… R&D 단계부터 통합방안 구축을
표준특허 선점 관건… R&D 단계부터 통합방안 구축을
■ ICT 표준 길목을 잡아라
(하) 표준특허로 산업 주도권 잡는다
1990년대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2세대 디지털 이동통신 방식인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 상용화에 성공해 글로벌 무대에서 'ICT강국 코리아' 명성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상용화 서비스는 성공했지만 원천기술에 대한 표준특허를 확보하지 못해 당시 CDMA 핵심 원천기술 관련 표준특허를 갖고 있던 퀄컴에 수조원의 로열티를 지불해야 했다. 지난 2011년 4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둘러싸고 촉발된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 역시 막바지에 달하면서 표준특허 침해 여부가 최대 쟁점으로 떠올라 사실상 '표준특허 전쟁'으로 치달았다.
◇글로벌 ICT 기업 "표준을 잡아야 시장 있다"=최근 글로벌 ICT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후발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는 전략적 수단으로 표준특허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표준특허는 국제표준화기구에서 제정한 특정 표준을 제품이나 서비스에 구현하기 위해 활용해야 하는 필수적인 특허로, 표준에 특허기술이 반영된 것을 의미한다. 표준화기구에서 개발한 표준 문서 규격에 포함돼 있고, 해당 특허를 이용하지 않고는 표준을 활용한 제품의 제조, 판매, 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하다.
특히 ICT 산업 특성상 관련 표준을 통해 만들어진 제품만 시장에서 판매·소비되기 때문에 표준특허 확보는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다.
최근에는 ICT 기술의 혁신적 발전과 융합에 따라 스마트폰, 태블릿PC, 스마트워치 등 첨단 융복합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제품들은 다양한 기술표준에 의해 생산되며, 기술표준에는 수많은 특허가 포함돼 있다. 하나의 제품에 다양한 특허가 녹아 들어간 '일물다특허(一物多特許)'로 구성된 것. 따라서 ICT 제품을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표준특허가 많아지고 중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ICT 기업들은 신제품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표준특허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막대한 기술료 창출의 원천=기업들은 제품이나 기술을 개발할 때 관련 국제표준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만약 특정 기업의 특허기술이 표준에 반영돼 표준특허로 지정돼 있으면, 해당 표준을 이용하는 기업들은 표준특허 사용 대가로 로열티 등 기술료를 지불해야 한다. 우리나라 휴대폰 제조사들이 퀄컴에 매년 휴대폰 가격의 2∼5% 가량을 로열티로 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표준특허를 가진 기업은 막대한 수익을 얻는 반면 확보하지 못한 기업은 상당 금액의 사용 대가를 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표준특허를 보유한 기업이 경쟁 기업의 시장 진입과 확대를 막기 위해 터무니없이 높은 로열티를 요구하거나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물론 국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표준특허 확보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김형준 ETRI 표준연구센터장은 "표준특허는 기업의 생존뿐 아니라 관련 산업 활성화, 기술무역수지 개선 등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심·원천기술 기반 표준특허 확보가 관건=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수년째 최대 기술무역 적자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래부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펴낸 '2012년 기술무역통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술무역 적자는 2002년 28억6000만달러에서 2012년 57억4000만달러로 10년만에 두 배 정도로 늘어났다. 기술도입액을 기술수출액으로 나눈 '기술무역수지비'도 0.4로, 외국에서 10개 기술을 도입할 때 5개 기술도 수출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는 표준특허 같이 글로벌 시장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핵심·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각종 ICT 제품의 생산이 늘어나면서 원천기술 도입도 증가해 기술무역 수지의 적자규모는 더욱 커지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처방은 원천·핵심기술을 확보하고, 연구성과가 특허와 표준으로 이어지도록 전략적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다. 표준특허는 새로운 시장 창출은 물론 기존 시장에서의 시장 지배력 강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R&D 결과의 표준화 전략이 강조된다.
주요 선진 기업들은 이미 표준화 및 특허확보 연계 활동을 강화하고 있고,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ICT 산업에 대응, 표준특허를 통해 막대한 기술료 수입을 올리는 전략을 새로운 비즈니스모델로 삼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특허소송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이른바 '특허괴물'이 표준특허 매입에 나서면서 특허분쟁의 새로운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정현준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원은 "표준을 둘러싼 경쟁은 세계 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체계적이고 강도 높은 대응 전략을 마련하지 않으면 표준특허 분쟁에서 생존하기 힘들어진다"면서 "표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R&D 과정부터 표준설정 단계를 넘어 만일에 있을 수 있는 특허분쟁까지 연계하는 통합적인 표준특허 확보방안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전=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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