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을 조종하는 게임은 `메크물'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형성할 수 있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양적 풍성함에 비해 시스템의 질적인 발전은 미흡한 듯 하다. 로봇을 움직여 미션을 해결하는 것이 반복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시뮬레이션물과 액션물로 크게 나뉘어 새로울 것 없는 시스템만을 반복 재생하고 있는 것이다. 제작사의 전략은 조종을 점점 더 어렵게 해 난이도를 높이는 것으로 시스템의 진부함을 해결해 보려는 매니아 중심 전략과, 유명한 로봇을 등장시켜 이름 값에 기대려는 캐릭터 중심 전략으로 나뉜다.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나서지는 않는다. 프롬 소프트의 `무라쿠모', 그리고 반다이의 `기동전사 건담 전기' 역시 기존 로봇 게임의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 빌딩을 가로지르는 스피드의 세계 `무라쿠모' (X박스용)
빌딩누비는 로봇들의 시가전
프롬 소프트는 로봇물 제작 노우하우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회사다. 별로 좋은 평을 듣지는 못했지만 드림캐스트로 `프레임 글라이드'라는 독특한 게임을 만들었고, `아머드 코어'시리즈는 플레이스테이션의 대표적 로봇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자리를 잡은지 오래다. 이번에 만든 게임은 엑스 박스용이다. `아머드 코어'는 후광만큼이나 무거운 족쇄다. 이 게임은 당연히 `아머드 코어'와는 다른 게임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로봇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하나의 일가를 이룬 시스템을 모두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해결책은 비행 시뮬레이션이다.
`아크'는 사람의 신경에 반응해 작동하는 새로운 메카닉 무기다. 이를 사용해 도시를 공격해오는 정체불명의 적 메크들을 파괴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무라쿠모'와 지금까지의 로봇물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스피드다. 주요 전투는 다 고공에서 벌어진다. 아크에 탑승해 도시 상공을 날아다니며 적의 기체를 격추시켜야 한다. 만일 적이 사정거리 밖으로 달아나면 미션은 즉시 중지된다. 서두를 수밖에 없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적 유닛을 쉴 새 없이 쫓아다니며 격추시켜야 한다. 결국 `무라쿠모'는 전투기를 몰고 도시에서 전투를 벌이는 비행 슈팅 게임이 되어 버렸다.
비행 슈팅 게임 형식 로봇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종 스크롤이나 횡 스크롤 형식이었지, 3D 환경에서 즐비한 빌딩 숲 사이로 누비는 게임은 없다. `무라쿠모'는 3D 공간으로 비행 슈팅 게임을 끌어들임으로써 로봇물 게임의 시스템적인 한계를 극복했다. 하지만 치명적 질문이 아직 남아있다. 그럼 왜 굳이 로봇물을 택한 것일까? 다행히 주요 전장인 도시라는 공간 자체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이 되고 있다. 도시의 빌딩과 고가도로의 숲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비행기의 움직임만으로는 전부 표현할 수 없다. 빌딩으로 달려들다 갑자기 부스터를 켜서 뒤로 이동한다든가, 건물에 숨어있다가 좌우로 튀어나오는 것은 비행기로는 어색하다.
로봇만의 독특한 움직임이야말로 빌딩을 누비는 전투에서 게임의 깊이를 더해준다. 그래픽도 물론 뛰어나다. 아쉬운 점이라면 게임 볼륨이 작다는 것이다. 이 점만 아니었다면 어떤 콘솔로 나왔어도 돋보일 로봇물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 건담이 주는 무게감 `기동 전사 건담 전기' (PS2용)
가볍지만 현실감각 돋보여
`기동전사 건담 전기'의 로봇 조종은 그다지 정교하지 않다. 조작도 간편하다. 그런데도 움직임이 꽤 무겁게 느껴진다. 우선 좌, 우 전환이 생각보다 한 타임 늦다. 회전각 역시 미묘하게 컨트롤되지 않는다. 공격도 마찬가지여서 아군과 적군이 뭉쳐서 근접전을 할 때 조준 컨트롤이 어렵다.
이런 느낌을 주는 로봇 게임은 적지 않다. 현실감을 주기 위해서다. 그래도 `기동전사 건담 전기'이 이렇다는 것은 의외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로봇이 등장하는 게임들은 대개 이른바 `캐릭터 게임'이다. 캐릭터성에 기대는 안이한 기획물이라는 얘기다. 더군다나 반다이는 건담이라는 캐릭터를 이용해 온갖 게임을 급조하는 회사로 악명이 높다. 건담을 좋아하면서도 건담 게임을 외면하는 게이머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건담 게임이 캐릭터성에 대한 맹목적 의존을 떨쳐 버리기 시작했다. 특히 캡콤의 손을 빌어 아케이드와 드림캐스트로 나왔던 `기동전사 건담 연방vs지온 DX'에서는 메크로서의 무게감과 거기에 걸맞는 조작감이 주어졌다. 캐릭터 로봇 건담이 전쟁의 주역으로서 움직여야 하는 살아있는 모빌 슈츠로 거듭난 것이다.
`기동전사 건담 전기'는 반다이 건담 게임의 진화 과정 중 한 국면에 있다. 조작의 둔함, 혹은 조작하면서 느껴지는 묵짐함은 캐릭터가 돋보이기만 하면 그만인 캐릭터 게임으로서의 건담에는 불필요한 요소다. 하지만 이 게임은 현실감 있는 시뮬레이션의 무게감을 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건담은 어디까지나 건담이다. 조작계까지 복잡해가지고는 시뮬레이션 매니아가 아닌 일반 건담 팬으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다. 결과는 현실감 없는 단순한 조작과 게임성을 떨어뜨리는 무게감이 기묘하게 결합된 게임이다.
이 게임에 대한 평은 틀림없이 엇갈릴 것이다. 건담의 세계를 좋아하고, 이전부터 건담 게임을 보아왔던 게이머라면, 이 게임에서 진화하는 형태의 `건담' 게임이 보여줄 수 있는 미래, 건담이 애니메이션이 아닌 현실에서 살아나온 것으로 느껴지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기동전사 건담 전기'는 어딘가 모자라는 엉성한 조작감을 가진 흔한 로봇물의 재탕에 불과하다.
# 빌딩을 가로지르는 스피드의 세계 `무라쿠모' (X박스용)
빌딩누비는 로봇들의 시가전
프롬 소프트는 로봇물 제작 노우하우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회사다. 별로 좋은 평을 듣지는 못했지만 드림캐스트로 `프레임 글라이드'라는 독특한 게임을 만들었고, `아머드 코어'시리즈는 플레이스테이션의 대표적 로봇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자리를 잡은지 오래다. 이번에 만든 게임은 엑스 박스용이다. `아머드 코어'는 후광만큼이나 무거운 족쇄다. 이 게임은 당연히 `아머드 코어'와는 다른 게임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로봇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하나의 일가를 이룬 시스템을 모두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해결책은 비행 시뮬레이션이다.
`아크'는 사람의 신경에 반응해 작동하는 새로운 메카닉 무기다. 이를 사용해 도시를 공격해오는 정체불명의 적 메크들을 파괴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무라쿠모'와 지금까지의 로봇물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스피드다. 주요 전투는 다 고공에서 벌어진다. 아크에 탑승해 도시 상공을 날아다니며 적의 기체를 격추시켜야 한다. 만일 적이 사정거리 밖으로 달아나면 미션은 즉시 중지된다. 서두를 수밖에 없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적 유닛을 쉴 새 없이 쫓아다니며 격추시켜야 한다. 결국 `무라쿠모'는 전투기를 몰고 도시에서 전투를 벌이는 비행 슈팅 게임이 되어 버렸다.
비행 슈팅 게임 형식 로봇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종 스크롤이나 횡 스크롤 형식이었지, 3D 환경에서 즐비한 빌딩 숲 사이로 누비는 게임은 없다. `무라쿠모'는 3D 공간으로 비행 슈팅 게임을 끌어들임으로써 로봇물 게임의 시스템적인 한계를 극복했다. 하지만 치명적 질문이 아직 남아있다. 그럼 왜 굳이 로봇물을 택한 것일까? 다행히 주요 전장인 도시라는 공간 자체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이 되고 있다. 도시의 빌딩과 고가도로의 숲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비행기의 움직임만으로는 전부 표현할 수 없다. 빌딩으로 달려들다 갑자기 부스터를 켜서 뒤로 이동한다든가, 건물에 숨어있다가 좌우로 튀어나오는 것은 비행기로는 어색하다.
로봇만의 독특한 움직임이야말로 빌딩을 누비는 전투에서 게임의 깊이를 더해준다. 그래픽도 물론 뛰어나다. 아쉬운 점이라면 게임 볼륨이 작다는 것이다. 이 점만 아니었다면 어떤 콘솔로 나왔어도 돋보일 로봇물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 건담이 주는 무게감 `기동 전사 건담 전기' (PS2용)
가볍지만 현실감각 돋보여
`기동전사 건담 전기'의 로봇 조종은 그다지 정교하지 않다. 조작도 간편하다. 그런데도 움직임이 꽤 무겁게 느껴진다. 우선 좌, 우 전환이 생각보다 한 타임 늦다. 회전각 역시 미묘하게 컨트롤되지 않는다. 공격도 마찬가지여서 아군과 적군이 뭉쳐서 근접전을 할 때 조준 컨트롤이 어렵다.
이런 느낌을 주는 로봇 게임은 적지 않다. 현실감을 주기 위해서다. 그래도 `기동전사 건담 전기'이 이렇다는 것은 의외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로봇이 등장하는 게임들은 대개 이른바 `캐릭터 게임'이다. 캐릭터성에 기대는 안이한 기획물이라는 얘기다. 더군다나 반다이는 건담이라는 캐릭터를 이용해 온갖 게임을 급조하는 회사로 악명이 높다. 건담을 좋아하면서도 건담 게임을 외면하는 게이머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건담 게임이 캐릭터성에 대한 맹목적 의존을 떨쳐 버리기 시작했다. 특히 캡콤의 손을 빌어 아케이드와 드림캐스트로 나왔던 `기동전사 건담 연방vs지온 DX'에서는 메크로서의 무게감과 거기에 걸맞는 조작감이 주어졌다. 캐릭터 로봇 건담이 전쟁의 주역으로서 움직여야 하는 살아있는 모빌 슈츠로 거듭난 것이다.
`기동전사 건담 전기'는 반다이 건담 게임의 진화 과정 중 한 국면에 있다. 조작의 둔함, 혹은 조작하면서 느껴지는 묵짐함은 캐릭터가 돋보이기만 하면 그만인 캐릭터 게임으로서의 건담에는 불필요한 요소다. 하지만 이 게임은 현실감 있는 시뮬레이션의 무게감을 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건담은 어디까지나 건담이다. 조작계까지 복잡해가지고는 시뮬레이션 매니아가 아닌 일반 건담 팬으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다. 결과는 현실감 없는 단순한 조작과 게임성을 떨어뜨리는 무게감이 기묘하게 결합된 게임이다.
이 게임에 대한 평은 틀림없이 엇갈릴 것이다. 건담의 세계를 좋아하고, 이전부터 건담 게임을 보아왔던 게이머라면, 이 게임에서 진화하는 형태의 `건담' 게임이 보여줄 수 있는 미래, 건담이 애니메이션이 아닌 현실에서 살아나온 것으로 느껴지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기동전사 건담 전기'는 어딘가 모자라는 엉성한 조작감을 가진 흔한 로봇물의 재탕에 불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