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셀 하케 지음·토마스 마테우스 뮐러 그림
조원규 옮김
북라인 /9000원
우리나라에 바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직장인이든 주부든 학생이든 심지어 미취학 아동들까지, 누구나 정신없이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노인이 되어버리고 강제로 노동과 사회에서 떠밀리고 나면 우리는 망연자실해진다. 눈앞에 놓인 허허로운 텅빈 시간 앞에 무엇을 해야할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만약 우리가 사소하고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어떨까. 그 일상에 함몰되지 않고, 그렇다고 일상을 맹목적으로 장밋빛이라 우기지도 않으며, 자신만의 새로운 관점에서 일상을 재해석한다면, 만약 그렇다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까.
‘내가 전부터 말했잖아’의 작가 악셀 하케는 아마 일상에 대한 자기만의 관점을 가진 작가인 것 같다. 독일 뮌헨에서 작가와 저널리스트로 일하는 악셀 하케는 별 것 아닌 진부한 일상사를 혼자 곱씹으며 새롭게 바라보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이 사실은 이미 출판된 책인 ‘하케의 동물이야기’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 책은 동물과 생태계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독자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사실은 그런 목적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대신 동물에 대한 인식과 선입견을 살짝 비틀어서 조금은 색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을 보여준다. 동물과 사람이 동등한 눈높이에서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즉 모든 생물들이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세상 말이다.
‘내가 전부터 말했잖아’는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작가는 나 자신과 우리 모두의 생활과 경험과 정서를 그대로 겪고 있는, 그야말로 보통 사람이다. 예를 들어 그는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울 때면 긴장한다. 한밤중에 자던 아이가 깨어나 엉뚱한 요구를 하면 당황한다. 살을 빼기 위해 수영을 시작하지만 정작 수영을 마치고 나면 너무나 배가 고파 평소보다 더 많이 먹고 만다. 커튼봉을 달기 위해 나사못을 박고 줄을 걸다가 수십번씩 실패하고 좌절한다. 또 자기 자식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스스로의 외모에 대해 절망한다. 잔돈이 없다고 투덜대는 택시기사를 싫어한다. 비행기 타기가 무섭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이 특별한 사람인가.
그렇지만 그는 매우 특별한 사람이다. 작업실 건너편 건물에 살아 날마다 얼굴을 보게 되는 노인의 안부를 혼자 궁금해 하기도 하고, 오래된 냉장고 보슈와 친구로 지내면서 대화를 주고받는다. 한밤중에 아파트를 울렸던 ‘안돼!’라는 외마디 비명의 정체를 내내 궁금해 한다. 몸이 무거워 움직이지 못했던 아버지를 기억하며 아들과 함께 빨간 연을 날린다. 그는 좀 소심하고 쫀쫀하며 엉뚱하고 황당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잘 규정할 수 있는 말은, 작가 악셀 하케가 지상의 지루한 삶을 무척이나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구절. ‘나는 바람이 나의 젖은 뺨을 차갑게 스치는 것을 느끼며 웃었다. 그리고 삶은 아름다웠다’
고전과 양서가 좋다는 것을 누가 모르랴. 다만 그 책들의 두터운 부피와 진지한 얼굴 앞에서 기가 죽을 뿐이다. 그럴 때엔 작은 책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내가 전부터 말했잖아’는 가볍고 쉽게 읽을 수 있는 판형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 나오는 많은 작은 책들이 달콤한 목소리로 삶을 별 이유없이 찬미하고 있는데 비해, 이 책은 삶의 껄끄러움을 애써 감추거나 포장하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편과 부당함에 대한 짜증도 윤색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나면, 선물용 책들의 그 들큰한 뒷맛 대신 개운한 뒷맛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의 유머는 에프라임 키숀의 그것보다는 과장이 적지만 담백하다. 미소를 위한 독서를 원한다면 권할 만한 책이다.
작가는 때로는 조금 섬뜩한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그 역시 대도시 생활의 실상이 가지는 폭력성에 비한다면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독일어로된 여러 책들을 유려하고 정확하게 옮겨온 번역자 조원규씨에 대한 신뢰 역시 이 책을 고르는 데에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조원규 옮김
북라인 /9000원
우리나라에 바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직장인이든 주부든 학생이든 심지어 미취학 아동들까지, 누구나 정신없이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노인이 되어버리고 강제로 노동과 사회에서 떠밀리고 나면 우리는 망연자실해진다. 눈앞에 놓인 허허로운 텅빈 시간 앞에 무엇을 해야할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만약 우리가 사소하고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어떨까. 그 일상에 함몰되지 않고, 그렇다고 일상을 맹목적으로 장밋빛이라 우기지도 않으며, 자신만의 새로운 관점에서 일상을 재해석한다면, 만약 그렇다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까.
‘내가 전부터 말했잖아’의 작가 악셀 하케는 아마 일상에 대한 자기만의 관점을 가진 작가인 것 같다. 독일 뮌헨에서 작가와 저널리스트로 일하는 악셀 하케는 별 것 아닌 진부한 일상사를 혼자 곱씹으며 새롭게 바라보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이 사실은 이미 출판된 책인 ‘하케의 동물이야기’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 책은 동물과 생태계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독자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사실은 그런 목적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대신 동물에 대한 인식과 선입견을 살짝 비틀어서 조금은 색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을 보여준다. 동물과 사람이 동등한 눈높이에서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즉 모든 생물들이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세상 말이다.
‘내가 전부터 말했잖아’는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작가는 나 자신과 우리 모두의 생활과 경험과 정서를 그대로 겪고 있는, 그야말로 보통 사람이다. 예를 들어 그는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울 때면 긴장한다. 한밤중에 자던 아이가 깨어나 엉뚱한 요구를 하면 당황한다. 살을 빼기 위해 수영을 시작하지만 정작 수영을 마치고 나면 너무나 배가 고파 평소보다 더 많이 먹고 만다. 커튼봉을 달기 위해 나사못을 박고 줄을 걸다가 수십번씩 실패하고 좌절한다. 또 자기 자식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스스로의 외모에 대해 절망한다. 잔돈이 없다고 투덜대는 택시기사를 싫어한다. 비행기 타기가 무섭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이 특별한 사람인가.
그렇지만 그는 매우 특별한 사람이다. 작업실 건너편 건물에 살아 날마다 얼굴을 보게 되는 노인의 안부를 혼자 궁금해 하기도 하고, 오래된 냉장고 보슈와 친구로 지내면서 대화를 주고받는다. 한밤중에 아파트를 울렸던 ‘안돼!’라는 외마디 비명의 정체를 내내 궁금해 한다. 몸이 무거워 움직이지 못했던 아버지를 기억하며 아들과 함께 빨간 연을 날린다. 그는 좀 소심하고 쫀쫀하며 엉뚱하고 황당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잘 규정할 수 있는 말은, 작가 악셀 하케가 지상의 지루한 삶을 무척이나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구절. ‘나는 바람이 나의 젖은 뺨을 차갑게 스치는 것을 느끼며 웃었다. 그리고 삶은 아름다웠다’
고전과 양서가 좋다는 것을 누가 모르랴. 다만 그 책들의 두터운 부피와 진지한 얼굴 앞에서 기가 죽을 뿐이다. 그럴 때엔 작은 책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내가 전부터 말했잖아’는 가볍고 쉽게 읽을 수 있는 판형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 나오는 많은 작은 책들이 달콤한 목소리로 삶을 별 이유없이 찬미하고 있는데 비해, 이 책은 삶의 껄끄러움을 애써 감추거나 포장하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편과 부당함에 대한 짜증도 윤색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나면, 선물용 책들의 그 들큰한 뒷맛 대신 개운한 뒷맛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의 유머는 에프라임 키숀의 그것보다는 과장이 적지만 담백하다. 미소를 위한 독서를 원한다면 권할 만한 책이다.
작가는 때로는 조금 섬뜩한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그 역시 대도시 생활의 실상이 가지는 폭력성에 비한다면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독일어로된 여러 책들을 유려하고 정확하게 옮겨온 번역자 조원규씨에 대한 신뢰 역시 이 책을 고르는 데에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