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엿새 만에 경성~부산 달린 `쇠다리` 선수 현재요](http://contents.dt.co.kr/images/202204/2022041402102269061001[1].jpg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엿새 만에 경성~부산 달린 `쇠다리` 선수 현재요")
현재요 선수는 경성서… 일본인 선수는 부산서 출발
5일 5시간 20분 만에 완주 강인·끈기 유전자 보여줘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는 약 477㎞다. 마라톤 코스의 10배가 넘는다. 100년 전 4월에 이 거리를 6일 동안 달리는 이색경기가 있었다. 조선 사람은 경성에서 부산으로, 일본 사람은 부산에서 경성으로 가는 경기였다. 먼저 목적지에 닿는 이가 승리한다. 그해 4월로 돌아가 엿새에 걸친 레이스를 따라가 본다.
"이번 경성일보사의 주최로 경성-부산 간 장거리 줄달음 쳐서 가는 장거(長擧)는, 부산 경성일보 지국 앞에서는 일본 마라손 선수인 우시지마 타카토시(牛島隆俊)군이요, 서울에선 매일신보 사원인 조선 마라손 선수 현재요(玄才堯) 군인데, 현 군은 쇠다리 같은 다리로 장거리를 줄달음쳐서 경주하는 데는 유명한데, 이번에 경성-부산 천리를 엿새 동안을 두고 어떤 선수든지 선착(先着)하는 것인데, 경부(京釜)간 284마이루(mile)나 되는 가장 긴 거리로서 더욱이 경성에서는 조선인 선수가 이번에 끼어서 경주하게 된 것은 참 흥미있는 일이요, 현 군의 앞길에 대하여 축복하는 터이며 어제 5일 아침 8시에 기약하여 용맹하게 출발했다." (1922년 4월 6일자 매일신보)
"현 선수는 주야(晝夜) 겸행(兼行)으로 갔는지는 모르나 우시지마 타카토시 선수보다 70리, 즉 24마이루를 더 갔다는 기별이 있다. 아직까지도 승패는 미상(未詳)이나 70리를 앞선 사람이 선착할 것은 확연(確然)한 일이요, 현 선수의 용맹심을 축하한다. 지금으로는 어디 어디 간 것을 자세히 보도하여 우리 독자의 흥도 돋아드릴 겸 한낱 운동계의 재미스러운 일로써 현 선수의 선착 기별이 있거든 대대적으로 우리는 환영하기를..." (1922년 4월 8일자 매일신보)
"걸음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은 단 10리를 가더라도 발이 붓고 제일 피곤하여 촌보(寸步)도 옮기지 못하는 법인데, 더구나 경성과 부산 간 1천리 원정(遠程)을 조금도 쉬지 않고 줄달음질을 하여 엿새 동안 예정과 적당한 시간으로 빨리 다투어 갈 수가 있을까? 부산에서는 일본인 선수가 올라오고, 경성에서는 조선인 선수가 내려가기 시작하여 누가 선착이 될 것을 경쟁하는 것은 참 재미로운 일이요, 또한 마음이 졸일 일이다. 그런데 '쇠다리'라는 별명을 듣는 현재요 선수는 지난 7일 오후 0시 38분에 영동역 중간 철교 아래를 통과하던 중 우연히 유람 단체 일행을 태운 열차와 만나서 단원 일동은 모두 차창으로 얼굴을 내밀고 우렁찬 목소리로 '현 선수 만세'를 불렀는데, 현 선수는 다만 묵례만 하고 원기 좋게 자꾸 달음질을 하며, 그 살빛은 검게 타서 무슨 검정덩이가 굴러가는 것 같이 보였다는데, 현 선수는 원기왕성하게 7일 오후 5시에 추풍령에 도착하였다는 전보가 매일신보사에 도착되었으니, 벌써 이기고 앉은 모양이더라." (1922년 4월 9일자 매일신보)
"8일 오전 6시 추풍령을 떠나 남진(南進)하여 경부간 장거리 주파(走破)의 현재요 선수는 8일 오후 7시 50분에 대구에 도착하였는데, 현 선수의 웅장한 모양을 구경하려고 철도, 선로, 전답의 구별이 없이 사람으로 산을 쌓아 그 혼잡한 상태는 하나의 아수라장과 다름이 없었고, 현 선수는 조금도 피로한 모양이 없이 길전여관 본점에 들었는데, 그 원기왕성함에 탄복하지 아니한 사람이 없었더라." (1922년 4월 10일자 매일신보)
"현재요 선수는 11시 10분에 구포를 출발하여 부산역 기점(基点) 8마이루되는 곳을 통과하였다는 보도가 매일신보사 부산지국에 도착하였으므로, 부산역장, 각 신문기자 등 다수가 부산지국 앞에 모여서 기다리고, 일반 민중도 이와 같은 장거리를 결행한 용사를 보고자 하여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는바...(중략)...만세 소리 가운데에 오후 1시 20분 부산지국 앞에 도착하였는데, 조금도 피곤한 기색이 없고 왕성한 원기로 곧 아라이(荒井)여관에 들어갔는데, 현 선수는 말하되, '통과하는 도중에 여러 분의 후의(厚意)를 받은 것은 입으로 다 말할 수 없으며, 오늘은 오전 중에 부산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구포역을 통과할 때 버선이 찢어져서 모래가 많이 들어와 도보하는데 다소간 불편하였으나 출영 나오신 여러 분의 얼굴을 본 즉, 자연 원기가 왕성해져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열광적으로 발 아픈 것을 잊었다' 하며, 지금은 여관에서 목욕하고 정양(靜養)하는 중이라더라." (1922년 4월 11일자 매일신보)
현 선수가 버선이 찢어져 모래가 들어와 불편했다고 하니, 아마 운동화 없이 뛰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1923년 11월 11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당시 육상경기에서 성적을 결정하는 것은 특별한 기술과 훈련 외에도 운동화 착용 여부가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는 비싼 운동화를 신었느냐, 안 신었느냐가 승부의 분수령이 되는 시대였다.
"부산에 선착(先着)한 현재요 선수는 군중으로부터 일어나는 환호성과 칭찬하는 소리를 받아가며 의기양양하게 조금도 피로한 기색이 없이 까맣게 탄 얼굴에 웃음을 띠고 '첫 날 40마이루, 둘째 날 60마이루, 셋째 날 50마이루, 넷째 날 50마이루, 다섯째 날 47마이루, 여섯째 날 최종 31마이루를 달음질했지요. 그런데 곤란하고 불안했던 것은 터널을 지날 때와 고치는 철로를 통과할 때였소. 또 나의 이상한 복장과 까맣게 살이 탄 모양을 보고 밭을 갈던 농부가 '야, 저것 보아라. 감옥에서 탈옥 도주하는 죄수가 아니냐'고 지껄이는 말이 귀에 들림에 실로 웃음을 금치 못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1922년 4월 12일자 매일신보)
"경부 간을 5일 5시간 20분만에 도착한 현 선수는 11일 오후 부산에서 기차로 출발하여 12일 오전 9시 30분 남대문에 도착할 터인데, 각 사회단체, 학교에서는 대대적으로 환영한다 하며, 특히 시내에 있는 4개 권번(券番)에서 기생들이 총출동해 남대문역 앞에는 때 아닌 사람의 조수(潮水)가 밀려들어온 듯하였는데, 특히 중앙청년회 체육부에서는 현 선수를 위하여 현동완(玄東玩)씨가 은배(銀盃)를 증정하고, 천도교 소년부에서는 꽃을 증정하였더라." (1922년 4월 12일자 매일신보)
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야성(野性)을 퇴화시킨 듯하다. 엿새 가까이를 뛰어 서울에서 부산을 달리던 강인함과 끈기의 유전자(DNA)를 가졌던 우리 민족이었다. 조그만 화 하나도 참지 못하는 요즘 사람들, 그 DNA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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