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이케아 배만 불려줍니까?"
17일 점심시간 무렵.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에서 의류와 잡화류를 파는 김모 씨(46·남)는 이렇게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침체한 소비를 되살리고자 정부가 지급하기 시작한 지원금이 애초에 목표로 한 소상공인 등 골목상권에서는 쓰이지 않는다는 토로다. 김 씨는 "소비를 늘려 경기를 활성화한다는 취지는 저 같은 시장 상인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말"이라며 "결국 대기업 배만 불려주는 정책으로 전락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카드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주부터 지급하기 시작한 긴급재난지원금은 대형 가구 매장인 이케아에서 쓸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케아가 유통산업발전법상 가구전문점으로 분류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백화점 같은 대형 유통업체에 입점하지 않고, 단독으로 들어선 명품 매장은 물론 성형외과에서 쓰는 것도 가능하다.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은 스타벅스 등 일부 대기업 계열사 매장에서도 지원금 사용이 가능한 상태다.
◇"재난지원금 지급? 체감 못 해"=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긴급재난지원금의 혜택을 봐야 하는 시장 상인들에게는 정작 돌아가야 할 온기가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원금이 풀리면서 서민 체감 경기도 활기를 되찾을 것이란 전망과 달리 현장에서는 별다른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날 남대문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의 반응은 북적이는 시장 분위기와는 달리 싸늘했다. 남대문시장에서 35년째 생선 가게를 운영해 온 임민자(65·여) 씨는 "코로나19가 터지고 나서 매출이 반의 반 수준으로 줄었다"며 "(지원금이 풀린 지금도) 그다지 매출이 늘어났다는 체감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분식점을 운영하는 박명옥(61·여) 씨도 "지원금 덕을 못 보고 있다"며 "더군다나 '이태원 사태'가 터지면서 다시 매출이 줄고 있다"고 고개를 떨궜다.
긴급재난지원금이 제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를테면 생필품에 해당하는 식자재나, 서서히 외출하는 사람이 늘면서 의류 등 특정 품목으로만 소비가 쏠리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수영복 등 스포츠 용품점을 운영하는 김옥자(65세·여) 씨는 "당장 정부에서 체육관 같은 시설은 다 문을 닫으라고 해놨는데, 저처럼 스포츠 용품을 다루는 곳이 장사가 되겠느냐"며 "무조건 돈만 푼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책 좀 신중하게 세워달라고 정부에 꼭 전해달라"고 했다. 같은 품목을 취급하는 다른 상인도 "코로나19로 매출이 90% 가까이 쪼그라들었는데, 정부마저 안 도와주는 기분"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나마 사정이 좀 나아졌다는 곳도 시장 내에서 이른바 주요 상권인 "'중앙통'에 위치한 덕을 본 편"이라고 귀띔했다. 양말 등 잡화류를 파는 전은수(58·여) 씨는 "코로나19로 매출이 80% 가까이 줄었다가, 최근에는 지원금을 쓰려는 손님들이 좀 오는 편"이라면서도 "여기가 중앙통이다 보니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타지에서 손님이 유입되는 관광지 상인들의 경우 지원금 사용에 지역제한이 걸려 있다는 점이 애로로 꼽힌다.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비빔밥 가게를 운영하는 박모 씨(61·여)는 "코로나19로 관광객이 확 줄면서 타격이 컸는데, 이번에 풀린 지원금은 사용 지역이 한정돼 있어 크게 영향을 못 받고 있다"고 했다.
◇지원금 사용기한 끝나면 다시 '암울'= 골목상권 상인들은 지금보다는 오히려 앞으로가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긴급재난지원금 사용기한인 8월 말까지야 사정이 좀 나아질 수 있더라도, 그 이후는 다시 막막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대전 중구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에서 삼겹살 가게를 운영하는 임모 씨(50·남)는 "요 며칠간 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묻는 손님이 꽤 있었다"면서도 "코로나19로 반 토막 난 지난 수개월 간 매출을 메꾸기는 사실상 힘들다"고 했다. 남대문시장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장연화(38·여) 씨는 "어차피 지원금은 3개월 안에 다 써야 하는 것 아니냐"며 "결국 8월 이후에는 손님들이 줄면서 시장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김동준·은진 기자 blaams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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