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의도치 않은 독` 경시한 J노믹스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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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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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도치 않은 독` 경시한 J노믹스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

인간은 하루 24 시간을 일하는 시간과 여가를 비롯한 여타 시간으로 나누어 보낸다. 몇 시간을 일하고 몇 시간을 여가 시간으로 가질 것인가는 각 개인의 일과 여가 간의 주관적 선호(選好), 임금, 부(富)의 수준 등에 의존한다.

물론 근로 형태가 모든 사람들의 선호에 맞게 다양화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취업하면 보통 하루 8시간은 일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개인이 실제로 일하는 시간에 약간의 제약이 가해질 뿐, 선호 및 임금 등과 소망하는 근로시간 간의 기본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아니다.

노동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어떤 변화가 생겨 시장 임금이 올라가면 공급 측면에 두 가지 효과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용한다.

우선 임금이 올라가면 여가의 시간 비용이 증가하므로 사람들은 여가 시간을 줄이고 일하는 시간을 늘리려고 한다(대체효과). 다음으로 임금이 올라가면 동일한 시간을 일하여 벌 수 있는 소득이 늘어나므로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여가 시간을 늘리려고 한다(소득효과).

그런데 소득이 낮은 수준에서는 대체효과가 소득효과보다 더 크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소득이 높은 수준에서는 소득효과가 대체효과보다 더 크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역사적으로 근로시간이 점점 늘었다가 다시 줄어드는 현상은 그런저런 저간의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유의할 점은 개인이 소망하는 근로시간은 시장 여건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임금과 소득, 그리고 개인의 주관적 선호에 따라 내생적(內生的)으로 정해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들이 소망하는 근로시간은 그들이 당면한 여건에 따라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또 요구되는 근로시간은 업종별로도 다르다. 그런 개인과 시장 사정을 무시하고 정부가 근로시간을 일주일 52시간으로 획일적으로 제한해야 할 논거는 찾기 어렵다.

일에 지친 사람들의 삶을 좀 더 편안하게 하려는,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을 확보해주려는 정부의 선(善)한 의도에 의한 것이지만, 이는 인위적으로 계획하고 명령해서 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런 삶으로의 이행 여부는 임금과 소득 여건에 직면한 각 개인의 적응과 결정에 의존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소득효과가 대체효과보다 커져 근로시간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제한은 앞뒤가 맞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은 비숙련 근로자들에 대한 기업 간 경쟁에 의하는 등, 시장에서 이들 노동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의해 상승한 것이 아니라 인위적 규제에 의한 것이므로, 이들은 위의 두 효과가 작용하는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들은 이미 직장을 잃고 노동 현장에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시간이 걸려야 하는 것들이 있다. 땅에 뿌린 씨앗은 햇볕을 받고 수분과 영양분을 흡수하여 발아하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열매를 맺기까지에는 농부의 보살핌도 필요하지만, 농부도 어쩔 수 없는 시간이 필요하다. 빨리 자라서 풍성한 열매 맺기를 원하는 마음에 자라고 있는 식물을 뽑아 놓는 등, 인위적 조작을 가하면 식물은 죽어버린다.

정부가 경제 성장을 촉진하여 사람들의 윤택한 삶을 앞당겨 실현하고자 한다면 그들이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을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 최저임금을 빠르게 올리고,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근로시간을 법으로 규제하면 사람들, 특히 저소득층은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정책을 시행할 때는 항상 '좋은 의도(good intention)와 의도하지 않은 악(unintended evil)'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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