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총장
■ 2015 새해 새 비전
"'개방형 혁신'보다 한 단계 높은 것이 '협업적 혁신'입니다. DGIST라는 깨끗한 도화지 위에 협업적 혁신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겠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는 '패러다임 변화'다. 성장이 둔화되면서 경제성장, 기술혁신 전략이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변화의 방향을 누구보다 빠르게 인지하고, 조직 안에서 실행에 옮기는 이가 있다. 지난달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수장자리를 연임한 신성철 총장이 그 주인공이다.
신 총장은 "우리나라는 성장 패러다임 변화라는 과제에 직면해 있지만, 사회가 복잡해지고 목소리도 다양해지면서 나라 전체가 한 번에 변화하는 것은 어려워졌다"며 "새로 시작하는 작은 집단이 비전을 가지고 혁신에 성공한다면 그것이 불씨가 돼 사회 전반에 파급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융복합과 협력의 시스템을 갖춘 DGIST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변화의 불씨를 지필 수 있는 기관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가 꿈꾸는 초일류 기관의 모습과 앞으로 4년 동안 새롭게 해 나갈 혁신의 모습에 대해 들어봤다.
대담=안경애 생활과학부 부장
-DGIST 초대 총장을 지낸 데 이어 올초 연임됐는데 각오가 남다를 것 같다.
"4년 전 처음 DGIST에 오면서 임기 동안 열심히 일해서 박수를 받고 떠나자는 목표를 마음 속으로 세웠다. 4년이 흘러가 연임이 결정된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큰 숙제를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백지장 위에 밑그림을 그렸다면, 앞으로는 그 그림들을 어떻게 내실 있게 채워가느냐가 가장 큰 숙제가 될 것이다. DGIST의 역사적 사명은 국내 다른 대학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새로운 이공계 모델을 만들고, 더 나아가 글로벌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대학 안팎의 지지와 지원이 늘어난 만큼 책임감도 높아졌다. 그동안 3배속으로 일을 해왔다면, 이제는 속도를 더욱 높여 5배속으로 해야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
-연구기능만 있던 것에서 교육기관인 과기원으로 새로 출범한 지 5년차다. 캠퍼스와 조직은 어떤 형태를 갖췄는지.
"지난 4년 동안 캠퍼스 마스터플랜에 따라 20만평 대지 위에 연구존과 교육존을 각각 10만평씩 확보해 건물을 완공했다. 이러한 교육, 연구에 이어 기술혁신과 기업화를 위한 시설이 완성된다면 교육, 연구, 사업화의 세 기능이 공존하며 협업할 수 있는 매우 이상적인 캠퍼스가 될 것이다. 이번 임기 동안 10만평 규모의 혁신·기업가 정신존을 구축할 것이다. 이곳에는 기술혁신을 위한 융복합 연구센터를 세우고 기술 사업화를 위한 스타트업 벤처기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DGIST는 학사과정에서 무학과 단일학부 체제를 도입해 내실 있는 기초과학과 교육, 인문사회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대학원에서는 전통적인 학과가 아니라 신물질, 정보통신융합, 의료로봇, 에너지시스템공학, 뇌과학, 뉴바이올로지 등 6개 융복합 전공을 출범시켜 운영 중이다. 연구부는 나노바이오, IT, 로봇, 에너지 등 4개의 연구부서로 이뤄져 있었으나, 경쟁력 있는 연구분야를 중심으로 2개 특화센터로 조직개편을 했다. 이를 통해 연구원 각자가 개별적으로 수행하던 소규모 연구를 뛰어넘어 협업적 대형연구가 이뤄지도록 할 계획이다.
향후 미래자동차 연구센터의 설립도 고려하고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무인자동차 분야의 연구를 통해 대구에 있는 기업들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고 미래 자동차 시대에 대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DGIST의 핵심 키워드는 '융합'과 '협업'인 것 같다.
"최근 우리나라 과학기술계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한정된 재원을 가지고 연구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방적 혁신을 한 단계 뛰어넘는 '협업적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 개방적 혁신 체계에선 산·학·연이 각자 임무를 다 수행한 후 성과를 공개하고 공유하는 순차적인 단계를 거쳤다면, 앞으로는 협업적 혁신을 통해 처음부터 산·학·연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협업해야 한다.
이러한 협업적 혁신을 이룰 수 있는 핵심이 바로 '학연 상생'이다. DGIST는 2004년 연구원으로 출범해 2011년 학사과정을 도입했다. 한 기관에 기초연구를 담당하는 대학(교수)과 응용이나 상용화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기관(연구원)이 공존하는 유일한 기관이다. 학연 상생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이번 임기 내에 협업적 혁신이 일어날 수 있도록 연구 전체를 총괄하는 '융합연구원'을 부총장급 체제로 격상시키고 그 아래 DGIST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연구센터를 만들어 연구원, 교수, 학생이 함께 할 수 있는 상생 모델을 만들었다.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학연 상생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교수와 연구원의 '신분격차'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원들이 스스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출연연구소 중 유일하게 연구원들이 사학연금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고, 일정 기간 근무할 경우 재충전할 수 있는 연가제도도 도입했다. 각 주체들이 각각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고, 협업적 혁신의 모범사례를 마련해 나가겠다."
-지난해까지 기술사업화 성과가 꽤 있었다.
"대학의 역할은 시대별로 달라졌다. 19세기 말까지는 교육만 미션이었지만, 20세기 초 대학원 과정이 들어서면서 연구라는 것이 새로운 미션으로 들어왔다. 20세기 중반부터는 대학이 창출한 연구결과를 가지고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미션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 미션을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은 미국 스탠퍼드대학교다. 스탠퍼드대학에서 새로운 기업가 정신 교육을 받은 졸업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실리콘밸리는 없었을 것이다. 스탠퍼드대학 졸업생이 창업한 기업만 4만여 개에 달하고, 연간 매출규모는 3000조원에 달한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 따라 DGIST의 3대 교육철학을 융복합 교육, 기업가 정신, 리더십 교육으로 정하고 기업가 정신 관련 커리큘럼을 2학년 2학기부터 운영할 계획이다. 창업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3학년에 올라가 심화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창업 사전 창구를 열어주는 기술창업교육센터도 지난해부터 운영하고 있다. 창업교육센터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사업계획서에 대한 멘토링과 실무교육, 자금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투플(이야기를 쓰는 SNS)', '인텔리전트 애니멀(자세교정을 위한 자동장치 개발)' 등 예비창업가들이 DGIST 산학협력단에 위치한 '스타트업 오피스'에 입주해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DGIST의 기술과 지역 기업들을 연계한 기술출자기업도 좋은 모델인 것 같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기술을 개발한 교수나 연구자들의 직접 창업하는 형태가 많았는데, 대부분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교수나 연구자들은 연구능력은 있지만 사업화는 또 다른 능력이다. 연구자의 연구능력과 경영자의 경영능력이 합쳐져야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대구는 과거 섬유산업으로 산업화시대를 연 곳이기도 하다. 오래전에 설립돼 기술력은 갖고 있지만, 새로운 기술이 없어 재도약을 못 하는 기업들이 많다. DGIST 연구원들이 개발한 연구성과를 적용하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성공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전기 이륜, 삼륜차를 생산하는 그린모빌리티는 지난 2013년 전기이륜차 모터를 제어하는 컨트롤러 설계와 제작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이전받아 연구소기업을 세웠고, 일부 핵심 부품을 대기업에 판매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매출도 기대된다."
-지난해 첫 학부 신입생을 받았다. 융합을 키워드로 한 학부과정의 성과는.
"강의평가 결과, 학교 커리큘럼 만족도가 90% 이상에 달하는 등 학생들의 평이 매우 좋다. 올해는 DGIST에 지원한 신입생 중 최초로 합격한 203명 중 단 한 명의 이탈자 없이 모두 등록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의 교육 효과가 증명된 셈이다.
팀워크를 중심으로 한 교육 커리큘럼도 긍정적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학생들은 동료를 경쟁자가 아닌 협력자로 인식하고 있다.
학생들의 협업적 능력과 상호소통 역량을 키워갈 수 있도록 3~4학년 과정에서는 공동연구프로그램 UGRP(Undergraduate Group Research Program)을 운영할 계획이다. 5명 내외의 학생이 그룹을 이뤄 국내외 각 분야 전문가와 DGIST의 교수, 연구원의 지도를 받아 연구를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이 창의력과 소통, 협력을 몸으로 익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 4년 이후 완성하고 싶은 그림은?
"무학과 단일학부의 학부과정을 안착시키고, 6개 융복합 대학원을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 더불어 학연 상생의 모델을 완성시키고, DGIST에서 개발한 기술로 탄생한 기술출자 기업에서 이윤이 창출돼 다시 연구로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초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정신이 있어야 하고 문화가 바탕이 돼야 한다. '개척정신' '창조정신' 'MVP정신'을 바탕으로 소통과 칭찬, 배려의 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다.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각 구성원들이 조화롭게 제 역량을 발휘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힘쓰겠다."
백나영기자 100na@dt.co.kr
◇ 신성철 총장은…
○ 약력
1971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1975년 서울대학교 응용물리학과 졸업(학사)
1977년 KAIST 대학원 고체물리학과 졸업(석사)
1984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재료물리학 졸업(박사)
1984~1989년 미국 이스트만코닥연구소 수석연구원
1989~2011년 KAIST 물리학과 교수, 학생부처장, 국제협력실장, 기획처장, 나노과학기술연구소 초대 소장, 스핀정보물질창의연구단장
2004~2005년 KAIST 부총장
2008년~ 미국물리학회(APS) 펠로(석학회원)
2009~2010년 한국자기학회 회장
2009~2012년 국제자성학술대회(ICM2012) 의장
2010년~ 울산대학교 펠로 프로페서
2011~2012년 한국물리학회 회장
2011년~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초대총장 및2대 총장
2013년 9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미래전략분과의장
○ 수상이력
1999년 과학기술부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2005년 한국의 대표적 기초연구성과 20선 선정
2006년 한국물리학회 학술상
2007년 과학기술부 선정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 10인'
2007년 과학기술최고훈장 창조장(1등급)
2009년 대한민국 학술원상
2011년 KAIST 총동문회 올해의 동문
2011년 KAIST 국제협력대상
2012년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2012년 대한민국 경제리더 대상(글로벌경영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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