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산책] IT 가격파괴의 명암

신상철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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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09-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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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와 통닭을 시작으로 불붙기 시작한 대형 마트들의 `통큰 XX', `착한 OO' 마케팅 전략에서 반값의 유혹 속에 급성장한 맛집, 영화관의 `소셜커머스'에 이르기까지 `가격할인'이 넘쳐나는 시대다.

주말에 들러 본 용산 전자상가 풍경은 10년 전이나 별반 달라 보이는 것은 없었으나 호객 게시판이나 가격표는 실로 엄청난 가격하락의 현실을 보여 주고 있었다. PC는 죄다 100만원 이상이었는데 이젠 불과 몇 십 만원에 팔리고 있으며, 일부 넷북은 가격이 파괴된 상태로 판매되고 있었다. 10년 전에 곧 10만원대 PC가 나올 것이라고 하여 반신반의하였으나 벌써 기정사실이 되어 버렸다.

정보통신 산업에 몰아친 지각변동의 충격파가 세계적인 단말기 `가격파괴'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보드ㆍ부품을 사서 하나하나 정성들여 꾸리고, 조립하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대충 쓰다 버리면 되는 일회성 제품의 시절로 바뀌었다. 상점에 진열된 각종 공짜폰을 보면서 ICT 산업의 무게중심이 HW에서 SW로 옮겨가는 과정임을 절실하게 느껴 본다.

지난달 HP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모바일 사업 포기를 선언하며, 막 불붙기 시작한 모바일 단말기 저가 경쟁에 결정적인 한 방을 던졌다. 태블릿PC인 `터치패드'의 가격을 99.99달러로 내린 것이다, 두달 전 출시당시 판매가격 대비 불과 20%의 수준이다. 원자재 역시 8월 말 현재 LCD 패널 가격은 46인치 기준으로 299달러로, 1년 전 395달러에 비해 32.1%나 떨어지며 연일 사상 최저기록을 깨고 있다.

이처럼 파격적으로 가격이 떨어지는 배경에는 3가지 정도 유형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제품의 상품주기가 극히 짧은 현실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업계에서는 "손해를 보더라도 재고를 털고 새 단말기를 개발하는데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 이른바 `버스폰,' 즉 갈아타기를 위한 저가 폰과 같은 떨이가 나타날 수 밖에 없다"라고 한다.

둘째, 남들보다 한발 앞서 신제품을 출시하고 기존 제품의 가격을 확 낮춰서 다른 경쟁기업들을 고사시키는 전략이다.

셋째, 신규 시장을 선점하려는 업체들 사이의 피말리는 경쟁 역시 가격 인하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저가형 스마트폰으로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낮은 아시아ㆍ아프리카 등을 선점하려는 노키아가 대표적이다.

아무래도 올해 하반기 IT 업계의 화두로 `가격파괴'가 한 몫 할 것으로 보인다.

가격경쟁은 분명히 소비자에게 이익을 준다. `1000원 숍'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IMF 시절 못지않게 가격파괴가 이어지고 있어 사실 수요자입장에선 대 환영이다. 무분별한 가격 경쟁의 폐해를 모르지는 않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싸게 사서 좋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과연 소비자에게 좋기만 할까. 한가지 생각해 봐야 할 점은 그것이 동시에 시장정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자칫 `성장없는 소비 경제'로 이끌려 갈 수도 있다. 마트 할인에 홀려 주변 상점, 동네 경제가 몽땅 망할 수도 있다.

또한 가격파괴의 극한에서는 부작용으로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 최근 출간된 고든 레어드의 `가격 파괴의 저주'에서는 가격파괴의 이면에 숨은 높은 비용이 지적되고 있다. 가격파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중국이나 동남아의 값싼 노동력, 값싼 에너지 등이었으나 이젠 한계를 맞고 있다. 이미 중국산 값싼 제품은 유독성 치약과 멜라민 분유 파동 등으로 바닥을 드러냈고,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던 중국 노동자들은 연일 시위에 나서고 있다. 더 빠르고 더 싼 운송에 대한 수요 역시 대기 오염과 혼잡, 기후 변화 등에 총체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기대 이상으로 가격파괴가 일어나 경제에 무지한 소비자의 입장에서 잠시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무대 뒤에서의 처절한 경쟁과 그 결과는 사뭇 심각해 보인다. 무한경쟁 가격파괴는 결국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정되면서 마무리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는 않는다. 하지만 여러 혁신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값싼 물건이 정말로 값비싼 것임을 깨닫게 되고, 유혹적인 파격 할인 뒤에 숨은 높은 가격의 함정을 조기에 인식함으로써, 하루빨리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가 이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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