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기 통신콘텐츠부장
정보통신부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통신 규제정책의 일대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주요 통신사업자들은 업계 지형과 판도가 변할 수 있다는 희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법안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그 중 핵심은 재판매 관련 조항이다. 특히 국내 유무선 통신사업자들은 재판매의무화 대상, 재판매허가 요건, 시장점유율 상한선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역무로 본다면 무선재판매가 최대 관심사다. 이동통신 3사의 판도에 변화가 일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 등장이라는 새로운 경쟁질서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MVNO는 주파수와 네트워크가 없어도 자신의 브랜드로 이동통신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는 사업자다. 또 유선사업자를 비롯해, 인터넷서비스업체 등의 무선시장 진출을 용이하게 한다. 다양한 신규 사업자가 등장하면, 경쟁 활성화와 요금인하가 가능해진다. 유럽 주요 국가들의 성공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물론 MVNO 도입은 기존 이동통신 사업자에게 위협이기도 하다. MVNO의 저렴한 음성통화 서비스는 요금인하 경쟁을 촉발한다. 가입자당평균요금(ARPU)의 하락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동통신 산업 전체적으로 보면 기회라는 측면이 더 강하다. 시장의 변화와 경쟁질서의 확립, 서비스 체질 강화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서비스 사업에서 단말기, 소비자에 이르는 생태계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유무선 통합은 물론 통신과 타 산업의 융합을 촉진함으로써 새로운 컨버전스형 서비스가 활발하게 등장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MVNO 진입이 허용된다고 해서 통신시장의 경쟁활성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속단하기 이르다. 상대적으로 성공한 유럽의 사례가 있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의 사례도 있다. 시장규모가 작고, 통신서비스 3사의 과점체제가 확고한 국내 시장의 특성도 고려사항이다.
사실 정통부가 MVNO 도입의 길을 열어놓았을 뿐, 구체적인 논의는 이제 시작단계다. MVNO라는 새 제도를 허용하겠다는 의지와 최소한의 법적 기준만 밝힌 정도다. 게다가 기존 사업자들은 탐탁지 않아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와 관련해 우리와 유사한 `MVNO 성장통'을 겪고 있는 일본의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일본 총무성은 올초 MVNO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MVNO의 시장진입을 용이하게 하겠다는 취지였다.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총무성은 사업자간 자율적인 협상과 참여를 내심 기대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NTT도코모와 상호접속에 관한 협정을 벌여오던 재팬텔레콤이 지난달 총무성에 상호접속에 대한 중재신청을 냈다. 기존 사업자인 NTT도코모와 대등한 교섭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경쟁을 촉진하려는 정부의 의지와 시장의 기존 질서가 여전히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초기단계 시행착오나 미국 MVNO 업계의 위기는 우리에게 반면교사다. 더 나아가 유럽식 활성화 모델을 뛰어넘을 수 있는 한국식 성공요인을 찾아야 한다. MVNO로 대표되는 규제완화는 이처럼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유럽의 MVNO가 얼마나 활성화됐는지는 스페인의 세계적인 축구클럽인 레알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MVNO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다는 데서도 쉽게 알 수 있다. 과연 우리도 이런 식의 큰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