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휘/홍진곤 대중문화비평가
AC(컴퓨터 이후) 첫 세기에 진입한 지금 이곳은 근대와 탈근대의 극심한 혼란과 정체 속에서도 역동적인 에너지를 만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헌 나라'의 규범과 잔재들이 지배적이지만, 날밤을 새며 인터넷을 먹고 자란 아이들의 성장 덕분에 알음알음으로 `새 나라'를 만들어 간다. 서서히 사회 공기를 쐬며 변성기를 거쳐온 이 아이들은 특히 `매체'와 `정보' 앞에서만 얼쩡대던 국가적 화두 디지털을 `문화'와 뜨겁게 눈 맞추도록 이끄는 `삐끼' 역할을 한다.
도심을 거대한 이미지의 바다로 창조했던 거리 응원과 촛불 시위. 이 일은 모래알처럼 파편적 단위로 여겨져 온 그 아이들이 `디지털과 문화의 융합'을 우리 사회에 어떤 비주얼로 제시할 수 있는가를 무의식중에 보여준 사건이다. 인터넷 게임과 실시간 채팅과 문자 편지로 익혀온 새로운 관계 방식이 그렇게 미리 광범위하게 학습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아이들의 낯선 생활 패턴을 보며 여전히 중독과 원조교제 같은 신종 사회 병리와 범죄부터 떠올린다. 디지털 또는 문화라는 헌사는 아이들의 삶과는 관계없는, 산업과 벤처와 기술의 단기적 돈벌이에만 따라붙는 값비싼 브랜드였을 뿐이다.
알다시피 과학이 우주로 눈을 돌려 또다른 생명체를 탐사하는 동안 인문학은 DNA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기복제를 하는 `문화 생명체'를 연구해 왔다. 새로운 문화는 숙주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처럼 어린이를 숙주 삼아 번식하는 이질적인 생명이다.
이 당연한 사실은 항시 인류 자신에 의해 거부당했다. "요즘 애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글귀가 이집트 피라미드에 새겨진 그 때부터 문명의 확고한 운명처럼 보인다. 그 탓에 새로운 문화는 기성 문화의 치마폭에 떨어진 불똥처럼 잠시 타오르다가 잦아들고는 수백년 뒤에야 제 불기둥을 만들곤 했다. 다행히도 이 법칙이 깨어질 모양이다. 정보통신 네트워크를 통해, 디지털과 문화의 혼성 모방에 의해 새로운 것들이 사회에 접합하고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 무척 빨라진다.
장담하건대 십년 안에 수십만의 아이들이 새로운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단말기와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 기존 미디어보다 빠르게 뉴스를 송신할 것이다. 아예 그 아이들이 미디어와 브랜드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자본 형성에 그치지 않고 소년소녀들을 위한 기술훈련 센터와 학교를 만들어 교육 체제를 바꾸려 할 것이다. 전 세계 네트워크의 새로운 비전으로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키려고 할 것이다. 피와 죽음의 훈장을 덕지덕지 달았던 근대 혁명과 달리 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공유하는 컴퓨터 단말기만으로 기존 가치들을 철저히 재구성하고, 종국에는 `새 나라'의 디지털 문화를 세울 것이다.
소설에 나오는 공상이지만 곧 현실화될 시나리오다. 이 나라의 10대들은 정보통신 네트워크를 통해 이미 `두발제한 폐지' `선거권 낮추자' `수능고시의 자격시험 전환' 등 선명한 정치감각을 발휘한다. 그 조숙함과 운동 방식이 꽤나 저돌적이라 자칫 앞선 운동권 세대의 명암을 닮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일상의 가뿐가뿐한 스타일로 남지 못하고 거창한 디지털 족보처럼 변할까 싶은 염려를 기우로 만들려면, 시대의 고통에 동참하며 연대의 정신을 키워온 선배들의 참여가 중요하다. 재미와 즐거움에 이끌려 온ㆍ오프라인 연대를 익혀온 `새 나라'의 디지털 어린이들에게는 `일찍 자라' 또는 `애들은 가라'는 말 대신에 자신을 기꺼이 숙주로 내주며 새로운 문화의 토양이 되어줄 선배들이 절실하다.
* 필자소개 : 김종희/홍진곤씨
AC(컴퓨터 이후) 첫 세기에 진입한 지금 이곳은 근대와 탈근대의 극심한 혼란과 정체 속에서도 역동적인 에너지를 만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헌 나라'의 규범과 잔재들이 지배적이지만, 날밤을 새며 인터넷을 먹고 자란 아이들의 성장 덕분에 알음알음으로 `새 나라'를 만들어 간다. 서서히 사회 공기를 쐬며 변성기를 거쳐온 이 아이들은 특히 `매체'와 `정보' 앞에서만 얼쩡대던 국가적 화두 디지털을 `문화'와 뜨겁게 눈 맞추도록 이끄는 `삐끼' 역할을 한다.
도심을 거대한 이미지의 바다로 창조했던 거리 응원과 촛불 시위. 이 일은 모래알처럼 파편적 단위로 여겨져 온 그 아이들이 `디지털과 문화의 융합'을 우리 사회에 어떤 비주얼로 제시할 수 있는가를 무의식중에 보여준 사건이다. 인터넷 게임과 실시간 채팅과 문자 편지로 익혀온 새로운 관계 방식이 그렇게 미리 광범위하게 학습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아이들의 낯선 생활 패턴을 보며 여전히 중독과 원조교제 같은 신종 사회 병리와 범죄부터 떠올린다. 디지털 또는 문화라는 헌사는 아이들의 삶과는 관계없는, 산업과 벤처와 기술의 단기적 돈벌이에만 따라붙는 값비싼 브랜드였을 뿐이다.
알다시피 과학이 우주로 눈을 돌려 또다른 생명체를 탐사하는 동안 인문학은 DNA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기복제를 하는 `문화 생명체'를 연구해 왔다. 새로운 문화는 숙주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처럼 어린이를 숙주 삼아 번식하는 이질적인 생명이다.
이 당연한 사실은 항시 인류 자신에 의해 거부당했다. "요즘 애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글귀가 이집트 피라미드에 새겨진 그 때부터 문명의 확고한 운명처럼 보인다. 그 탓에 새로운 문화는 기성 문화의 치마폭에 떨어진 불똥처럼 잠시 타오르다가 잦아들고는 수백년 뒤에야 제 불기둥을 만들곤 했다. 다행히도 이 법칙이 깨어질 모양이다. 정보통신 네트워크를 통해, 디지털과 문화의 혼성 모방에 의해 새로운 것들이 사회에 접합하고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 무척 빨라진다.
장담하건대 십년 안에 수십만의 아이들이 새로운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단말기와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 기존 미디어보다 빠르게 뉴스를 송신할 것이다. 아예 그 아이들이 미디어와 브랜드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자본 형성에 그치지 않고 소년소녀들을 위한 기술훈련 센터와 학교를 만들어 교육 체제를 바꾸려 할 것이다. 전 세계 네트워크의 새로운 비전으로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키려고 할 것이다. 피와 죽음의 훈장을 덕지덕지 달았던 근대 혁명과 달리 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공유하는 컴퓨터 단말기만으로 기존 가치들을 철저히 재구성하고, 종국에는 `새 나라'의 디지털 문화를 세울 것이다.
소설에 나오는 공상이지만 곧 현실화될 시나리오다. 이 나라의 10대들은 정보통신 네트워크를 통해 이미 `두발제한 폐지' `선거권 낮추자' `수능고시의 자격시험 전환' 등 선명한 정치감각을 발휘한다. 그 조숙함과 운동 방식이 꽤나 저돌적이라 자칫 앞선 운동권 세대의 명암을 닮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일상의 가뿐가뿐한 스타일로 남지 못하고 거창한 디지털 족보처럼 변할까 싶은 염려를 기우로 만들려면, 시대의 고통에 동참하며 연대의 정신을 키워온 선배들의 참여가 중요하다. 재미와 즐거움에 이끌려 온ㆍ오프라인 연대를 익혀온 `새 나라'의 디지털 어린이들에게는 `일찍 자라' 또는 `애들은 가라'는 말 대신에 자신을 기꺼이 숙주로 내주며 새로운 문화의 토양이 되어줄 선배들이 절실하다.
* 필자소개 : 김종희/홍진곤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