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의 중국 수출용 인공지능(AI) 칩 수출 통제 압박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엔비디아향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량은 줄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구형인 HBM3(4세대) 수요도 여전히 견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엔비디아가 중국 내 제품 판매를 지속하고 신제품 출시 시기를 앞당길 경우, 국내 메모리 기업들은 오히려 미중 갈등의 수혜를 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7일 삼성과 SK하이닉스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 AI 칩 생산을 줄일 것이었다면 삼성과 SK하이닉스에 별도의 공지나 안내를 줘야 했는데,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며 "엔비디아는 미 정부의 압박에도 여전히 중국 시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이는 엔비디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부터 공급받는 HBM3(4세대) 물량에 변화를 주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HBM3은 최신 메모리인 HBM3E(5세대)에 비해 구형 제품으로,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용 AI 칩인 H20에 탑재되는 메모리다. H20은 엔비디아의 주력 제품인 H100·H200 대비 저성능인 중국 수출용 AI 칩이다.
앞서 미 정부는 지난달 중순 엔비디아의 H20 칩을 중국으로 수출할 때 새로운 수출 허가 요건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는 미 정부가 조 바이든 전 대통령 행정부 때부터 부과해 온 대중국 반도체 수출 제한 수위를 한층 더 강화한 조치다.
엔비디아는 미 정부 정책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미 정부가 H20 수출 규제를 공식화하자 곧바로 중국을 방문해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를 찾았다.
황 CEO는 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밀컨 콘퍼런스 2025'에서도 "경제적인 이유나 국가안보 이유로 기술 접근을 제한하는 논리가 있지만, 이는 상대국 정부가 자국 내 컴퓨팅 역량을 활용하는 데 제한받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며 트럼프 정부를 비판했다.
국내 업계에서는 여기에 엔비디아가 차기 AI 칩인 '블랙웰 울트라(B300)' 출시 시기를 앞당기고 있는 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엔비디아는 미 정부의 수출 규제에 맞서기 위해 차기 제품 양산 속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가 미 정부의 규제에 굴복하지 않고 또 다른 저가형 칩을 출시하는 식으로 중국 수출을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며 "엔비디아는 HBM3 주문을 전혀 줄이지 않았고, 내년 공급 물량에 대해서도 삼성·SK와 이미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순원기자 ssun@dt.co.kr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 도착한 뒤 현지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위위안탄톈 웨이보 캡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