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총수들이 '오너십'(Ownership) 강화를 통한 위기 정면 돌파에 나섰다. 내년 국내외 경기 불확실성이 이어지며 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에 대비, '믿을 수 있는' 인사나 자녀를 요직에 앉힘으로써 신사업 확장과 경영 안정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포석이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오는 14일부터 사업부문장과 해외법인장, 주요 임원 등이 참석하는 글로벌 전략회의를 순차적으로 개최한다. LG전자도 15일 조주완 사장 주관으로 본사와 각 사업본부 경영진, 해외 지역대표, 법인장 등이 참석하는 전사 확대경영회의를 연다. 이번 전략회의는 최근 사장단 인사 직후 열린다는 점에서 새로운 인사·조직 하에서의 미래 방향성이 뚜렷하게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단행된 주요 그룹 인사에선 총수 일가를 포함해 핵심 인사가 주요직에 대거 배치됐다. 삼성전자의 경우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하고 전영현(63) 삼성SDI 이사회 의장(부회장)을 초대 단장에 선임했다. 전 부회장은 메모리반도체와 배터리 사업을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성장시킨 주역으로 꼽히는데, 다시 삼성전자로 불러들이면서 이재용(55) 회장의 보좌 임무를 맡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 이후 끊긴 인수·합병(M&A) 등에서 전 부회장이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SK그룹은 최태원(63)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59)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그룹 2인자 격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올랐다. 최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을 겸직하는 데다 최근 개인사를 겪고 있는 만큼, 빈틈을 전문경영인에 맡기기보다 가족 경영에 기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또 최 회장의 장녀 최윤정(34) 본부장은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을 맡아 그룹내 최연소 임원이 되면서 핵심 신사업인 바이오 분야의 육성을 책임지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계열사 사장단 인사만 발표한 상태다. 현대모비스 신임 대표에 이규석(58) 현대차·기아 구매본부장, 현대제철 대표에는 서강현(55)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을 각각 선임했다. 모두 내실경영 중심의 인사로 풀이된다. 관심은 현대차그룹 승계구도의 변화 여부로, 순환출자 고리의 중심에 있는 현대모비스의 인사가 핵심이다. 현대모비스의 인적분할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 계획이 한파례 무산됐다는 점에서, 정 회장이 정몽구(85) 명예회장으로부터 지분을 넘겨받은 시나리오에 힘이 실린다. 앞서 정 명예회장은 장녀 정성이(61) 이노션 고문, 차녀 정명이(59) 현대커머셜 사장과 함께 보유하고 있던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이하 해비치) 지분을 지난달 막내딸인 정윤이(55) 해비치호텔 사장에게 모두 넘겨 승계 신호탄을 쐈다.
LG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5개 계열사에서 사장을 지낸 권영수(66) 전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이 용퇴했다. 핵심 미래 사업으로 꼽히는 LG에너지솔루션 대표 자리는 김동명(54) 사장이 이어받아 새로운 '구광모맨'으로 떠올랐다.
롯데그룹은 신동빈(68) 회장의 장남 신유열(37) 전무가 신설되는 미래성장실 실장을 맡으면서 롯데바이오로직스의 글로벌전략실장도 겸직해 그룹 신사업을 주도한다.
한화그룹은 김승연(71) 회장의 삼남 김동선(34)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지난달 승진했으며, 코오롱 4세인 이규호(39) 코오롱모빌리티그룹 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지주 전략 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해 핵심 사업을 총괄한다. LS 오너가 3세인 구동휘(41) LS일렉트릭 비전경영총괄 대표(부사장)는 지난달 인사에서 LS MnM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이동해 배터리·전기차·반도체 등 미래산업 분야를 맡았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장남 이선호(33)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은 작년 인사에서 현직으로 발령 나 미래 신성장동력 발굴을 해오고 있다. CJ는 이달에 정기 임원 인사를 앞두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위기일수록 '자기 사람'을 중용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총수 일가의 경우 얼마나 경영 성과를 낼지가 경영권 승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장우진기자 jwj17@dt.co.kr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각 사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