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임술년 첫날 소동파가 조선에 온 까닭은](http://contents.dt.co.kr/images/202209/2022090102102269061001[1].jpg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임술년 첫날 소동파가 조선에 온 까닭은")
새로 배 건조하고… 기생들 가무 연습도
참가 손님 위해 차비 할인하고 상품 준비
한강 인도교·뚝섬 수원지 등 전국서 성행
1922년은 임술년(壬戌年)이었다. 그해 1월 1일 매일신보에는 '소동파(蘇東坡)의 적벽(赤壁)의 청유(淸遊)'라는 제목의 글과 그림이 실렸다. 새해 첫 날부터 소동파가 조선에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연을 찾아 100년 전으로 가보자.
소동파가 적벽부(赤壁賦)를 지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전남 화순 동복의 적벽에서 뱃놀이 대회를 한다는 '호남 동복(同福) 적벽범주(赤壁泛舟) 대회' 광고가 그해 8월 17일자 매일신보에 실렸다. "소선(蘇仙; 소동파) 일거(一去) 후에 적벽(赤壁)이 기경추(幾經秋; 가을이 몇 번이나 지났음)요, 금년 음력 7월 기망(旣望; 16일)이 임술(壬戌) 60주라. 호남 동복현에 적벽의 범주(泛舟; 배를 물에 띄움)하니, 명월(明月) 천재(千載; 천 년) 하에 이제 고풍류(古風流)를 견(見)하노라. 천하 유지 인사는 대월원동유(帶月願同遊; 달과 함께 놀다)를 원하노라."
화순 적벽범주대회는 착착 진행되어 대회에 참가하는 손님을 위해 새로 배를 건조하기로 한다. "화순 동복 적벽강 범주대회의 찬성자는 내선인(內鮮人)을 물론하고 예상 이외의 다수에 달하여, 현재 있는 편주(片舟) 5~6척으로는 도저히 내빈에게 만족히 하기 어려우므로, 신식으로 배 2척을 제조하기로…" (1922년 8월 29일자 매일신보)
이 대회를 위한 기생들의 연습도 한창이었다. "전남 광주권번 예기(藝妓)의 가무는 남선(南鮮) 지방에서 일찍이 호평이 자자하여 각 권번 중 우등을 점하였는데, 9월 6일, 7일, 8일 3일간 동복 적벽강 범주대회에 참가하여 명성을 한층 발휘하고자 하여 열심히 각 반(班) 가무를 연습한다더라." (1922년 9월 2일자 매일신보)
주최측은 적벽범주대회에 참가하는 손님을 위해 차비도 할인하고 상품도 준비했다. "화순 동복 적벽범주대회의 내객(來客)의 편리와 경제를 생각하여 기차는 3할 할인을 하기로 이미 결정되고, 자동차는 2할 할인을 할 터이라는데 자동차는 광주 남문통 남신자동차부에서 타게 된다더라. 또한 범주대회 상품은 1등 5원, 2등 3원, 3등 2원으로 정하였으나, 금전은 혹 재미가 적은 점이 있을까하여 다시 변경하였는데, 1등은 은배(銀盃) 1쌍, 2등은 옥편(玉篇) 1권과 운휘(韻彙) 1권, 3등은 옥편 1권으로 변경하였더라." (1922년 9월 5일자 매일신보)
전남 화순의 붉은 절벽은 '화순 적벽'으로 불린다. 1519년 기묘사화로 화순 동복에 유배 중이던 최산두가 이곳의 절경을 보고 소동파가 읊었던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해 '적벽'이라 이름 지었다. 장항리의 노루목적벽, 창랑리의 창랑적벽, 물염정(勿染亭)이 있는 물염적벽 등 7㎞에 이르는 적벽을 형성하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이 곳의 뱃놀이가 유명했다. 일제 강점기에도 화순 적벽 뱃놀이는 명성을 계속 누렸다.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임술년 첫날 소동파가 조선에 온 까닭은](http://contents.dt.co.kr/images/202209/2022090102102269061001[2].jpg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임술년 첫날 소동파가 조선에 온 까닭은")
소동파의 적벽 뱃놀이를 본딴 범주대회는 화순에서만 열린 것은 아니었다. 한강을 비롯해 전국에서 열렸다. '한강에 배를 띄우고 밝은 달 아래 즐거운 흥치로 반야(半夜)를 청유(淸遊)해'란 제목의 1922년 9월 9일자 매일신보다. "서화협회 주최 임술 기망 범주대회는 예정과 같이 그제 7일 오후 3시에 한강 인도교 상류에서 배를 띄우고 일반 회원 57명이 모두 집회한 후에, 김돈희(金敦熙), 허백련(許百鍊)씨 등이 석상(席上) 휘호(揮毫)가 있었고, 이어서 장휴(張烋)씨가 용사비등(龍蛇飛騰)한 필법으로 시(詩)를 쓰기 시작하여 다수의 경장가집(瓊章佳什)이 폭주하였고, 이를 마치자 해는 서산에 떨어지므로 명랑한 등촉(燈燭)이 휘황한 아래에서 식탁이 열렸는데, 환소(歡笑)하는 소리는 강천(江天)의 적막함을 깨트리고 술이 반쯤 취하자 명창 박춘재(朴春載)의 인솔 하에 기생의 일대(一隊)가 앞에 나타나며 강호별곡(江湖別曲), 소상팔경(瀟湘八景) 등의 유창 요량한 노래가 구름을 사무치도록 높았다. (중략) 오후 10시경에 기생의 춤과 박춘재의 기기괴괴한 재담(才談)이 있었는데, 일반은 모두 허리를 붙들고 절도(絶倒)하였으며 11시에 다시 식탁을 열고 화기가 양양한 가운데서 술과 노래와 춤을 아울러 마심에 일행은 유쾌 만득(滿得)함을 이기지 못할 만치 환락(歡樂)을 극(極)히 하고 새벽 1시에 신명관 앞에서 각자 산회하였더라."
한강에선 주로 한강 인도교와 뚝섬 수원지 부근에서 뱃놀이가 성행했다. 과거에는 뱃놀이가 양반들의 풍류였지만 일제시대 이후론 연인들의 데이트 놀이로 성격이 변했다. 이는 선박의 대중화, 사회 풍조의 변화와 관련이 있었다. 그런데 달빛 아래 뱃놀이를 하다 물에 빠져 죽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관할 경찰서였던 동대문 경찰서는 사고 방지를 위해 불량 보트 단속 등을 펼쳤다고 한다.
한편 대회는 전주에서도 열렸다. "전북 참여관 박영철(朴榮喆) 씨는 9월 7일이 옛날 송조(宋朝)의 동파(東坡) 소식(蘇軾) 선생의 적벽(赤壁) 주유(舟遊)하던 임술지추(壬戌之追) 7월 기망(旣望)인 고로, 이를 기념으로 하여 동일 오후 3시부터 완산 청학루(靑鶴樓)에서 도지사와 일반 시인 묵객(墨客)을 다수 청요(請邀)하여 '임술 7월 기망'이라는 주제로 굉장한 시회(詩會)를 열었다더라." (1922년 9월 8일자 매일신보)
'적벽부'는 소동파가 유배 시절 후베이성(湖北省) 황강(黃岡) 창장(長江)의 적벽을 선유(船遊)하면서 지은 것이다. 첫 구절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무릇 천지간의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으니, 진정 나의 소유가 아니면 터럭 하나라도 취해서는 안 된다.(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진실로 나의 소유인 것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저승에라도 가지고 갈 것처럼 부와 권력을 악착같이 모으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이다. 달빛 어리는 한강에서 선유 하면서 소동파의 적벽부라도 한 번 읊어 보았으면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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