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모든 게 싸다 싸!"… 100년 전 종로 야시장은 밝았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205/2022051202102269061001[1].jpg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모든 게 싸다 싸!\"… 100년 전 종로 야시장은 밝았다")
옥양목, 백동 수저, 고무신에 빙수까지 '없는게 없어'
물건 가격 속이고 불량식품 파는 '비양심'도 활개쳐
코로나 팬데믹이 주춤하고 거리두기 방침 등이 완화되자 길거리에 사람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서울 도심 종로의 밤거리도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다. 야시장이 열려 사람들로 붐볐던 100년 전 종로의 밤이 부활한 듯 하다. 그 때의 종로 야시장을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종로 야시(夜市) 첫날의 성황, 40~50개의 점포와 5, 6천명의 구경꾼'이란 제목의 1920년 5월 동아일보 기사다. "작년에는 만세소요(3.1운동) 사건이 발발하여 사람이 많이 모이면 또 무슨 사건이 발생할까 하는 당국의 염려로 인하여 마침내 개점하지 못하였던 종로 야시는 금년에 이르러 일반 상인의 주선으로 겨우 허가를 얻어서 5월 1일 오후 1시부터 가가(家家)를 내는 자가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하여 7시 반에서 8시 경에는 그 수효가 40~50개에 달하였고 야시를 처음 여는 날이라 산보 겸하여 구경 나온 사람은 남녀노소를 합하여 5, 6천 명에 달하였고 휘황찬란한 등불은 별이 총총 박힌 하늘을 거꾸로 놓은 듯 하였고 와각와각하는 사람들의 지껄이는 소리와 장사치들의 외치는 소리는 간혹 자동차, 인력거의 오고가는 소리와 어울러져서 새삼스럽게 서울의 번화함을 한창 더 자랑하는 듯 하였더라."
1919년 3.1운동으로 개점하지 못했던 종로 야시는 1920년 총독부의 허가를 받아 다시 문을 열었다. 종로 네거리(보신각)에서 종로 3가 사이 노점들이 늘어서서 장사를 했다. 휘황한 등불을 켜고 온갖 물건들을 팔았다. 없는 물건이 없었다. 물건 살 일이 없어도 사람들은 구경삼아 야시장을 찾았다. "창경원(창경궁) 벚꽃놀이와 종로 야시장을 구경하지 않으면 서울 구경을 한 게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종로 야시장은 갈수록 번창했다. 1921년 4월 13일자 매일신보는 대성황인 종로 야시장을 소개하고 있다. "종로 네거리로부터 교동 어귀의 맞은편까지의 약 4정(町) 쯤 되는 사이에는 작년 이때에 보던 야시의 노점(露店)이 또 다시 벌려있게 되었다. 오후 6시 개시 시간이 됨에 여러 상인들은 종로 네거리 보신각의 동편을 향하여 오른편 길 옆으로 모이더니, 순서로 자리를 정한 후에 보기 좋게 일렬로 150여개 노점이 교동 어귀 건너편에 벌려 놓자 또 다시 '싸구려' 소리가 각처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옥양목이 싸구려, 한 자에 10전이요'하는 곳도 있고, '백동 수저 한 벌에 35전이요'하는 곳도 있고, 기타 잡화를 벌려놓은 사람들은 무슨 물건 이름을 부르기가 어려우니까 덮어놓고 '싸구려'만 부르는데, 내왕행객(來往行客 ; 지나가는 사람)의 구경꾼도 많지마는, 옥양목이니 서적이니, 일용잡화의 매매도 매우 흥청이었는바, 야시 사무소의 말을 들은 즉, 당일은 첫 날이어서 가가 수가 적으나, 수 일만 지나면 종로 3정목 단성사 건너편까지 연장이 되겠다고 말하더라."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모든 게 싸다 싸!"… 100년 전 종로 야시장은 밝았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205/2022051202102269061001[2].jpg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모든 게 싸다 싸!\"… 100년 전 종로 야시장은 밝았다")
1922년 5월 12일자 동아일보 기사는 야시장에서 어떤 제품들을 팔고 있는지를 소개한다. '호모화(護謨靴 ; 고무신)로 대표된 종로 야시의 광경'이란 제목의 기사다. "종로 야시는 10일 저녁부터 열렸는데, 제일 많이 벌려 놓은 것은 신소설이요, 사이사이 과실을 늘어놓고 어린아이들이 외치는 소리가 느리게 들리며 작년보다 더 나은 것은 고무신을 늘어놓은 것이요, 야시에 가장 떠드는 것은 빙수가(氷水家)가 외치는 소리인데, 이것도 아직 날이 선선하여 아주 시세가 없는 모양이며, 사람도 얼마 오지 아니 하였고, 요령(큰 방울)을 흔드는 경매꾼들이 입에 거품을 흘리고 이마에 땀을 흘리며 사람을 끌기에 야단들이다."
야시장은 종로 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열렸다. 부산 야시, 대구 야시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야시가 열리면 사건·사고도 많이 일어났다. 불량식품·제품을 팔거나 바가지를 씌우는 일이다. 1921년 8월 8일자 매일신보 기사다. "부산 야시에 일본인 상인들이 부패한 음식물과 익지 아니한 과물(果物 ; 과일)을 파는 고로, 부정 영업자 20명을 처벌하려고 수속 중이다."
1940년 6월 1일자 조선일보에도 비슷한 기사가 눈에 띈다. "싸구려를 외치는 종로 야시의 고무구두 값이 사실인 즉 엄청나게 공정가격을 무시하고 비싼 값을 받는 것이 드러나 수일 전 종로 경찰서 경제계에서 야시를 일제히 수사하여 부정상인 40여명을 검거하고 배후에 고무구두의 비밀거래가 있지나 않나 하고 추궁 중이던 바, 드디어 커다란 고무구두상들의 비밀거래 사실이 드러났다."
길을 잃은 사람, 불량배의 못된 짓 등도 비일비재 했던 모양이다. '우리 여편네 찾아주면 은혜를 갚겠소'란 제목의 1921년 5월 20일자 매일신보 기사다. "인의동 135번지 박한명(朴漢明)은 자기 아내 되는 왕성녀가, 지난 12일 오후 8시 경에 종로 야시를 구경하겠다고 아들 되는 길룡(吉龍, 5)을 데리고 나가서 돌아오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동대문경찰서에 수색원을 제출하였는데, 신장은 4자 5치 가량이요, 입은 옷은 명주 남색 저고리와 옥양목 흰 치마를 입었다더라."
"종로통에는 야시가 다시 시작되어 매일 밤이 깊도록 통행하는 남녀노소가 빈번(頻繁)함을 기회로, 불량청년들은 무슨 좋은 시기나 얻은 듯이 총출(總出)하여 여러가지 좋지 못한 행동을 하며, 더욱 산보하는 부녀들에게 난폭한 일을 하는 중 지난 28일 밤에도 대화정에 사는 여자가 사직동 친구의 집을 방문하고 인력거로 돌아오는 길에서 우미관 부근에 이른 즉, 마침내 불량자 3명은 인력거 채를 붙잡고 희롱하고자 하는 것을 통행인에 구조되어 무사히 되었는데, 종로경찰서는 더욱 불량청년들을 취체하고자 지금 대 활동 중이라더라." (1922년 6월 2일자 매일신보)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야시장을 좋아한다. 달밤에 물건 사고 맛있는 것 먹으면서 시장 구경하는 일은 분명히 낭만적이다. 야시장이 활기를 찾아 대한민국의 밤이 음울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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