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송종훈의 오디세이] 조선 기생들이 日 도쿄에 간 이유는?](http://contents.dt.co.kr/images/202203/2022033102102269061001[1].jpg "[송종훈의 오디세이] 조선 기생들이 日 도쿄에 간 이유는?")
쌀·인삼 등 조선생산품 팔기 위한 판촉장소로 활용
별도로 세운 조선관에는 하다하다 '기생'까지 출품
총독부 의도와 달리 모욕감 느낀 조선인들 맹비난
1922년 3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평화박람회'가 열렸다. '평화박람회'는 3월 10일부터 7월 말까지 열렸다. 3·1운동 이후 '문화정치'를 표방한 조선총독부가 일본의 발전상을 조선인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홍보·회유정책의 일환이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에서 생산된 조선미(朝鮮米), 모피, 인삼 등을 판매하기 위한 판촉장소로 적극 활용했다. 100년 전 박람회 현장을 찾아가 본다.
조선총독부는 '평화박람회' 시찰단을 적극 모집했다. 총 222개 시찰단이 구성되어 5,187명이 도쿄에 갔다. 하지만 시찰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1922년 3월 25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시민의 피를 짜내 몇 사람의 구경 가는 여비에 보태 준다'라는 제목의 기사다. "경성부에서는 방금 동경에서 열린 평화박람회를 기회 삼아 일본시찰단을 조직한다는데, 회비는 매인(每人) 250원이요 그 중에 75원을 부청에서 담당해 준다나. 경비가 군졸(窘拙; 궁함)하여 '구경세'니 '노름세'니 별별 듣도 보도 못하던 세금을 마련하여 경비를 짜내기에 정신이 없다는 것인가. 매인(每人)에 75원이요 단원이 20명이라 한 즉, 보조비만 도합 1,500원이라. 돈이 없다고 앓는 소리는 해도 이따위 공돈은 어느 구석에서 나오는지. 시민의 피를 짜내어서 몇 사람 구경 가는 여비에 보태 준다는 후의(厚意)야 말로 경성부 당국의 특별한 마음씨라 할는지. 관광단 조직과 같이 열심히 하면 다른 문제도 별로 어려운 일은 없을 듯…"
개막 첫날인 3월 10일 20여만명이나 되는 구경꾼들이 몰렸다. 4월 2일에는 30여만명이 입장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조선총독부는 '평화박람회' 장에 조선관(朝鮮館)을 별도로 세우고 조선에서 생산된 물품들을 홍보했다. 경기도(384), 충청북도(24), 충청남도(134), 전라북도(57), 전라남도(68), 경상북도(155), 경상남도(148), 황해도(74), 평안남도(103), 평안북도(69), 강원도(11), 함경남도(41), 함경북도(22)에서 합계 1,292점의 조선 물품이 출품되었다. 그중 특이한 것도 많았다.
![[송종훈의 오디세이] 조선 기생들이 日 도쿄에 간 이유는?](http://contents.dt.co.kr/images/202203/2022033102102269061001[2].jpg "[송종훈의 오디세이] 조선 기생들이 日 도쿄에 간 이유는?")
또 다른 특이한 물품으로 소(牛)가 있다. '평화박람회에 경북우(慶北牛) 출품'이란 제목의 1922년 1월 22일자 매일신보 기사다. "기보(旣報)와 같이 금년 봄 3월부터 동경에서 개최하는 평화박람회에 조선에서 축우(畜牛) 6두를 출품하게 된 바, 우리 경북에서 2두를 출품케 되어, 경상북도 축산과에서 그 출품 우(牛)선택에 분망(奔忙)하던 중, 의성, 경산, 경주 등 군(郡)의 축우 4두를 예택(豫擇; 미리 선택함)하여 도 종묘장에서 사양 중이던 바, 이번 본부로부터 나쿠라(名倉) 기사(技師)가 대구에 와서 있으면서 4두 중 2두로 결정하였더라. 강원도에서도 2두를 출품하기로 되었다."
게다가 기생까지 출품하는 웃지못할 코미디도 벌어졌다. 1922년 3월 4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평화박람회에 출품할 기생'이란 기사다. "평화박람회에는 각 처에서 기생이 많이 모인다는데, 조선에서도 기생 12명을 보내기로 되어 방금 인물을 물색(物色)하는 중이라는데, 이번에 출품할 기생은 나이 17살 이상 19살 이하로 인물은 물론 일색(一色)이라야만 된다 한다."
이렇게 해서 선발된 12명의 기생은 그해 4월 10일 남대문역을 출발해 도쿄로 향했다. 1922년 4월 11일자 매일신보 기사다. "시내 대정권번 기생 12명이 순전한 조선 고유의 예술을 가지고 만국 사람에게 조선의 특징인 여성의 미를 자랑하는 동시에 은근한 맛이 깊이 감춰진 여러 가지의 무도(舞蹈)와 또한 애연(哀然)한 정서와 숭현(崇賢)한 취미가 엉긴 가곡(歌曲) 등으로써 우리 연예계에도 이렇게 현묘(玄妙)한 예술이 있다 함을 널리 세계적으로 소개하고자 경성을 출발하여 현해탄(玄海灘)을 건너 다시 동경으로 직행한다. (중략) 정거장에는 그들을 전송하고자 나온 동료 기생 100여명과 기타 허다한 사람들이 모였는지라, 철마(鐵馬) 주위로 꽃밭이 자욱하였는데, 문득 기차가 움직이자 창(窓)마다 밑으로 저마다 얼굴을 내밀고 '잘 있거라, 곧 다녀 오마', '오냐! 부디 잘 가서 재미있게 놀고 구경도 많이 하고 오너라' 하는 작별인사가 끊이지 아니한다. 평화박람회에 가서는 제국극장(帝國劇場)과 조선관에 출연한다 하며, 체재 일자는 3주일간이라더라."
이러다 보니 '조선관'에 대한 조선인들의 비난이 터져 나왔다. "평화박람회 제2회장에 있는 조선관과 만몽관(滿蒙館)에 대하여 동경에 있는 조선인과 중국인들의 비난이 많은 중, 조선관에 벌려 놓은 조선집의 모형과 조선 사람의 풍속사진은 조선 사람의 흠만 드러내서 세계 각국 사람에게 욕을 보이는 것이라고 조선 청년들은 크게 분개하여, 그 진열품을 모두 치우라고 박람회 당국에 교섭한 결과, 17일 안에는 모두 치우기로 결정하였으며…"(1922년 4월 18일자 동아일보)
일본의 국력을 과시해 조선인들을 하위 협력자로 만들려고 했던 총독부의 의도와 달리 '평화박람회'는 조선인들에겐 모욕으로 다가왔다. 박람회장의 화려함 뒤에 숨어있는 슬프고도 아련한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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