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범 내려온다"...그 많던 호랑이는 어디 갔나](http://contents.dt.co.kr/images/202107/2021070802102269061001[1].jpg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범 내려온다\"...그 많던 호랑이는 어디 갔나")
당시의 호랑이는 전국을 가리지 않고 출몰했다. 울창한 산 속 뿐 아니라 경성과 부산에서도 호랑이가 나타난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09년 4월 14일자 신한민보(申韓民報)에 '맹호(猛虎) 출림(出林)'이란 제목의 기사가 있다. "지난달 초 한인(韓人) 8명이 용산으로부터 장안으로 들어오는데, 중도에 황소 같은 큰 호랑이가 내달아 한 사람의 볼기(엉덩이)를 물고 즉시 달아났는데, 일본 헌병대에서 이것을 잡고자 하여 자취를 밟는다더라."
1936년 2월 7일자 동아일보에는 '동래 온천장에 대호(大虎) 출현'이란 제목의 기사가 보인다. "지난 4일 밤 돌연 동래온천 별장 뒤에 있는 부락에서 큰 돼지 한 마리가 없어져 5일 아침 새벽에 행방을 수색하던 중, 동래 금강산 안에 들어가니 맹호의 입에 할켜 죽은 돼지의 머리가 굴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한다."
대도시인 경성과 부산에도 호랑이가 나타났으니 다른 곳이야 오죽했을까. "함북 부령군 관해면 거주 안국현(安國賢)은 대정 9년(1920년) 3월 14일 부령군 부거면 청산동 근처에서 호랑이 한 마리를 보고 사격하여 확실히 맞는 것을 보았는데, 그때 하늘이 어두웠기 때문에 그 이튿날 아침에 피가 떨어진 흔적을 찾아보며 탐색한 바, 차병인(車炳仁), 방병손(方炳孫) 두 명이 나무를 하러 가다가 그 호랑이를 발견하고 습득하여, 주재소에 신고하여 그 가죽을 벗겨 가지고 돈 60원에 팔아 버려서 1000원의 반환 소송이 일어났다." (1921.5.7. 매일신보)
다른 기사들도 찾아보자.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리면 송림리에 박모(朴某)의 처인 김씨는 임신 후 수개월이 된 지난 28일에 돌연 행방불명되어, 수십 명이 판교리(板橋里) 뒷산을 탐사하기 시작하여, 깊은 골짜기에서 톱으로 베인 듯한 양쪽 다리만을 남기고 피로 물들인 곳을 발견하여 사람들은 호랑이에게 잡혀 먹힌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1939.6.5. 동아일보)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이승룡(李升龍, 20)은 지난 3일 오전 9시경, 자기 형수를 데리고 형수 친정을 가는 중에,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출현하여 이승룡의 머리를 물고 또다시 가슴을 물고 산 속으로 끌고가 형수는 기운을 잃고 미친 듯이 큰 소리만 지르고, 이승룡은 현장에서 절명하였다." (1921.9.11. 동아일보)
호랑이에게 잡혀 먹은 사람의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호랑이를 잡은 이야기도 찾아보자. 1930년 2월 8일자 동아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지난 2일 연해주(沿海州) 산림 속에서 최영송(崔永松, 50)이라는 조선 포수가 사냥을 하던 중, 맨몸으로 호랑이와 한참동안 엉겨 씨름을 한 끝에 최 포수는 호랑이의 입에 손을 넣어 그 혀를 끊고 계속 싸움을 하던 중, 마침 그곳을 지나던 다른 포수가 이것을 발견하고, 즉시 호랑이를 쏘아 죽여 최 포수는 천만다행으로 무사하였으며, 몸에는 약간의 경상을 당하였다고 한다."
1926년 1월 1일자 조선일보에는 호랑이를 간신히 쫓아낸 기사가 실려있다. "12월 29일 오후 1시쯤 되어, 충남 청양군 청양면 백천리라는 동네 앞산에서 황소만한 호랑이가 한 발 이상 되는 꼬리를 내두르며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쭈그리고 산 밑 길가에 앉아 있음을 본 그 동네 사람들은 남녀노소가 총출동하여 소리를 벽력(霹靂) 같이 지르며 쫓아 보내려고 하였으나, 종시(終是; 끝내) 떠나지 아니하고 앉아 있음으로 명제완(明濟完)이라는 명포수에게 총을 가지고 올라오라고 청하였으나, 그와 같이 엄위(嚴威)있는 짐승은 죽일 수 없다 함으로, 동네 사람들은 서로 단합하여서 소리를 지르고 야단한 결과 호랑이는 그 동네 뒷산으로 자취를 감추었다더라."
호랑이 관련 광고도 이색적이다. 1898년 8월 11일자 그리스도신문에는 호랑이 발톱을 매매한다는 광고가 실려있다. "호랑이 발톱을 매매하려 하거든 그것을 가지고 그리스도 신문사로 오시오. 호랑이 발톱을 제 짝 맞춰서 쌍쌍이 앞발톱과 뒷발톱을 가지고 오시오."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범 내려온다"...그 많던 호랑이는 어디 갔나](http://contents.dt.co.kr/images/202107/2021070802102269061001[2].jpg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범 내려온다\"...그 많던 호랑이는 어디 갔나")
세상에는 사람을 물어 죽이는 호랑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가혹한 정치다. 1909년 6월 23일자 신한민보에 '정이심맹어호(政而甚猛於虎)'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인다. "주(酒), 초(草), 가옥(家屋) 세 가지 세(稅)를 실시하는데 대하여, 지방 정형(情形; 딱한 형편)을 듣건대, 중류 이상 인민은 아무 관계가 없는 것 같이 방관할 따름이로되, 일반 농민들과 빈민은 물정이 대단히 안 좋아 반대운동을 자주 행하는데, 이는 일본 관리들의 용비(用費; 비용)하는 재정을 보충하고자 함이라 하여 더욱 원성이 창천(漲天)한다더라."
당시 일본인 관리들은 조선인 관리보다 3배 이상의 월급을 받았다. 그 비용은 모두 힘없는 조선 백성들에게 수탈한 것이었다. 공자는 이를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 했다. 가혹하게 세금을 뜯어가는 정치는 호랑이에게 잡혀먹는 고통보다 더 무섭다는 것이다.
부패 권력, 가진 자의 갑질, 치솟는 집값, 코로나 19, 기후변화, 환경오염 등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이것들은 힘없는 사람을 더 가혹하게 물어 죽인다. 하늘에 있는 공자가 이런 모습을 본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2500년이 지나도 자신의 말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을 알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