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행률 저조해도 법적근거 없어
정부 "권유는 하지만…" 팔짱만
HP코리아 "본사 결정대로 진행"
정부 "권유는 하지만…" 팔짱만
HP코리아 "본사 결정대로 진행"
배터리 과열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중대한 결함이었다. 하지만 당국은 회사가 자발적 리콜을 실시했다는 이유만으로 리콜을 제대로 하지 않았어도 제재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했다. 소비자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결함 제품을 판매해놓고도 자발적으로 리콜하겠다고만 하면 제재를 면할 수 있는 제도적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4일 서울시가 HP코리아로부터 제출받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2017년 두 차례 있었던 HP코리아의 노트북PC 자발적 리콜의 국내 회수율은 각각 1.9%를 기록했다.
HP는 2016년 6월 자사 컴팩, 프로북, 엔비, 컴팩 프리자리오, 파빌리온 등 노트북PC에 쓰인 배터리가 과도한 발열로 화재 위험이 있다며 리콜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리콜 대상 제품은 세계적으론 4만1000대, 국내는 약 2200대였다. 하지만 국내에선 약 43대밖에 리콜 처리되지 않았다.
2017년 1월 HP는 같은 결함을 이유로 세계적으로 약 10만대, 국내 약 700대에 대해 자발적 리콜을 실시한다고 했다. 2013년 3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판매된 노트북이었다. 그러나 국내 리콜 조치를 받은 제품은 14대 남짓에 불과했다.
올해 1월에도 HP는 2015년 12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세계에서 판매된 노트북 PC 5만대를 같은 이유로 리콜하겠다고 밝혔다. 매년 배터리 화재 위험 결함에 대해 자발적 리콜을 실시한다고 했지만, 실제 리콜에는 소홀했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회수율이 너무 낮아 HP코리아 측에 물었더니, 리콜 대상 제품 대부분이 사무용으로 쓰이고 있어 리콜이 쉽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일반 사무실에서 일정 주기가 됐을 때 제품을 교체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굳이 리콜을 받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HP코리아는 적극적으로 리콜을 소비자에 알리지 않았다. 홈페이지서는 리콜을 안내하는 팝업창이나 안내문을 찾기 쉽지 않았다. 홈페이지 맨 아래에 조그맣게 리콜 코너를 마련했을 뿐이다.
정부도 낮은 리콜 이행률 문제에 대해 팔짱만 끼고 있다. HP가 '자발적 리콜'을 했기 때문에 제재를 가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리콜 이행을 적극적으로 하도록 권유는 하고 있지만, 사업자가 직접 하는 자발적 리콜은 회수율만으로 제재를 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은 "자발적 리콜은 소비자 불만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기업을 위한 제도인데, 적극적으로 리콜을 하지 않는다는 건 명분만 내세울 뿐, 회사 인식이 부족한 것"이라며 "정부는 자발적 리콜 이행률을 충분히 모니터링하고, 문제가 있다면 보완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송재원 HP코리아 상무는 "리콜은 HP 본사 결정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라고 짧게 답했을 뿐, 자세한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한편 HP코리아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연속으로 배터리 리콜을 실시했지만, 2010년 리콜 이행률이 6% 이하를 기록하는 등 리콜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강해령기자 strong@dt.co.kr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