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 논문이 생명과학 혁명 신호탄
1980년대 식량난 해결 '현대판 연금술'로 유전공학 각광
IT에서 시작된 창업 바람 '바이오 벤처 붐'으로 옮겨와
줄기세포·뇌 투자 집중… 의약품 원천기술 수출 성과도
1980년대 식량난 해결 '현대판 연금술'로 유전공학 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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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기술 50년, 미래 50년
< 2부 > (13) '바이오 7대 강국'으로 도약
"우리가 생명의 비밀을 밝혀냈다!"
1953년 2월 21일, 영국 케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 근처 이글 식당 안으로 들어온 프랜시스 크랙과 제임스 왓슨은 흥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같은 해 이 두 과학자가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한 'DNA의 이중나선 구조 발견'이라는 제목의 짧은 논문은 생명과학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생명 현상의 기본 정보를 담고 있는 DNA가 어떤 구조로 이뤄져 있는지 밝혀지면서 과학자들은 생명체의 본질을 규명하고 활용하는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80년대 생물체 고유의 DNA를 시험관 안에서 또 다른 생물체의 DNA와 결합하고 새로운 유전 정보를 갖는 생물체를 만들어내는 '유전자 재조합'에 성공했으며, 새천년을 맞이한 2000년에는 인간 유전체를 거의 100% 해독한 '인간 게놈 지도'를 완성했다. 생명의 비밀이 속속 밝혀지면서 앞으로 미래는 생명공학기술이 사회와 경제 변화를 이끄는 '바이오 경제시대'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1970년대 중반 이후 해외에서 관련 분야를 공부한 학자들이 귀국하면서 생명공학이 처음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1980년대 초 선진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유전공학을 국내에 소개하기 시작했고, 언론들도 유전공학 기술의 혁명적 발전과 미래에 대해 앞다퉈 다루기 시작하면서 생명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현대판 연금술'로 국내에 소개된 유전공학= 1980년을 전후해 국내에서 '유전공학'이란 용어는 언론을 통해 흥미로운 소재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당시 언론에서 유전공학은 식량난을 해결하고 석유를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하며, 환경오염도 방지하는 '현대판 연금술'로 그려졌다. 특히 외신을 바탕으로 '토끼 같은 쥐', '호박만 한 감자' 등 유전자변형 식물과 가축에 대한 자극적인 기사가 소개되면서 유전공학에 대한 과장된 기대를 부풀렸다. 당시 과학기술처에서 작성한 정부간행물에도 유전공학은 '20세기 기술발전의 꽃'으로 소개됐으며, 이미 감자와 토마토가 합쳐진 '포메이토'나 '석유 먹는 박테리아' 등이 실현됐고 앞으로 '돼지고기가 열리는 나무'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1980년 11월 28일 국내 생물학 분야 연구자들의 모임인 '한국생물과학협회'는 연세대학교에서 유전공학을 주제로 첫 학술행사를 개최했다. 행사의 내용은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유전공학의 개념과 장차 유전공학이 미래 산업을 이끌 첨단기술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발표를 맡은 이세영, 강현삼, 노현모, 박상대 등은 모두 미국에서 유전공학의 기초분야인 분자생물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학자들이었다. 이들은 1973년 미국에서 개발된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바탕으로 인슐린과 인터페론 등 주요 생체 단백질을 대장균을 통해 대량 생산해 당뇨병 치료제나 각종 항생제 등 의약품으로 개발하는 내용을 주로 소개했다.
이후 이와 관련한 수많은 학술행사가 이어지고 과학자들이 언론 기고와 인터뷰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깊이 있는 정보를 소개하면서 국내에서도 유전공학 발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유전공학을 반드시 육성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산학협력으로 생명공학 발전 발판 마련= 1982년 1월 20일 당시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재직하던 한문회 박사의 제안으로 12명의 학계 전문가들이 모여 '유전공학 연구사업 추진협의회'가 열렸고, 같은 해 4월 22일 '한국유전공학학술협의회' 창립총회가 개최됐다. 유전공학을 전공한 학자 17명이 창립 멤버로 참여한 협의회는 유전공학 분야의 산학협동 연구와 연구기관 사이의 공동연구 방안을 모색하고, 국내 유전공학 연구 기반 구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들은 한국의 유전공학 연구가 선진국 수준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문 인력양성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하면서, 이를 위해 정부 지원과 산업계의 공동연구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거의 동시에 산업계에서도 유전공학의 산업적 효용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1982년 1월 27일 서울대 약대 출신의 민정당 국회의원 이상희 박사의 제안으로 기업연구소 책임자 8명이 모여 제2회 유전공학 연구사업 추진협의회가 열렸고, 두 달여 후인 3월 4일 '한국유전공학연구조합'이 설립됐다. 조합은 우선 5억원의 기금을 마련해 전문인력 양성과 기자재 공동구입, 기본기술 개발 등을 추진키로 했다. 조합의 초대 회장은 정주영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맡았고, 부이사장은 노익환 전경련 부회장, 구자학 럭키 회장, 이수빈 제일제당 사장이 맡았다. 이는 당시 조합이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의 전폭적인 관심과 지지를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정부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법적·제도적 지원에 나서기 시작했다. 1981년 출범한 제5공화국 정부는 이듬해 시작될 '제5차 경제사회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하면서 '과학기술 입국'을 표방했고, 국가 발전을 위한 핵심 첨단 기술산업으로 반도체와 함께 생명공학을 내세웠다. 이때 마련된 '생명공학육성을 위한 정책보고서'는 국내 생명공학 육성의 시초가 됐으며, 1983년에는 국내 유전공학 연구 및 산업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최초의 법적 장치인 '유전공학육성법'이 제정됐다. 이를 근거로 1994년 과학기술처는 '생명공학육성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듬해 유전공학육성법을 '생명공학육성법'으로 명칭을 변경해 생명공학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을 펼쳤다.
2006년 마무리된 제1차 생명공학육성기본계획을 통해 13년 동안 4조3000억원의 정부 투자가 이뤄졌으며, 생물산업기술실용화센터(1998), 안전성평가연구소(2002), 국가영장류센터(2005), 국가생물자원정보관리센터(2006) 등의 산업화 지원을 위한 전문조직이 설립됐다. 이와 함께 1994∼2005년 네이처, 사이언스, 셀 등 세계 유명 학술지에 게재된 국내 논문 130건 가운데 바이오 관련 논문이 86건으로 66%를 차지했고, 국제 기술 수준도 2005년 14위까지 상승했다.
1985년에는 유전공학 분야 국가연구소로 한국과학기술원 부설 유전공학센터가 설립됐다. 센터는 1989년 6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분리되면서 KIST 부설기관으로 변경됐고, 1995년 유전공학육성법이 생명공학육성법으로 바뀌면서 생명공학연구소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후 1999년 독립법인으로 재출범했으며, 2001년 정부출연연구소인 현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으로 승격해 첨단 생명공학 분야인 유전체, 단백체, 세포체, 바이오의약, 바이오소재, 융합생명연구 등을 연구하고 핵심원천 기술을 개발, 보급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생명연은 국내에 생명공학 관련 기술이 거의 전무하던 1980년 초 유전자 재조합 기술과 세포 미세조작 및 핵 치환 기술 등의 연구를 시작했다. 이후 암이나 노화 발생과 관련 있는 '옥시 R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세계 최초로 규명하고, 학계에 보고된 세균과 서로 다르게 진화한 유용 미생물 두 종류를 처음 발견해 생명연의 영문이름(KRIBB)을 인용한 '크리벨라(Kribella)'로 명명하는 등 앞서가는 연구성과를 내놨다. 또 암 억제 인간 항체 기술과 줄기세포 노화 억제 유전자 기술 등을 이전하고, 다양한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해 임상시험에 진입했다.
◇'바이오 벤처 붐'으로 시작된 산업 성장= 1980년대 우리나라 생명공학은 학문 차원의 기초적인 연구 바탕이 없는 가운데 생명공학의 산업적 활용과 산업화라는 측면이 강조됐다. 과학기술처 중심의 정부 생명공학 R&D 지원사업은 산업계와 학계가 공동으로 협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돼 초보적이기는 하지만 생명공학 산업화가 이뤄질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1982년 시작된 정부 R&D 사업인 '특정연구개발사업'을 통해 유전공학 분야가 처음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된다. 이후 정부의 생명공학 분야 투자는 1990년대 '선도기술개발사업(G7 프로젝트'와 2000년대 미래유망 신기술 분야,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사업 등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 세계 생명공학계가 인간 게놈 프로젝트로 인해 인간 유전자 정보로 관심을 집중하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정부 연구소 중심으로 연구비 투자가 늘어났고, 특히 대학 R&D 지원이 크게 늘어 기초 학문 연구에도 진전을 이루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2000년 전후로 정보통신(IT)을 중심으로 시작된 '벤처 붐'이 생명공학으로 넘어와 바이오 벤처가 크게 늘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의 바이오 벤처기업은 1992년 KIST 부설 유전공학연구소 연구원 출신 12명이 공동출자해 자본금 8000만원으로 설립한 '한국생공(현 바이오니아)'이었다. 유전자 조작기술과 단백질 합성, 생물공학연구용 시약개발을 주력 연구주제로 선정한 이 회사는 매출이 1994년 5억5000만원에서 이듬해 11억5000만원으로 급성장하며 바이오 벤처 창업의 자극제가 됐다. 이후 대학과 연구소의 전문가들이 바이오 벤처 창업으로 몰리면서 1999년 71개사, 2000년 233개사가 새로 설립됐다.
하지만 '닷컴 버블'의 붕괴와 함께 2004년 황우석 사태까지 겹치며 바이오 벤처는 오랜 침체기를 맞이한다. 10여 년이 지난 현재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기술력을 꾸준히 쌓아온 기업들이 생존해 유전자 치료제, 줄기세포 등 첨단 바이오 의약품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열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내 제약사 한미약품이 '랩스커버리'라는 바이오 의약품 원천기술을 개발해 사노피, 얀센 등 글로벌 제약사를 대상으로 8조원 규모의 기술수출을 이뤄냈으며, 이를 계기로 바이오·제약 기업들이 자체 R&D 투자를 확대하고 오픈 이노베이션을 활성화하고 있다. 또 셀트리온과 삼성이 기존 바이오의약품과 같은 효능을 가지면서 가격은 저렴한 복제약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 대규모 생산설비를 갖추고 글로벌 제약사보다 한발 앞서 미국과 유럽 등에서 제품 판매 허가를 받아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국내 바이오산업 관련 생산·연구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바이오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4년 국내 바이오산업 생산규모는 7조6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생산규모의 연평균 증가율은 7.0%로, 제조업, 전자산업 등 타 산업과 비교했을 때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 '바이오 7대 강국' 키워라= 생명과학 분야는 R&D 대상 세부 분야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주로 투자되고 있는 분야는 신약개발, 의료기기, 유전체, 줄기세포, 뇌과학, 신품종·소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신약개발 분야는 첨단의료복합단지 등 대규모 인프라 사업 등으로 2010년까지 예산이 급증했으며, 융·복합 기술의 발전으로 의료기기의 종류가 다양화되면서 의료기기 분야 투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줄기세포, 뇌 연구 분야는 바이오 분야의 새로운 미래 유망 분야로 지목되면서 지원과 투자를 늘려나가고 있다.
또 미래 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개인 맞춤의학 실현을 위해 국가적 역량을 집결해야 할 필요성에 따라 유전체 연구에 대한 투자와 지원도 늘고 있다. 2012년 신종플루에 이어 지난해 메르스와 같이 국가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신·변종 감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R&D도 크게 요구되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2014년 '바이오 미래전략'을 통해 오는 2020년 '바이오 7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바이오 산업 육성을 위한 중점 투자분야와 전략 방향을 제시했다. 이에 대한 이행방안으로 미래부, 복지부, 산업부 등 관계 부처는 지난해 '바이오헬스 미래신산업 육성전략'을 수립, 의약품, 의료기기, 의료서비스 등의 분야의 2020년 첨단 기술 산업화를 목표로 중점과제와 R&D 투자 계획을 마련했다.
올해는 그동안 여러 부처로 분산되어 추진되어왔던 바이오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바이오 R&D가 전략적인 관점에서 기획, 투자, 사업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산하에 미래부 1차관을 위원장으로 한 '바이오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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