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투자 해마다 늘어 현재 연 60조 달해
미국은 한국의 7.6배 절대규모에선 큰 격차
'삼극특허' 세계4위 급등… 기술무역도 개선
노벨 수상자·지재권 보호 등은 상대적 미흡
■과학기술 50년, 미래 50년 <2부>
(1)숫자로 보는 과학기술 50년
올해는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혁신을 본격화한 지 50년을 맞는 의미 있는 해다. 50년 전 봄에 먹을 것이 없어 보리가 여물기까지 굶으며 버티는 '보릿고개'를 겪던 한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의 대가로 당장 먹을 쌀 대신 과학기술 연구소를 지어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 피와 땀의 대가로 1966년 설립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는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의 초석을 마련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룬 국가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현재 한국의 주력산업인 조선, 철강, 자동차, 반도체, 휴대폰 등이 과학기술 발전을 기반으로 세계 선두권으로 도약했으며, 국민소득은 100달러에서 3만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디지털타임스는 지난 50년 국내 과학기술의 성과를 돌이켜 보고, 지나온 길에서 앞으로 50년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연중기획 '과학기술 50년 미래 50년'을 진행하고 있다. 2부로 대한민국 과학기술이 밟아온 50년의 성과를 시대, 기술, 정책 분야별로 돌아보고 발전방향을 찾는 기획 시리즈를 15회에 걸쳐 싣는다.
지난 50년 간 국가 경제성장의 밑바탕이 돼 온 과학기술에 대해 국민들은 여전히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지난해 실시한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9명은 과학기술이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과 선진국화 기여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경제 발전은 물론 국방과 외교, 사회 안전, 보건·복지 등 사회 전반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인구 5000만명의 작은 나라가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핵심 무기는 과거에 그랬듯이 앞으로도 여전히 과학기술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저성장 국면을 돌파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 과학기술의 역할과 책임은 지금보다 더 커질 전망이다.
하지만 최근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기대만큼 우려도 섞여 있었다. 같은 조사에서 최근 과학기술 투자에 비해 발전이 잘되고 있느냐고 묻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국민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45.5%에 그쳤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크게 늘어났지만, 오히려 과거만큼 경제 성장을 뒷받침할만한 굵직한 성과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도 최근 연구개발(R&D) 투자 규모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며 자신이 직접 주관하는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신설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고 있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이 50년을 맞이한 현재 실제로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객관적인 지표들을 통해 분석한 결과, 양적으로는 세계 상위권으로 도약했지만, 질적으로는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R&D 투자 등의 규모를 안정적으로 늘려가면서 질적 성장을 함께 이루는 것이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 GDP 대비 과학기술 R&D 투자 '세계 1위'= 통계상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과학기술 R&D를 가장 '열심히' 하는 나라로 꼽힌다. 2014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과학기술 R&D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4.29%로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이스라엘 4.11%, 일본 3.58%, 핀란드 3.17%, 스웨덴 3.16% 등의 순으로, GDP 대비 2% 수준을 투자하고 있는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과학기술 투자 통계를 기록하기 시작한 1963년 국내 R&D 투자 비중은 고작 0.23%에 불과했다. 이후 1980년대 1%대에 진입한 데 이어 1994년 2%대에 도달했으며, 2012년 4.03%, 2013년 4.15% 등으로 계속해서 투자 비중을 급속도로 늘려왔다.
하지만 절대규모 면에서는 아직 R&D 투자 상위권 국가와 큰 차이를 보인다. 201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R&D 투자 절대규모는 세계 6위권인 605억달러로, 미국은 우리나라의 7.6배인 4569억달러, 중국은 3.5배인 2118억달러, 일본은 2.7배인 1649억원을 각각 R&D에 투자했다.
1963년 우리나라 총 R&D 투자액은 12억원에 불과했다. 당시 구체적인 R&D 활동 내용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주로 수출입을 목적으로 한 국공립 시험·연구기관 활동이나 지질탐사 등이 대부분이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이후 1966년 KIST 설립과 1967년 과학기술처가 만들어지면서 체계적인 R&D 활동을 시작했는데, 당시 R&D 투자액이 약 48억원이었다. 과기부 설립 이후 10년이 지난 1977년 R&D 투자는 1000억원을 넘어섰으며, 산업발전이 본격화된 1980년대부터 투자가 가파르게 늘어 1996년에는 10조원을 넘어섰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R&D 투자가 주춤했던 시기를 제외하면 R&D 투자는 지속적으로 늘어 현재는 해마다 약 60조원을 투입하고 있다.
기술혁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현재는 가장 큰 핵심 변수로 R&D 투자로 꼽는다. 오늘날과 같이 연구개발 활동이 조직화된 상황에서는 R&D 투자로 축적된 지식이 기술혁신의 대부분을 설명한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50년 간 과학기술 R&D 투자가 엄청난 성장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충분한 규모를 축적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지적이다.
한국이 과학기술 R&D 투자에 집중한 시기는 실질적으로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지금까지 약 30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1981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이 투자한 R&D 누적액은 5134억달러로, 주요국과 비교하면 미국은 15.4배, 일본은 7.4배, 독일은 3.5배로 큰 격차를 보인다. 우리나라 R&D 투자가 큰 폭으로 확대된 2000년대 이후만 비교해도 미국은 12.1배, 일본은 5.2배, 독일은 2.7배로 장기 누적액에 비해 차이가 다소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격차를 좁히지 못하는 모습이다. 특히 최근 R&D 투자를 큰 폭으로 확대한 중국은 2011년에서 2013년 사이 누적액이 우리나라의 2.4배에 달했으며, 최근 들어 그 격차가 점차 더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 논문·특허 수 급속 팽창= 논문은 대표적인 과학적 연구성과물로,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국제적으로 'SCI(과학기술논문색인)'에 등재된 우수한 논문을 기준으로 통계를 산출한다. 우리나라 SCI 논문 수는 90년대까지 미비하다 R&D 투자가 크게 늘어난 2000년대 이후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1981년 세계 50위였던 총 SCI 논문 수는 2013년 12위로 40위 가량 상승했으며, 같은 기간 논문 수는 274건에서 5만7458건으로 약 209배 늘었다.
이와 함께 R&D 투자의 기술적 성과물 대표되는 특허의 경우 1980년 5070건이었던 국내 특허출원이 2014년 21만292건으로 41.5배가 늘었다. 국제특허(PCT) 출원은 1991년 37건에서 2013년 1만2381건으로 늘었으며, 특히 미국과 일본, 유럽 특허청에 모두 등록된 특허인 '삼극특허'의 경우 1985년 8건에 불과하던 것이 2013년 3154건으로 크게 늘어 세계 4위 수준까지 올라갔다.
이 같은 지표들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성과가 양적으로 얼마나 빠르게 팽창했는지 보여주고 있지만, 질적으로는 여전히 한계를 보이고 있다. 다른 연구자들이 해당 연구자의 논문을 얼마나 참고했는지 파악해 연구의 질을 간접적으로 평가하는 '논문 피인용 횟수'의 경우 2000년대 이전까지 1회대에 머무르다 2013년 4.55회까지 늘어 상당 수준 개선됐지만, 아직도 세계 순위는 30위권 내외에 머무르고 있다. 그나마 피인용 상위 1% 논문 건수가 2004년 150건에서 2014년 458건으로 10년 동안 3배 이상 늘어나 세계 10위권에 오른 것이 앞으로 질적 성장의 가능성으로 제시되고 있다. 1996년 단 2건에 불과했던 세계 3대 학술지(네이처, 사이언스, 셀) 게재 논문 건수도 2013년 41건으로 늘었다.
◇R&D 사업화·기술 수출 확대=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 공공기관의 기술이전 건수는 2005년 1580건에서 2014년 8524건으로 5배 이상 늘었다. 이에 따라 새로 개발한 기술 중 기술이전 되는 비율을 의미하는 '기술이전율'도 2005년 20.3%에서 2014년 31.7%까지 확대됐다. 다만 공공연구기관 기술료 수입은 2012년 1652억원을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2010년부터 1400억원대 내외에 머무르고 있어 기술이전의 질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제적으로 기술을 사고 파는 '기술무역'에서는 2005년 0.36이던 무역수지가 2014년 0.63으로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기업이 기술을 도입하고 상품을 수출하는 산업구조에 따라 상품 수출이 늘어날수록 기술 수입료가 늘기 때문에 무역수지에서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1981년 1억1800달러에 불과하던 기술수출액이 R&D 투자가 본격적으로 확대된 1990년대 이후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2014년 97억6500만달러까지 성장해 적자 폭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 과학기술 경쟁력 상위권 도약= 그동안 꾸준한 투자와 노력 덕분에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는 타 분야에 비해 높은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평가한 우리나라 과학 경쟁력은 세계 6위, 기술 경쟁력은 13위를 기록해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다. 전체 국가 경쟁력이 25위인 것을 고려하면, 과학기술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견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 경쟁력에서도 질적으로는 아직 약점이 있다. 과학 경쟁력에 있어서는 R&D 투자, 인력 등 투입자원과 특허, 논문 등 성과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반면, 노벨상 수상자 수나 지적재산권 보호, 과학연구 지원제도 등은 상대적으로 미흡한 상황이다. 기술 경쟁력에서는 이동통신, 인터넷 등 IT 기반 구축과 활용, 첨단기술 제품 수출 등의 지표에서는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기술 규제의 기업 발전 및 혁신 지원, 법적 환경이 기술 개발 및 응용을 지원하는 정도 등에서는 열위를 나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