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로 시 쓰는 남자
`디지털 카메라로 쓰는 시(詩)'
국내 메이저급 출판사에 근무하는 김현용씨(37ㆍ사진)는 주위에서 흔히 말하는 386이다. 한 때 시대를 온몸으로 겪었던 386 세대는 지금 이념적으로 우리 사회의 주류로 부상했으나 새롭게 열린 디지털 세상 속에서는 또 다시 비주류다. 이제는 구형이 된 386 CPU처럼 디지털 기술과 함께 급변해 가는 인터넷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전환기 낀 세대'였기 때문이다.
김현용씨는 `K사 김 과장'으로 불리는 두 자녀의 아버지이자 그야말로 평범한 직장인이다. 여느 386과 다른 점이 있다면 1969년 생이었던 김 과장은 세대의 끝자락에 앉아 있었던 덕분에 시대의 아픔과 더불어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기까지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디지털과의 첫 인연은 생소하고 어색했지만, 지금은 김 과장의 삶을 180도 바꿔 놓았다. 한때 시인 지망생이기도 했던 김 과장은 원고지에 글을 썼지만 1990년대 중반이 되면서 컴퓨터로 시를 쓰기 시작했고, 디지털과의 인연을 맺은 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첨단 디지털 카메라로 빚어 낸 `영상 시(詩)'를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김 과장은 "인터넷에서 386은 이미 구세대이지만 생각 보다 많은 386들이 블로거로, 혹은 아마추어 사진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며 "이들의 사이트에는 처음부터 디지털 세대였던 10대ㆍ20대와 달리 아날로그 세대 특유의 향기로 인터넷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김 과장의 블로그(blog.naver.com/sholong.do)에도 386 특유의 향기가 남아 있다. 10대들처럼 튀거나 거칠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386들의 블로그는 거침없는 20대의 솔직함과도 다르다.
김 과장의 블로그에 담긴 사진 속에는 한번쯤 세상을 돌아보게 하는 일상 속에서의 여유와 아날로그 시대의 `낭만'이 담겨 있다.날카로웠던 젊은 날의 비판은 사라지고 따뜻한 시선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디지털과 인연을 맺은 이후 인터넷 마니아에서 1만명의 방문자수를 기록하고 있는 블로거가 되기까지 김 과장이 바꾼 노트북만 다섯 대였다. 디지털 카메라는 일곱 대나 사들였다. PDA에 MP3 플레이어 등을 합치면 수 천만원은 족히 쏟아 부었다. 좀 과하다 싶을 수도 있지만, 딱 그만큼 개인의 일상도 풍요로워졌다고 한다. `K사 김 과장'이 지나 온 10여년의 디지털 라이프를 되돌아본다.
<1.S＃> 대학시절 〓 군대를 가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은 아날로그 판이었다. 군대를 다녀 오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리포트를 프린트해서 제출해야 한다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큰 맘 먹고 컴퓨터를 구입했는데, 그것이 매킨토시였다. 그 때만 해도 컴퓨터는 다 똑같은 줄 알았기에 모양이 제일 괜찮은 걸 샀던 것인데, 주위에 매킨토시를 쓰는 사람이 없어서 늘 외로웠다.
<2.S＃> 첫 직장 생활 〓 첫 직장은 잡지사였다. 우연히 편집을 거들게 됐다. 대학 때 매킨토시를 택한 걸 잘했다고 생각했다. 당시 국내 출판 환경은 전산 편집으로 바뀌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유일하게 맥을 사용할 줄 알았던 나는 순식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하지만 그것은 일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한 달에 반은 철야를 하는 살인적인 작업 환경에서 지겹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디지털'과 친해져야 했다.
<3.S＃> IMF와 벤처 붐 〓 외환위기가 왔고 사직서를 냈다. 당시 한창 떠오르는 유망 직종인 IT 쪽에서 일하고 싶다는 열망에 웹디자인을 배웠다. 디자인을 배우면서 이쪽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았다. 혼자서 홈페이지를 만들어 인터넷에 올릴 정도의 수준이 되자, 이제 됐다 싶었다.
그 다음 갈 곳을 찾아보았지만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았고, 경쟁하기엔 내 나이가 많았다. 몇 번 깨진 끝에 다시 출판사에 들어갔다. 그 전까지 지인들의 부탁으로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기도 했다. 밥벌이는 못했지만, 그 때부터 인터넷은 놀이터이자 취미의 공간이 돼 버렸다.
<4.S＃>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 〓 2001년부터 디카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용산에 가서 디카를 구입했다. 기종은 캐논 `ixus―v'. 이 때부터 모든 사물이 피사체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진 동호회에도 가입했다. 젊은애들은 정말 잘도 찍었다. 잘 찍어서 그랬는지 평가도 함부로 했다.
디시인사이드에 몇 번 사진을 올렸다가 젊은 친구들의 말에 상처를 받은 후 `미스터 쇼롱빅'이라는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그 곳에만 글과 사진을 올렸다. `쇼롱빅'은 숏다리 롱허리 빅헤드의 약자로 우리 세대의 평균 체형을 의미하는 말이다. 생긴 대로 편하게 놀자는 뜻으로 지은 닉네임이다. 이곳에서 들어오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일기를 쓰듯 글과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5.S＃> 386, 블로그를 만나다 〓 2004년에는 블로그라는 것이 등장했다. 딱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 사진 한 장을 올리려면 여러 단계의 작업을 거쳐야 했지만 블로그는 편했다. 호스트를 바꿔가며 블로깅을 시작했다. 블로그인, 싸이월드, 엠파스, 다음, 프리챌, 파란을 거쳐 네이버 블로그에 정착했다.
블로그를 하기 전에는 손바닥만한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거기에 온갖 잡동사니들을 기록했지만, 이제는 수첩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이 담긴 곳이지만 누군가 보고 공감하면 다행이고, 아니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쓰는 시(詩)'
국내 메이저급 출판사에 근무하는 김현용씨(37ㆍ사진)는 주위에서 흔히 말하는 386이다. 한 때 시대를 온몸으로 겪었던 386 세대는 지금 이념적으로 우리 사회의 주류로 부상했으나 새롭게 열린 디지털 세상 속에서는 또 다시 비주류다. 이제는 구형이 된 386 CPU처럼 디지털 기술과 함께 급변해 가는 인터넷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전환기 낀 세대'였기 때문이다.
김현용씨는 `K사 김 과장'으로 불리는 두 자녀의 아버지이자 그야말로 평범한 직장인이다. 여느 386과 다른 점이 있다면 1969년 생이었던 김 과장은 세대의 끝자락에 앉아 있었던 덕분에 시대의 아픔과 더불어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기까지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디지털과의 첫 인연은 생소하고 어색했지만, 지금은 김 과장의 삶을 180도 바꿔 놓았다. 한때 시인 지망생이기도 했던 김 과장은 원고지에 글을 썼지만 1990년대 중반이 되면서 컴퓨터로 시를 쓰기 시작했고, 디지털과의 인연을 맺은 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첨단 디지털 카메라로 빚어 낸 `영상 시(詩)'를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김 과장은 "인터넷에서 386은 이미 구세대이지만 생각 보다 많은 386들이 블로거로, 혹은 아마추어 사진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며 "이들의 사이트에는 처음부터 디지털 세대였던 10대ㆍ20대와 달리 아날로그 세대 특유의 향기로 인터넷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김 과장의 블로그(blog.naver.com/sholong.do)에도 386 특유의 향기가 남아 있다. 10대들처럼 튀거나 거칠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386들의 블로그는 거침없는 20대의 솔직함과도 다르다.
김 과장의 블로그에 담긴 사진 속에는 한번쯤 세상을 돌아보게 하는 일상 속에서의 여유와 아날로그 시대의 `낭만'이 담겨 있다.날카로웠던 젊은 날의 비판은 사라지고 따뜻한 시선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디지털과 인연을 맺은 이후 인터넷 마니아에서 1만명의 방문자수를 기록하고 있는 블로거가 되기까지 김 과장이 바꾼 노트북만 다섯 대였다. 디지털 카메라는 일곱 대나 사들였다. PDA에 MP3 플레이어 등을 합치면 수 천만원은 족히 쏟아 부었다. 좀 과하다 싶을 수도 있지만, 딱 그만큼 개인의 일상도 풍요로워졌다고 한다. `K사 김 과장'이 지나 온 10여년의 디지털 라이프를 되돌아본다.
<1.S＃> 대학시절 〓 군대를 가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은 아날로그 판이었다. 군대를 다녀 오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리포트를 프린트해서 제출해야 한다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큰 맘 먹고 컴퓨터를 구입했는데, 그것이 매킨토시였다. 그 때만 해도 컴퓨터는 다 똑같은 줄 알았기에 모양이 제일 괜찮은 걸 샀던 것인데, 주위에 매킨토시를 쓰는 사람이 없어서 늘 외로웠다.
<2.S＃> 첫 직장 생활 〓 첫 직장은 잡지사였다. 우연히 편집을 거들게 됐다. 대학 때 매킨토시를 택한 걸 잘했다고 생각했다. 당시 국내 출판 환경은 전산 편집으로 바뀌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유일하게 맥을 사용할 줄 알았던 나는 순식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하지만 그것은 일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한 달에 반은 철야를 하는 살인적인 작업 환경에서 지겹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디지털'과 친해져야 했다.
<3.S＃> IMF와 벤처 붐 〓 외환위기가 왔고 사직서를 냈다. 당시 한창 떠오르는 유망 직종인 IT 쪽에서 일하고 싶다는 열망에 웹디자인을 배웠다. 디자인을 배우면서 이쪽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았다. 혼자서 홈페이지를 만들어 인터넷에 올릴 정도의 수준이 되자, 이제 됐다 싶었다.
그 다음 갈 곳을 찾아보았지만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았고, 경쟁하기엔 내 나이가 많았다. 몇 번 깨진 끝에 다시 출판사에 들어갔다. 그 전까지 지인들의 부탁으로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기도 했다. 밥벌이는 못했지만, 그 때부터 인터넷은 놀이터이자 취미의 공간이 돼 버렸다.
<4.S＃>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 〓 2001년부터 디카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용산에 가서 디카를 구입했다. 기종은 캐논 `ixus―v'. 이 때부터 모든 사물이 피사체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진 동호회에도 가입했다. 젊은애들은 정말 잘도 찍었다. 잘 찍어서 그랬는지 평가도 함부로 했다.
디시인사이드에 몇 번 사진을 올렸다가 젊은 친구들의 말에 상처를 받은 후 `미스터 쇼롱빅'이라는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그 곳에만 글과 사진을 올렸다. `쇼롱빅'은 숏다리 롱허리 빅헤드의 약자로 우리 세대의 평균 체형을 의미하는 말이다. 생긴 대로 편하게 놀자는 뜻으로 지은 닉네임이다. 이곳에서 들어오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일기를 쓰듯 글과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5.S＃> 386, 블로그를 만나다 〓 2004년에는 블로그라는 것이 등장했다. 딱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 사진 한 장을 올리려면 여러 단계의 작업을 거쳐야 했지만 블로그는 편했다. 호스트를 바꿔가며 블로깅을 시작했다. 블로그인, 싸이월드, 엠파스, 다음, 프리챌, 파란을 거쳐 네이버 블로그에 정착했다.
블로그를 하기 전에는 손바닥만한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거기에 온갖 잡동사니들을 기록했지만, 이제는 수첩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이 담긴 곳이지만 누군가 보고 공감하면 다행이고, 아니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