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핵심산업 SW 육성
'정부역할론' 100% 공감
지난 10일 오후, 서울 충정로1가 디지털타임스 본사를 찾은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의 고현진 원장과 국내 소프트웨어(SW) 벤처의 성공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사장은 2시간반에 걸쳐 국내 SW산업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그들의 대화는 `SW산업이 왜 중요한가'라는 주제부터 시작됐다. 정부가 내건 `국민소득(GDP) 2만달러 시대'를 달성하기 위해 지식정보산업의 핵심인 SW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우리나라가 GDP 1만달러에 도달하는 데 공헌한 핵심 키워드 2개를 뽑으라고 한다면, 제조업과 거침없이 도전하는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 정신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2만달러 시대로 가기 위한 핵심 키워드 2개는 지식정보산업과 위험을 최소화하는 리스크 매니지먼트(Risk Management)가 되야 하겠다. 제조업에서는 중국 등 신흥국가가 빠르게 쫓아오고 있으니, 지식정보산업 육성으로 대응하겠다는 정부의 시책은 옳은 것이다. 지식정보산업의 핵심은 SW산업이다. SW산업이 제대로 되려면 SW는 공짜라는 국민인식의 변화, 건전하고 공정한 시장환경, 기술인력 양성문제 등 이 세가지 전제조건이 해결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로는 세가지 모두 너무 모자라고 낙후한 상황이다."(안철수)
"신성장동력 육성도 중요하지만, 기존 제조업을 어떻게 고도화시켜 경쟁력을 일궈낼 것인가라는 문제도 상당히 중요하다. 제조업의 고도화는 바로 SW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제조업 고도화와 노동생산성 향상은 SW 기술을 바탕으로 한 첨단 제조시스템을 근간으로 지식근로자를 양성했기 때문이다. 지식정보산업의 핵심이 SW산업이라는 안 사장의 말씀에 동의한다. 흔히 지식정보산업이라고 하면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영화 등 문화콘텐츠 산업을 떠올리는 데, 우리나라 SW시장만 20조원 규모다. 차세대 산업으로 적극 키울만한 것으로 SW산업 빼고는 쉽게 떠올릴 만한 것이 없다."(고현진)
하지만 국내 SW산업은 합병증을 앓고 있다. 안 사장은 현재 우리나라 SW 산업이 3대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시장의 위기 △경영의 위기 △세계화의 위기가 그것이라는 것이다. 이 가운데 SW벤처 자체의 경영 능력 부재로 인한 경영의 위기, 관세와 무역장벽이 없는 글로벌 경쟁체제에 놓인 SW산업이 처한 세계화의 위기는 SW 기업 자체의 문제로 스스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고 안사장은 말했다. 하지만 SW는 공짜라고 생각하는 인식과 제도 미비, 대기업 중심 구도의 병폐 등이 초래하는 시장의 위기는 SW 기업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으로, 사회 전체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고치기 힘든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일본 SW시장 규모는 세계 2위다. 일본은 가정에 PC가 2대면 SW를 2개 사는 나라다. SW 천국이다. 일본은 또 SW의 일반 소비자(B2C) 시장이 전체 SW 시장의 3분의 1이다. 하지만 한국 SW 시장에 B2C는 없다. 불법복제 때문이다. 국내 기업 및 공공시장은 대기업(SI기업)이 장악해 중소 SW업체들이 들어가서 제 값 받기 힘든 구조다. 미국은 공기관 구입물품의 23%를 중소기업 제품으로 사용하도록 제도화 했다. 하지만 기업 시장은 차치하고 국내 공공시장은 투명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물론 모든 잘못을 공무원들에게 돌릴 수는 없다. 그나마 제도적으로 개선이 가능하고, 요구를 할 수 있는 곳이 공기관이다 보니 SW 기업들의 건의가 많은 것처럼 비쳐질지도 모르겠다."(안)
"공기관에 재직중이라 얘기하기가 참 곤란한데…(웃음), 우리 SW산업의 문제점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역시 대기업 구조 문제다. PC산업을 예로 들면, PC산업이 성장하자 삼성？LG？현대？대우 등 국내 대기업 대부분이 PC를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 대만에는 세계 3위의 PC제조사인 에이서(ACER)가 있지만, 국내에는 없다. 왜냐하면 삼성이 만들면 LG？현대가 안쓴다. SW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공기관이 먼저 SW를 제 값을 주고 사야한다고 하는데, 이는 공무원만의 책임이 아니다. SW 대기업들이 스스로 제살깎기 경쟁에 뛰어들면서 당초 300억원짜리 공공 프로젝트가 다음엔 200억원이 되고, 다음엔 150억원이 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국내 소비자 SW 시장이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SW 시장은 점차 기업 밖에서 형성되고 있다. 기업 SW 시장은 그룹웨어？ERP？CRM？SCM 등 이미 정형화된 요구에 맞춰 나올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나왔다. 현재 새롭게 등장하는 휴대인터넷？DMB？텔레매틱스？로보틱스 등은 전부 일반 소비자를 주 대상으로 하는 것들이다. B2C시장이 형성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정부가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국내 SW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그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정부 산하기관장과 SW벤처기업 사장이라는 신분을 잊고 거침없이 문제점들을 들춰낸 두 사람은 어느새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로 대화의 초점을 옮겨갔다.
"최근 SW 시장의 흐름을 세가지로 요약하면 기술 통합화, 서비스화, 전문화다. 이 세가지 트렌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메신저？DRM？웹브라우저 등 모든 것을 포함하려는 MS 윈도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를 잘 파악해야 한다. 서비스로 특화하든지 전문화 제품으로 틈새 시장을 노린다면 외국의 큰 SW업체라도 따라오기 어렵다."(안)
이에 대해 고 원장은 정보통신부의 오픈소스 SW 육성책이 국내 SW 시장을 활성화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중국 정부는 공기관 IT 예산의 20%를 SW로 책정하고 이 가운데 50%를 국산SW로 구매하라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우리 정부가 그럴 수는 없다. 우리는 현재 커다란 기술적 변혁기에 놓여있다. 뉴 테크놀로지가 앞으로 2∼3년 안에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다. MS는 차기 윈도 버전(롱혼)에 자동 보안패치 업데이트, 백신, 메신저, 미디어플레이어 등 모든 새로운 기술을 넣어 혁신할 계획이다. 이렇게 진화한 윈도 플랫폼에 최적화된 각종 ERP？CRM 등 솔루션을 내놓을 것이다. 그렇다면 윈도 플랫폼에서 돌아가는 국산 기업용 솔루션은 MS와 경쟁해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플랫폼 자체를 오픈소스 SW로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기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5년간 매년 500억원씩만 투자하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국산 데스크톱 OS, 국산 DB 등이 왜 안나오겠는가."(고)
한 연구기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제조기업의 매출 1000억원당 고용창출 효과가 50명인데 반해 SW는 650명으로 나타났다. 똑같은 정부 예산이라면 제조업보다는 SW산업에 투자하는 것이 청년실업과 고학력자 실업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는 고원장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투명하고 공정한 SW시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시장은 아직 그렇지 않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정책자문위원과 작년 정보보호산업협회 회장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정통부 정책만으로는 안된다. 정통부가 됐든, 총리실 산하기구가 됐든, 대통령 직속기구이든 간에 국가 최고정보책임자(CIO) 역할을 맡는 기구가 있어 전 부처를 포괄하고 전 공기관에 집행력을 가질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전자정부의 목적이 대국민 서비스 강화도 있지만, 부처간 업무 프로세스 혁신을 위한 것이라고 보는데, 지금 상태로는 부처간 업무 협조와 통합추진은 어려워 보인다."(안)
안 사장은 처음에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데 주저하는가 싶더니, 고 원장과의 대화가 후반부로 치닫자 평소 차분하던 말투와는 달리 힘있는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드러냈다.
"정부의 과제는 우선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그래야 기술자가 (SW 기업에) 모이고 공부도 하면서 인력이 양성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SW 아키텍트가 없다고 하는데, 아키텍트는 교육기관에서 길러내는 것이 아니다. 시장 속에서, 기업 실무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SW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안 사장은 고 원장의 `정부 역할론'에 100% 동의한다고 했다. 안 사장은 순수 SW매출로 1000억원을 넘기는 것이 1차 경영목표라고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해외 시장에서 글로벌 보안업체들과 제대로 경쟁할 수 있을 것이고, 매출 5000억원까지는 쉽게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국내 SW산업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는 두 사람의 대화는 안철수연구소와같은 될성부른 SW기업들이 한국을 빛내는 글로벌 스타기업으로 탄생하길 바라는 마음을 나누며 끝을 맺었다.
◇ 고현진 원장과 안철수 사장은...
'SW한국' 수장과 토종백신 자존심
고현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50)과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사장(42)은 국내 소프트웨어(SW)업계에 고집과 신념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고 원장은 한국IBM에서 IT업계에 첫 발을 들인 이후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한국마이크로소프트(한국MS) 등 다국적 IT기업을 두루 거쳤다. 그는 한국MS 사장 시절 윈도 전도사로서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선보였고, 수 백억원대에 머물렀던 매출을 2000억원대로 끌어 올리며 경영능력을 검증받았다. 독점기업인 한국MS의 수장이라는 자리를 박차고 한국SW진흥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그는 윈도의 반대편인 리눅스를 기반으로 한국 SW산업의 육성을 부르짖는 전도사로 변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안철수 사장은 의학 박사 신분으로 1995년 `V3'라는 토종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안철수연구소를 설립, 올해로 10년째를 맞고 있다. 시만텍？네트워크어쏘시에이츠(NA)？컴퓨터어쏘시에이츠(CA)？트렌드마이크로 등 쟁쟁한 다국적 백신 솔루션 기업들에게 단 한번도 국내 백신 시장 1위의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는 그는 이제 일본？중국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고 원장과 안 사장에게 서울대 선후배 사이가 아니냐라고 묻자 "그런 질문은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고 원장은 1974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안 사장은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으니 고 원장이 대학 6년 선배다. 두 사람은 고 원장이 한국MS 사장으로 있을 때 가끔 얼굴을 마주쳤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1？25 인터넷대란으로 정보통신부에서 자주 만났다. 최근 한국SW진흥원은 안 사장을 진흥원 이사로 선임, 두 사람의 인연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 원장은 대화 내내 자신감 있는 어투로 우리 SW산업의 발전을 위한 나름의 확고한 해법을 제시했다. `공기관에 재직중이라 얘기하기가 참 곤란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도 그는 국내 SW산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안 사장은 10년 가까이 SW벤처를 경영하면서 쌓은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SW산업을 바라보는 특유의 따뜻한 시각을 전달하려 애썼다.
'정부역할론' 100% 공감
지난 10일 오후, 서울 충정로1가 디지털타임스 본사를 찾은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의 고현진 원장과 국내 소프트웨어(SW) 벤처의 성공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사장은 2시간반에 걸쳐 국내 SW산업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그들의 대화는 `SW산업이 왜 중요한가'라는 주제부터 시작됐다. 정부가 내건 `국민소득(GDP) 2만달러 시대'를 달성하기 위해 지식정보산업의 핵심인 SW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우리나라가 GDP 1만달러에 도달하는 데 공헌한 핵심 키워드 2개를 뽑으라고 한다면, 제조업과 거침없이 도전하는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 정신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2만달러 시대로 가기 위한 핵심 키워드 2개는 지식정보산업과 위험을 최소화하는 리스크 매니지먼트(Risk Management)가 되야 하겠다. 제조업에서는 중국 등 신흥국가가 빠르게 쫓아오고 있으니, 지식정보산업 육성으로 대응하겠다는 정부의 시책은 옳은 것이다. 지식정보산업의 핵심은 SW산업이다. SW산업이 제대로 되려면 SW는 공짜라는 국민인식의 변화, 건전하고 공정한 시장환경, 기술인력 양성문제 등 이 세가지 전제조건이 해결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로는 세가지 모두 너무 모자라고 낙후한 상황이다."(안철수)
"신성장동력 육성도 중요하지만, 기존 제조업을 어떻게 고도화시켜 경쟁력을 일궈낼 것인가라는 문제도 상당히 중요하다. 제조업의 고도화는 바로 SW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제조업 고도화와 노동생산성 향상은 SW 기술을 바탕으로 한 첨단 제조시스템을 근간으로 지식근로자를 양성했기 때문이다. 지식정보산업의 핵심이 SW산업이라는 안 사장의 말씀에 동의한다. 흔히 지식정보산업이라고 하면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영화 등 문화콘텐츠 산업을 떠올리는 데, 우리나라 SW시장만 20조원 규모다. 차세대 산업으로 적극 키울만한 것으로 SW산업 빼고는 쉽게 떠올릴 만한 것이 없다."(고현진)
하지만 국내 SW산업은 합병증을 앓고 있다. 안 사장은 현재 우리나라 SW 산업이 3대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시장의 위기 △경영의 위기 △세계화의 위기가 그것이라는 것이다. 이 가운데 SW벤처 자체의 경영 능력 부재로 인한 경영의 위기, 관세와 무역장벽이 없는 글로벌 경쟁체제에 놓인 SW산업이 처한 세계화의 위기는 SW 기업 자체의 문제로 스스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고 안사장은 말했다. 하지만 SW는 공짜라고 생각하는 인식과 제도 미비, 대기업 중심 구도의 병폐 등이 초래하는 시장의 위기는 SW 기업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으로, 사회 전체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고치기 힘든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일본 SW시장 규모는 세계 2위다. 일본은 가정에 PC가 2대면 SW를 2개 사는 나라다. SW 천국이다. 일본은 또 SW의 일반 소비자(B2C) 시장이 전체 SW 시장의 3분의 1이다. 하지만 한국 SW 시장에 B2C는 없다. 불법복제 때문이다. 국내 기업 및 공공시장은 대기업(SI기업)이 장악해 중소 SW업체들이 들어가서 제 값 받기 힘든 구조다. 미국은 공기관 구입물품의 23%를 중소기업 제품으로 사용하도록 제도화 했다. 하지만 기업 시장은 차치하고 국내 공공시장은 투명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물론 모든 잘못을 공무원들에게 돌릴 수는 없다. 그나마 제도적으로 개선이 가능하고, 요구를 할 수 있는 곳이 공기관이다 보니 SW 기업들의 건의가 많은 것처럼 비쳐질지도 모르겠다."(안)
"공기관에 재직중이라 얘기하기가 참 곤란한데…(웃음), 우리 SW산업의 문제점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역시 대기업 구조 문제다. PC산업을 예로 들면, PC산업이 성장하자 삼성？LG？현대？대우 등 국내 대기업 대부분이 PC를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 대만에는 세계 3위의 PC제조사인 에이서(ACER)가 있지만, 국내에는 없다. 왜냐하면 삼성이 만들면 LG？현대가 안쓴다. SW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공기관이 먼저 SW를 제 값을 주고 사야한다고 하는데, 이는 공무원만의 책임이 아니다. SW 대기업들이 스스로 제살깎기 경쟁에 뛰어들면서 당초 300억원짜리 공공 프로젝트가 다음엔 200억원이 되고, 다음엔 150억원이 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국내 소비자 SW 시장이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SW 시장은 점차 기업 밖에서 형성되고 있다. 기업 SW 시장은 그룹웨어？ERP？CRM？SCM 등 이미 정형화된 요구에 맞춰 나올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나왔다. 현재 새롭게 등장하는 휴대인터넷？DMB？텔레매틱스？로보틱스 등은 전부 일반 소비자를 주 대상으로 하는 것들이다. B2C시장이 형성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정부가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국내 SW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그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정부 산하기관장과 SW벤처기업 사장이라는 신분을 잊고 거침없이 문제점들을 들춰낸 두 사람은 어느새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로 대화의 초점을 옮겨갔다.
"최근 SW 시장의 흐름을 세가지로 요약하면 기술 통합화, 서비스화, 전문화다. 이 세가지 트렌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메신저？DRM？웹브라우저 등 모든 것을 포함하려는 MS 윈도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를 잘 파악해야 한다. 서비스로 특화하든지 전문화 제품으로 틈새 시장을 노린다면 외국의 큰 SW업체라도 따라오기 어렵다."(안)
이에 대해 고 원장은 정보통신부의 오픈소스 SW 육성책이 국내 SW 시장을 활성화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중국 정부는 공기관 IT 예산의 20%를 SW로 책정하고 이 가운데 50%를 국산SW로 구매하라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우리 정부가 그럴 수는 없다. 우리는 현재 커다란 기술적 변혁기에 놓여있다. 뉴 테크놀로지가 앞으로 2∼3년 안에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다. MS는 차기 윈도 버전(롱혼)에 자동 보안패치 업데이트, 백신, 메신저, 미디어플레이어 등 모든 새로운 기술을 넣어 혁신할 계획이다. 이렇게 진화한 윈도 플랫폼에 최적화된 각종 ERP？CRM 등 솔루션을 내놓을 것이다. 그렇다면 윈도 플랫폼에서 돌아가는 국산 기업용 솔루션은 MS와 경쟁해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플랫폼 자체를 오픈소스 SW로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기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5년간 매년 500억원씩만 투자하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국산 데스크톱 OS, 국산 DB 등이 왜 안나오겠는가."(고)
한 연구기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제조기업의 매출 1000억원당 고용창출 효과가 50명인데 반해 SW는 650명으로 나타났다. 똑같은 정부 예산이라면 제조업보다는 SW산업에 투자하는 것이 청년실업과 고학력자 실업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는 고원장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투명하고 공정한 SW시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시장은 아직 그렇지 않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정책자문위원과 작년 정보보호산업협회 회장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정통부 정책만으로는 안된다. 정통부가 됐든, 총리실 산하기구가 됐든, 대통령 직속기구이든 간에 국가 최고정보책임자(CIO) 역할을 맡는 기구가 있어 전 부처를 포괄하고 전 공기관에 집행력을 가질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전자정부의 목적이 대국민 서비스 강화도 있지만, 부처간 업무 프로세스 혁신을 위한 것이라고 보는데, 지금 상태로는 부처간 업무 협조와 통합추진은 어려워 보인다."(안)
안 사장은 처음에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데 주저하는가 싶더니, 고 원장과의 대화가 후반부로 치닫자 평소 차분하던 말투와는 달리 힘있는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드러냈다.
"정부의 과제는 우선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그래야 기술자가 (SW 기업에) 모이고 공부도 하면서 인력이 양성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SW 아키텍트가 없다고 하는데, 아키텍트는 교육기관에서 길러내는 것이 아니다. 시장 속에서, 기업 실무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SW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안 사장은 고 원장의 `정부 역할론'에 100% 동의한다고 했다. 안 사장은 순수 SW매출로 1000억원을 넘기는 것이 1차 경영목표라고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해외 시장에서 글로벌 보안업체들과 제대로 경쟁할 수 있을 것이고, 매출 5000억원까지는 쉽게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국내 SW산업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는 두 사람의 대화는 안철수연구소와같은 될성부른 SW기업들이 한국을 빛내는 글로벌 스타기업으로 탄생하길 바라는 마음을 나누며 끝을 맺었다.
◇ 고현진 원장과 안철수 사장은...
'SW한국' 수장과 토종백신 자존심
고현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50)과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사장(42)은 국내 소프트웨어(SW)업계에 고집과 신념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고 원장은 한국IBM에서 IT업계에 첫 발을 들인 이후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한국마이크로소프트(한국MS) 등 다국적 IT기업을 두루 거쳤다. 그는 한국MS 사장 시절 윈도 전도사로서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선보였고, 수 백억원대에 머물렀던 매출을 2000억원대로 끌어 올리며 경영능력을 검증받았다. 독점기업인 한국MS의 수장이라는 자리를 박차고 한국SW진흥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그는 윈도의 반대편인 리눅스를 기반으로 한국 SW산업의 육성을 부르짖는 전도사로 변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안철수 사장은 의학 박사 신분으로 1995년 `V3'라는 토종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안철수연구소를 설립, 올해로 10년째를 맞고 있다. 시만텍？네트워크어쏘시에이츠(NA)？컴퓨터어쏘시에이츠(CA)？트렌드마이크로 등 쟁쟁한 다국적 백신 솔루션 기업들에게 단 한번도 국내 백신 시장 1위의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는 그는 이제 일본？중국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고 원장과 안 사장에게 서울대 선후배 사이가 아니냐라고 묻자 "그런 질문은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고 원장은 1974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안 사장은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으니 고 원장이 대학 6년 선배다. 두 사람은 고 원장이 한국MS 사장으로 있을 때 가끔 얼굴을 마주쳤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1？25 인터넷대란으로 정보통신부에서 자주 만났다. 최근 한국SW진흥원은 안 사장을 진흥원 이사로 선임, 두 사람의 인연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 원장은 대화 내내 자신감 있는 어투로 우리 SW산업의 발전을 위한 나름의 확고한 해법을 제시했다. `공기관에 재직중이라 얘기하기가 참 곤란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도 그는 국내 SW산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안 사장은 10년 가까이 SW벤처를 경영하면서 쌓은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SW산업을 바라보는 특유의 따뜻한 시각을 전달하려 애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