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서 글자로, 그리고 다시 모니터로, 인류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는 이제 할머니나 책이 아니라 TV와 게임이다. 특히 남이야 듣건 말건 자기 이야기만 떠들어대는 TV보다는, 직접 마우스를 움직여 휘두를 수 있는 게임이 훨씬 실감나는 이야기꾼으로 인정받는 게 요즘 추세다. 언제부터인가 게임은 놀이꾼뿐 아니라 이야기꾼 역할까지 요구받고 있다. 이 새로운 역할이 엔터테인먼트로서의 게임을 한 걸음 나아가게 할지, 아니면 뒷걸음질치게 할지는 쉽게 말하기 어렵다. `판타지 오페라'라는 생소한 딱지를 붙이고 나온 캡콤의 `카오스 레기온', 그리고 그 유명한 영화에 기초해 만들어진 인포그램의 `터미네이터'를 비교해 본다.
◈ 터미네이터
'이야기'만 치중 재미 반감
`터미네이터'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기계들이 지배하는 미래가 현대로 보낸 살인 병기와의 싸움을 다뤘지만, 게임에서는 인류가 거의 몰살당한 미래가 배경이다. 존 코너 장군이 이끄는 테크 콤의 일원이 돼 쉴 새 없이 쳐들어오는 T-800 시리즈 로봇들과 싸운다.
X박스 게임답지 않게 거친 그래픽은 의외다. 또한 텍스처가 부실하고, 캐릭터들은 흉칙한 모습일 뿐 아니라 멀리서 보면 모두 똑같이 생겼다. 캐릭터 애니메이션도 로봇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동작이 어색하게 끊긴다. 액션 패턴이 너무 단순하다는 것도 문제다. 직접 공격과 슈팅의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30분만 하다보면 똑같은 동작에 지겨워진다. 단순하게 피하고 때리고는 것만 되풀이된다.
하지만 이 게임은 액션 게임이 아니다. 이 게임의 목적은 사실 이야기에 있다.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진행되고, 고비마다 대원들을 직접 조종해서 미션을 수행한다. 호위나 폭파, 적 공격에 대한 방어, 포위망 돌파 등 미션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하나 하나의 볼륨은 작은 편이다. 그렇지만 각 미션마다 사용하는 무기나 공격 방식이 다르고 시점까지 1인에서 3인칭으로 바뀌기 때문에 자질구레한 미션들이 단순 반복된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미션을 이렇게 잘게 쪼개 미션 풀이의 재미까지 줄이면서 원했던 것은, 영화를 감상하는것 같은 스토리 몰입이다. 플레이 시간 중 인터미션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그러나 별로 성공적이지는 않다. 게임 스토리는 영화 스토리와는 좀 다르다. 영화였으면 너무 유치해서 비웃음을 살 정도로 감정을 자극하는 게, 이 미션을 넘어 다음 이야기를 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터미네이터'는 액션 영화 시나리오의 액션을 그냥 게임 미션으로 바꿔놓은 것 같다.
미션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고 있지만, 정작 미션을 플레이하면서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미션 볼륨만 너무 작아져서, 플레이의 호흡이 자꾸 끊어지고 결과적으로 패드를 내려놓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터미네이터'는 게임만이 줄 수 있는 것을 찾는 대신, 영화에 안이하게 게임 문법을 끼워놓아 버렸다.
◈ 카오스 레기온
'스타일리쉬' 액션의 진수
`바이오 해저드' `귀무자' 등으로 액션 어드벤처 게임 시장을 이끄는 캡콤이지만, 자신만의 색깔이 두드러지게 된 건 비교적 최근부터다. `데빌 메이 크라이'에서 `P.N.03'까지, `스타일리쉬 액션'이라는 생소한 장르의 게임에서는 플레이를 하면서 원없이 폼을 잡아보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카오스 레기온' 역시 `멋진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다.
사랑과 우정이 엇갈리는 비극적 운명, 이 게임의 소재는 꽤나 고전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비장미는 결코 고전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이야기는 절대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터미션이나 동영상에서는 많은 부분을 건너뛰어 버린다. 알아서 짐작해내지 않으면 이야기를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런데 플레이를 하다 보면 이 이야기의 플롯은 `이야기하기'를 위한 게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게임 시스템은 액션과 레기온 사용의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레기온은 캐릭터가 전투 중 불러내는 소환수다. 레기온과 캐릭터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경험치를 어떻게 분배해서 레기온을 어떤 식으로 성장시키느냐에 따라 레기온의 능력이 바뀌는 것은 물론, 캐릭터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치 역시 달라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스템이 게임이 추구하는 스타일을 조명하면서 게임의 재미가 더욱 살아난다는 점이다.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의 경우 캐릭터의 멋들어진 연속 공격이 볼거리였다면, `카오스 레기온'은 적 군단 속에 단기로 달려들어 작렬하는 화려함이 강조된다. 레기온들이 항상 함께 있지만 어디까지나 주인공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조연 역할일 뿐이다.
압도적인 적 속으로 달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비장함은 역시 주인공만의 것이다. 특히 상대의 공격을 카운터로 날려버리면서 적 군단의 한 가운데로 쏟아지듯 달려갈 때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캡콤 게임에서 보지 못했던 것까지 보여준다.
한창 자기 도취에 빠져 플레이하다 보면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비장하게 시작한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물론 이 화려한 폭발을 위한 장식물이다. 더 멋지게, 더 폼나는 액션을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다. `카오스 레기온'은 게임에서의 이야기가 영화나 다른 매체와는 어떻게 다른지 보여준다. 게임에서는 이야기를 굳이 직접 할 필요가 없다. 말이 아닌 플레이로 더 잘 전달할 수 있다.
◈ 터미네이터
'이야기'만 치중 재미 반감
`터미네이터'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기계들이 지배하는 미래가 현대로 보낸 살인 병기와의 싸움을 다뤘지만, 게임에서는 인류가 거의 몰살당한 미래가 배경이다. 존 코너 장군이 이끄는 테크 콤의 일원이 돼 쉴 새 없이 쳐들어오는 T-800 시리즈 로봇들과 싸운다.
X박스 게임답지 않게 거친 그래픽은 의외다. 또한 텍스처가 부실하고, 캐릭터들은 흉칙한 모습일 뿐 아니라 멀리서 보면 모두 똑같이 생겼다. 캐릭터 애니메이션도 로봇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동작이 어색하게 끊긴다. 액션 패턴이 너무 단순하다는 것도 문제다. 직접 공격과 슈팅의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30분만 하다보면 똑같은 동작에 지겨워진다. 단순하게 피하고 때리고는 것만 되풀이된다.
하지만 이 게임은 액션 게임이 아니다. 이 게임의 목적은 사실 이야기에 있다.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진행되고, 고비마다 대원들을 직접 조종해서 미션을 수행한다. 호위나 폭파, 적 공격에 대한 방어, 포위망 돌파 등 미션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하나 하나의 볼륨은 작은 편이다. 그렇지만 각 미션마다 사용하는 무기나 공격 방식이 다르고 시점까지 1인에서 3인칭으로 바뀌기 때문에 자질구레한 미션들이 단순 반복된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미션을 이렇게 잘게 쪼개 미션 풀이의 재미까지 줄이면서 원했던 것은, 영화를 감상하는것 같은 스토리 몰입이다. 플레이 시간 중 인터미션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그러나 별로 성공적이지는 않다. 게임 스토리는 영화 스토리와는 좀 다르다. 영화였으면 너무 유치해서 비웃음을 살 정도로 감정을 자극하는 게, 이 미션을 넘어 다음 이야기를 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터미네이터'는 액션 영화 시나리오의 액션을 그냥 게임 미션으로 바꿔놓은 것 같다.
미션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고 있지만, 정작 미션을 플레이하면서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미션 볼륨만 너무 작아져서, 플레이의 호흡이 자꾸 끊어지고 결과적으로 패드를 내려놓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터미네이터'는 게임만이 줄 수 있는 것을 찾는 대신, 영화에 안이하게 게임 문법을 끼워놓아 버렸다.
◈ 카오스 레기온
'스타일리쉬' 액션의 진수
`바이오 해저드' `귀무자' 등으로 액션 어드벤처 게임 시장을 이끄는 캡콤이지만, 자신만의 색깔이 두드러지게 된 건 비교적 최근부터다. `데빌 메이 크라이'에서 `P.N.03'까지, `스타일리쉬 액션'이라는 생소한 장르의 게임에서는 플레이를 하면서 원없이 폼을 잡아보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카오스 레기온' 역시 `멋진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다.
사랑과 우정이 엇갈리는 비극적 운명, 이 게임의 소재는 꽤나 고전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비장미는 결코 고전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이야기는 절대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터미션이나 동영상에서는 많은 부분을 건너뛰어 버린다. 알아서 짐작해내지 않으면 이야기를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런데 플레이를 하다 보면 이 이야기의 플롯은 `이야기하기'를 위한 게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게임 시스템은 액션과 레기온 사용의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레기온은 캐릭터가 전투 중 불러내는 소환수다. 레기온과 캐릭터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경험치를 어떻게 분배해서 레기온을 어떤 식으로 성장시키느냐에 따라 레기온의 능력이 바뀌는 것은 물론, 캐릭터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치 역시 달라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스템이 게임이 추구하는 스타일을 조명하면서 게임의 재미가 더욱 살아난다는 점이다.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의 경우 캐릭터의 멋들어진 연속 공격이 볼거리였다면, `카오스 레기온'은 적 군단 속에 단기로 달려들어 작렬하는 화려함이 강조된다. 레기온들이 항상 함께 있지만 어디까지나 주인공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조연 역할일 뿐이다.
압도적인 적 속으로 달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비장함은 역시 주인공만의 것이다. 특히 상대의 공격을 카운터로 날려버리면서 적 군단의 한 가운데로 쏟아지듯 달려갈 때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캡콤 게임에서 보지 못했던 것까지 보여준다.
한창 자기 도취에 빠져 플레이하다 보면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비장하게 시작한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물론 이 화려한 폭발을 위한 장식물이다. 더 멋지게, 더 폼나는 액션을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다. `카오스 레기온'은 게임에서의 이야기가 영화나 다른 매체와는 어떻게 다른지 보여준다. 게임에서는 이야기를 굳이 직접 할 필요가 없다. 말이 아닌 플레이로 더 잘 전달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