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세상 염원' 그들은 한마음으로 모였다
"죽은 이의 영혼은 반딧불이 된다고 합니다.
광화문을 우리의 영혼으로 채웁시다.
광화문에서 미선이 효순이와 함께 수천, 수만의 반딧불이 됩시다.(중략)
검은 옷을 입고 촛불을 준비해 주십시오.
집에서 나오면서부터 촛불을 켜 주십시오.
누가 묻거든, 억울하게 죽은 우리 누이를 위로하러 간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촛불을 들고 광화문을 걸읍시다.
6월의 그 기쁨 속에서 잊혀졌던 미선이 효순이를 추모합시다.―네티즌 앙마"
2002년 겨울 광화문 거리가 다시 뜨겁습니다. 강철같은 바람도 손가락을 곱게 만드는 추위도 촛불을 꺼뜨리지 못합니다. 포개듯 나란히 선 사람들 체온이 떨리던 몸을 훈훈하게 데우고 손과 손에 쥔 촛불들이 어두운 밤하늘을 환히 밝힙니다. 뜨겁던 6월을 닮은 함성이 귓전에 맴돌면 추위는 어느덧 저 멀리 사라져 갑니다.
6개월 만에 다시 찾은 광화문 거리는 겨울이 완연합니다. 우리를 이 자리로 소환한 건 한 네티즌의 짧은 호소문이었습니다. 지난 6월13일 붉은 물결이 광화문을 뒤덮었을 때 그만 미군의 장갑차에 치여 하늘나라로 간 미선이와 효순이를 추모하자는 호소는 삽시간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졌습니다. 단 세곳의 웹사이트 게시판에 올려진 한 네티즌(`앙마')의 제안은, 마치 팬터지 소설에 나오는 대마법사의 `소환령'처럼 6월의 함성과 열기를 그때 그 자리, 이곳 시청 앞 광장에 돌려놓았습니다.
촛불은 하나지만 촛대를 잡은 손들은 제각각입니다. 엄마아빠 손잡고 나온 어린이에서부터 미선이와 효순이 또래 학생들, 다 큰 아이들을 앞세운 중년의 부부, 머리 허연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광화문 인근 시청 앞 광장은 그때처럼 다채로운 모자이크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딸이 사는 세상에 이런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되겠죠."
세살배기 딸의 고사리 손을 꼭 잡은 아빠가 힘주어 말합니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요." 자식을 키우는 아주머니 눈가에는 눈물이 반짝입니다.
"평등하고 동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것이 반미(反美)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참석했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겪었을 듯한 초로의 아저씨는 말했습니다.
하늘이 파랗던 낮부터 행사는 시작됐습니다. 낮에는 모두들 한마음으로 촛불 대신 하얀 국화를 들었습니다. 이른 시각부터 자리를 잡고 앉은 많은 사람 사이로는 즉석 모금함이 돕니다. 효순이와 미선이를 기리는, 그리고 소파(SOFA) 개정으로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한 모금활동입니다. 그리고 노란색 촛불 시위 홍보물부터 각 단체에서 만들어온 효순이와 미선이를 기리는 자료들이 여기저기서 뿌려지고 있습니다.
가수 이선희씨의 힘찬 노래 다음에는 신해철씨가 등장해 "우리는 지금 촛불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태우고 있다"고 외칩니다. 시청 앞 수만명이 환호합니다. 이들의 함성은 한참동안 지축을 흔듭니다.
시청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서서 각종 이벤트가 잇따랐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의 손을 보여줍시다'라는 핸드프린팅 이벤트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어 꼬마부터 할아버지까지 참여자가 많습니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한 `보이지 않는 손'은 바로 이들의 손이었나 봅니다.
미선이와 효순이 추모행사에는 `눈물과 슬픔'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죽음은 항상 산 자들의 몫입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에서처럼 죽은 자를 추모하는 장례식은 산 자들을 위한 축제의 한마당이기도 합니다.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얼굴이 환합니다. 그들 얼굴에서는 `저주'나 `보복'과 같은 어두컴컴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잘못된 제도에 의문을 던지고, 틀렸다고 판단됐을 때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주저없이 당당하게 맞서는, 그래서 스스로 당당한 주체로 바로서려는 `자기 긍정'과 `자아 존중'의 건강한 빛이 얼굴과 얼굴마다 서려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촛불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은 `소파 개정'의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함께 웃고 떠들고 즐깁니다. 가족 단위로 나온 시민들은 아이들에게 행사의 의미를 설명해주느라 바쁩니다. 아이를 목마 태운 아빠의 발걸음은 경쾌합니다. 촛불행사는 `시위' `데모'라기보다 `보다 안전하고 평화스런 세상'을 기원하며 손에 손을 잡고 펼치는 한 편의 축제입니다.
6월에서 12월로 이어지는 시청 앞 광장의 환한 열기에 학자들도 "거대한 문화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며 흥분하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사회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진단입니다.
온라인에서 출발해 오프라인으로 나가는 형태로, 광범위한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를 모아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칩니다. 월드컵 축구와 붉은 악마의 짜릿한 경험이 이젠 두 소녀의 억울한 죽음을 함께 애도하면서 새 세상을 열어가려는 촛불행사로 승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2002년 광화문 사거리와 시청 앞 광장을 우리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함께 모여 승리를, 슬픔과 분노를, 평화와 평등을, 자기 긍정의 힘으로 밝게 불태웠기 때문입니다.
1990년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기폭제가 됐던 독일의 촛불시위도, 2001년 미국 뉴욕 9？11 테러현장에서 열렸던 촛불추모제도, 아프간 공습에 반대하는 촛불시위도, 평화와 평등을 기원하는 한사람 한사람의 손에서 시작됐습니다.
2002년 12월14일 토요일 서울시청 앞에 선 저, 진이(眞e)는 미선이와 효순이를 추모하기 위해 우리가 켠 촛불이 우리를 보다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죽은 이의 영혼은 반딧불이 된다고 합니다.
광화문을 우리의 영혼으로 채웁시다.
광화문에서 미선이 효순이와 함께 수천, 수만의 반딧불이 됩시다.(중략)
검은 옷을 입고 촛불을 준비해 주십시오.
집에서 나오면서부터 촛불을 켜 주십시오.
누가 묻거든, 억울하게 죽은 우리 누이를 위로하러 간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촛불을 들고 광화문을 걸읍시다.
6월의 그 기쁨 속에서 잊혀졌던 미선이 효순이를 추모합시다.―네티즌 앙마"
2002년 겨울 광화문 거리가 다시 뜨겁습니다. 강철같은 바람도 손가락을 곱게 만드는 추위도 촛불을 꺼뜨리지 못합니다. 포개듯 나란히 선 사람들 체온이 떨리던 몸을 훈훈하게 데우고 손과 손에 쥔 촛불들이 어두운 밤하늘을 환히 밝힙니다. 뜨겁던 6월을 닮은 함성이 귓전에 맴돌면 추위는 어느덧 저 멀리 사라져 갑니다.
6개월 만에 다시 찾은 광화문 거리는 겨울이 완연합니다. 우리를 이 자리로 소환한 건 한 네티즌의 짧은 호소문이었습니다. 지난 6월13일 붉은 물결이 광화문을 뒤덮었을 때 그만 미군의 장갑차에 치여 하늘나라로 간 미선이와 효순이를 추모하자는 호소는 삽시간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졌습니다. 단 세곳의 웹사이트 게시판에 올려진 한 네티즌(`앙마')의 제안은, 마치 팬터지 소설에 나오는 대마법사의 `소환령'처럼 6월의 함성과 열기를 그때 그 자리, 이곳 시청 앞 광장에 돌려놓았습니다.
촛불은 하나지만 촛대를 잡은 손들은 제각각입니다. 엄마아빠 손잡고 나온 어린이에서부터 미선이와 효순이 또래 학생들, 다 큰 아이들을 앞세운 중년의 부부, 머리 허연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광화문 인근 시청 앞 광장은 그때처럼 다채로운 모자이크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딸이 사는 세상에 이런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되겠죠."
세살배기 딸의 고사리 손을 꼭 잡은 아빠가 힘주어 말합니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요." 자식을 키우는 아주머니 눈가에는 눈물이 반짝입니다.
"평등하고 동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것이 반미(反美)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참석했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겪었을 듯한 초로의 아저씨는 말했습니다.
하늘이 파랗던 낮부터 행사는 시작됐습니다. 낮에는 모두들 한마음으로 촛불 대신 하얀 국화를 들었습니다. 이른 시각부터 자리를 잡고 앉은 많은 사람 사이로는 즉석 모금함이 돕니다. 효순이와 미선이를 기리는, 그리고 소파(SOFA) 개정으로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한 모금활동입니다. 그리고 노란색 촛불 시위 홍보물부터 각 단체에서 만들어온 효순이와 미선이를 기리는 자료들이 여기저기서 뿌려지고 있습니다.
가수 이선희씨의 힘찬 노래 다음에는 신해철씨가 등장해 "우리는 지금 촛불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태우고 있다"고 외칩니다. 시청 앞 수만명이 환호합니다. 이들의 함성은 한참동안 지축을 흔듭니다.
시청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서서 각종 이벤트가 잇따랐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의 손을 보여줍시다'라는 핸드프린팅 이벤트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어 꼬마부터 할아버지까지 참여자가 많습니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한 `보이지 않는 손'은 바로 이들의 손이었나 봅니다.
미선이와 효순이 추모행사에는 `눈물과 슬픔'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죽음은 항상 산 자들의 몫입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에서처럼 죽은 자를 추모하는 장례식은 산 자들을 위한 축제의 한마당이기도 합니다.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얼굴이 환합니다. 그들 얼굴에서는 `저주'나 `보복'과 같은 어두컴컴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잘못된 제도에 의문을 던지고, 틀렸다고 판단됐을 때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주저없이 당당하게 맞서는, 그래서 스스로 당당한 주체로 바로서려는 `자기 긍정'과 `자아 존중'의 건강한 빛이 얼굴과 얼굴마다 서려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촛불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은 `소파 개정'의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함께 웃고 떠들고 즐깁니다. 가족 단위로 나온 시민들은 아이들에게 행사의 의미를 설명해주느라 바쁩니다. 아이를 목마 태운 아빠의 발걸음은 경쾌합니다. 촛불행사는 `시위' `데모'라기보다 `보다 안전하고 평화스런 세상'을 기원하며 손에 손을 잡고 펼치는 한 편의 축제입니다.
6월에서 12월로 이어지는 시청 앞 광장의 환한 열기에 학자들도 "거대한 문화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며 흥분하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사회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진단입니다.
온라인에서 출발해 오프라인으로 나가는 형태로, 광범위한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를 모아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칩니다. 월드컵 축구와 붉은 악마의 짜릿한 경험이 이젠 두 소녀의 억울한 죽음을 함께 애도하면서 새 세상을 열어가려는 촛불행사로 승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2002년 광화문 사거리와 시청 앞 광장을 우리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함께 모여 승리를, 슬픔과 분노를, 평화와 평등을, 자기 긍정의 힘으로 밝게 불태웠기 때문입니다.
1990년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기폭제가 됐던 독일의 촛불시위도, 2001년 미국 뉴욕 9？11 테러현장에서 열렸던 촛불추모제도, 아프간 공습에 반대하는 촛불시위도, 평화와 평등을 기원하는 한사람 한사람의 손에서 시작됐습니다.
2002년 12월14일 토요일 서울시청 앞에 선 저, 진이(眞e)는 미선이와 효순이를 추모하기 위해 우리가 켠 촛불이 우리를 보다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