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주] 주식시장 관련 소식이 매일 쏟아지지만 뉴스에서 '개미'의 목소리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기사를 쓰는 기자도 개인 투자자고, 매일 손실과 이익 사이에서 울고 웃습니다. 일반 투자자보다 많은 현장을 가고 사람을 만나지만 미처 전하지 못했던 바를 철저하게 '개인'의 시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조만간 또 투자자들이 좋아할 만한 굉장한 상품이 나올거에요."
홍콩의 자산운용사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소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나라에는 없는' 상품들이 홍콩에 상장된다.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하락에 베팅할 수 있는 가상자산 인버스 상품과 엔비디아나 테슬라 등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미국주식에 레버리지나 곱버스(인버스 2x)로 투자할 수 있는 ETF 등이 대표적이다.
해외 운용사 관계자를 만나면 상품 소개만으로도 너무나 흥미롭다. 우리나라 운용사가 똑같은 상품을 두고 0.001%의 수수료 다툼을 하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상품을 쏟아낸다.
중국 테크 기업과 미국의 테크기업을 적절히 조합해 자연스레 위험회피(헷지)까지 가능한 테마 상품도, 단일종목 레버리지와 곱버스 등 파생상품도 우리나라 투자자들에게 잘 알려지기만 한다면 충분히 관심을 보일 듯하다.
홍콩거래소에 상장하지만, 이들이 기대하는 것은 아시아 시장의 자금이다. 미국 뉴욕시장이 문을 닫고, 아시아 시장이 열려있는 시간에 미국 기업에 실시간으로 투자할 수 있고 심지어 그 상품이 다른 아시아 국가 시장에 상장돼 있지 않다면 자금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다른나라에 없는 상품을 우리나라 운용사가 먼저 만들어 우리나라 시장에 상장한다면, 아시아 투자자들의 자금을 끌어올 수 있지 않을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운용사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규제 탓에 상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5년여간 ETF 시장 규모가 200조원을 눈앞에 둘 정도로 급성장했지만 우리 금융당국은 '규제 일변'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3배 상품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상장지수증권(ETN)에서만 허용되고, 단일종목 ETF는 '한 종목 비중 제한 30%, 구성종목 최소 10종목' 규제에 막힌다.
이 같은 규제 때문에 우리나라 주식시장 상승 3배에 투자하기 위해서 미국에 상장된 'Direxion Daily South Korea Bull 3X Shares '에 투자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발생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허용될 때에는 발행은 물론 중개까지 막았다. 자본시장법상 비트코인이 ETF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은 여전히 가상자산을 투기상품으로 치부하고, ETF에 후진적인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결국 우리 운용사들이 내놓을 수 있는 ETF 선택지가 많지 않다. 차별화를 하고싶지만, 각종 규제에 맞추다 보면 모습이 다들 똑같아진다. 운용사의 역량을 보장한 '액티브' 상품까지도 규제로 인해 큰 차이점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운용사들이 출혈을 감수한 수수료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환경을 당국이 직접 만들어 놓고 이제와서 이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자산운용사의 과도한 광고와 경쟁 구도는 결국 다른 상품 등 소비자에게 비용이 전가될 우려가 있다"며 새로운 규제를 예고했다.
금융당국이 막는다고 우리나라 투자자들이 순순히 포기하지도 않는다. 최근 한 달간 우리나라 투자자들이 미국 시장에서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반도체지수를 3배 추종하는 ETF다. 매수금액만 4조4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테슬라와 엔비디아 매수 금액을 합친 금액과 비슷한 수준이다.
매수금액 기준 미국시장 상위 10개 종목 중 7개가 ETF 상품이다. 여기에는 반도체지수 3배 인버스, 테슬라 단일종목 2배, 나스닥지수 3배 등 공격적인 상품이 모두 이름을 올렸다. 미국뿐 아니라 홍콩 시장에서도 CSOP의 항셍 2배와 곱버스 등 ETF 상품들이 상위권에 위치했다.
기본예탁금, 사전 온라인교육 이수 등 진입 규제를 적용받는 국내 상장 레버리지 ETF규제와 달리 해외 ETF는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점도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 중 하나다.
우리 운용사가 해외 종목을 담은 상품을 만들면 결국 해당 종목에 자금이 들어가는 것은 맞지만, 최소한 지금 해외로 빠져나가는 수수료는 우리 운용사가 갖게 된다. 해당 상품이 상장된 시장과 운용사의 영향력 확대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시장이 200조면 뭘해요 수익이 안나는데." 최근 만난 국내 운용사 관계자가 말했다. 금융당국은 국내 운용사와 자본시장이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해서는 ETF의 외형보다는 질적 성장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제 질적 성장을 위해 우리나라 시장에서도 'KOSPI bull 3x ETF'를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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