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매입 등 재원마련 핑계
비율 높이며 이익잉여금 축적
주주환원 확대 취지 무색해져
비율 높이며 이익잉여금 축적
주주환원 확대 취지 무색해져
금융지주들이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금을 대폭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주환원율을 높이는 '밸류업 정책'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금융지주들이 일반 주주에게 배당하는 것보다 더 높은 비율의 배당금을 자회사에 요구하며 이익잉여금은 그대로 쌓고 있었다.
11일 금융투자협회 공시에 따르면 신한투자증권과 하나증권은 지난해 배당금으로 각각 1229억1500만원, 450억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두 회사 모두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는 지주회사에 배당금을 지급한다.
신한투자증권이 신한금융지주에 지급한 배당금은 지난해보다 3배 이상 커졌다. 지난해 보통주 기준 주당 107원이었던 배당금이 올해 343원으로 늘었고, 우선주를 포함한 배당 총액도 403억6600만원에서 1229억1500만원으로 확대됐다.
신한투자증권 측은 순이익 증가에 따라 배당금도 커졌다고 설명했지만, 실적 상승률과 과거 배당성향을 고려하면 이번 배당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한투자증권은 지난해 전년 대비 143.6% 증가한 2458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반면 배당금은 204.5% 늘었다. 지난해보다 더 많은 실적을 올렸던 2022년과 2021년에도 배당금은 1000억원에 불과했다.
2019년 3.3%에 불과했던 신한투자증권의 배당성향은 올해 50%까지 확대됐다. 반면 신한금융지주의 현금배당성향은 지난해 기준 25%에 불과했고, 올해 배당금 역시 지난해와 동일한 금액으로 정했다.
지난해 적자를 기록하며 배당을 하지 않았던 하나증권은 올해 순익의 20%를 지주사에 배당한다. 최근 5년간 하나증권의 평균 배당성향은 14%에 머물렀다. BNK투자증권도 전년(60억원)보다 45% 늘어난 87억원을 배당하기로 결정했다.
금융지주가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는 계열 증권사들이 지주사에 대한 배당금을 늘리는 것은 금융지주가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밸류업 정책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주사가 밸류업 정책에서 약속한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등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자회사를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배당금은 자회사 내 이사회가 결정하도록 돼있지만, 지주회사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지주사에서 배당금을 늘리라고 하면 늘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전했다.
증권사 등이 지주사에 지급하는 배당금은 늘어나고 있는 반면, 지주 내 가장 큰 이익을 차지하고 있는 은행의 배당성향은 그대로 유지됐다. 신한은행의 최근 3년간 현금배당성향은 38% 수준으로, 신한투자증권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올해 신한라이프는 전체 순익의 99%를 지주사에 배당금으로 지급하기도 했다.
사실상 자체 영리사업이 없는 지주사가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계열회사의 배당금을 늘리는 것 외에 방법이 없는 것은 맞지만, 지주사의 주주환원 정책 확대에 필요한 돈보다 더 많은 배당금을 요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본효율성을 높여 이익을 높이고, 여기서 벌어들인 이익을 주주에게 더 많이 환원하는 밸류업 정책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자회사가 벌어들인 순이익의 절반 이상을 현금배당으로 가져가는 것은 결국 자회사의 기초체력을 깎아먹는 일"이라며 "당장의 보여주기식 밸류업을 위해 계열사의 미래를 파는 것이 밸류업의 취지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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