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참패 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칩거에 들어간 가운데 다른 대권 잠룡들의 보폭이 넓어지고 있다.
한동훈 전 위원장은 일단 공식 활동을 피하고 있지만 때마다 필요한 목소리를 내며 재기를 노리고 있다.
"선거참패는 내 책임"이라며 사퇴한 한 전 위원장은 비대위원 만찬에서 "내공을 쌓겠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고 '전당대회를 늦춰달라'고 했다는 신평 변호사 발언에 대해선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그가 대표에 도전할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4·10 총선 직후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은 '반(反)한동훈' 메시지를 잇따라 내며 윤석열 대통령과 코드를 맞췄고, 4선 고지에 오른 안철수 의원(경기 성남분당갑 당선인)은 '의대 2000명 증원 논란'을 비롯한 의정(醫政) 충돌의 중재를 호소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특히 홍 시장은 자강(自强)론으로 보수 적통을 자처하며 '한동훈 때리기'에 집중했다. 페이스북에서 연이어 한 전 위원장을 "문재인 사냥개", "철부지", "정권 폐세자", "우리를 궤멸시킨 애" 등으로 부르거나 윤 대통령을 빼고 전임 정권의 '적폐 수사' 책임을 묻기도 했다. 홍 시장은 한 전 위원장이 대통령실 오찬 초청 제의를 받기 사흘 전(지난달 16일) 윤 대통령과 만찬을 했고, 이후 '대통령 배신' 프레임 공세에 나섰다. 그는 또 친윤(親윤석열) 핵심 이철규 의원을 향해 "패장이 나와 원내대표 한다고 설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은 정치권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지난달 19일 공관에서 서울 동북권 여당 낙선자 14명과 만찬을 했고, 22일 서울 서남권 낙선자, 23일 서울 지역 당선인, 26일 낙선 측근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30일엔 서울 지역 야당 당선인 10여명과 오찬을 했다.
정치 메시지도 늘었다. 그는 지난달 11일 SNS로 "국민의 질책은 준엄했다"며 고개를 숙인 뒤, 15일 "우파의 대한민국, 좌파의 대한민국은 없다"며 중도 노선을 강조했다. 최근 주요일간지 기고에선 "신자유주의 우파에서 따뜻한 우파로 노선 전환을 할 때가 됐다"고 했다.
서울이 기반인 오 시장은 당내 경선에서 당원투표보다 여론조사 민심에 비교우위를 보여왔다.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국민의힘 후보 예비경선 당시 나경원 후보(현 서울 동작을 당선인·5선)에게 당심에서 밀렸지만, 일반여론조사 100%로 치른 본경선에선 승리했다.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를 선출할 전당대회 현행 '당원투표 100% 룰'을 두고도 오 시장은 일반여론조사를 부활시키는 개정 방향이 "당연하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반면 경남 출신으로 경남지사·당대표·대선후보를 역임한 홍 시장은 "당원 100%를 하는 게 맞다"고 했다.
제3지대 출신으로 여당 중진 자리를 굳힌 안 의원은 의대 증원 확정 1년 유예, 해병대원 채 상병 특검 수용 등 여권 수뇌부에서 '불편'해하는 목소리를 거침없이 내고 있다. 그는 지난달 28일 한 정치 예능에서 '예상하는 다음 대통령은 누구냐'는 질문에 "접니다"라고 손을 들었다.
이외에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역구 대항마였던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차기 당권·대권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일찍이 반윤(反윤석열)으로 분류, 수도권에서 역할을 해온 유승민 전 의원은 1일 CBS라디오에서 당대표 출마 가능성을 시사해 눈길을 모았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왼쪽부터 국민의힘 소속 홍준표 대구광역시장, 오세훈 서울특별시장,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각 인물 페이스북 사진 갈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