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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DT인] "못생겼지만 맛 좋고 영양면에서도 탁월… 못난이 농산물 구출 앞장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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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 캐비지 대표
IT 회사 기획자로 이력 쌓은 뒤 농부 어려움 해결하고파 두번째 창업
'어글리어스 마켓' 운영… 원산지·보관법·레시피까지 적힌 페이퍼 동봉
장보기 어려운 워킹맘·1인가구 등 사이서 입소문 퍼지며 이용자 늘어
[오늘의 DT인] "못생겼지만 맛 좋고 영양면에서도 탁월… 못난이 농산물 구출 앞장서요"
못난이 농산물 유통 플랫폼 '어글리어스 마켓'을 운영하는 최현주 캐비지 대표. [캐비지 제공]

'못생겨도 괜찮다'는 위로를 주는 스타트업이 있다. 뿔이 난 파프리카도, 갓이 두 갈래로 갈라진 양송이 버섯도, 다리가 셋이나 달린 당근도 껍질을 벗기고 나면 모두 영양분을 듬뿍 머금은 채소일 뿐이라고 말해주는 스타트업이다. 유기농으로 기른 못난이 채소는 먹어서 건강해지고, 그 철학을 느끼면서 마음이 건강해진다.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사옥에서 못난이 농산물 유통 플랫폼 '어글리어스 마켓' 운영사 '캐비지'의 최현주(35) 대표를 만났다. 그는 경남 하동에서 나고 자랐다. 학기 중에 농업 방학이 있을 정도로 농사가 주된 산업이었던 지역이었고, 영남과 호남 상인이 나란히 좌판을 벌이는 화개장터가 열리는 곳이기도 했다.

"어릴 때 장터에서 본 농산물은 울긋불긋하고, 모양도 모두 제각각이었어요. 그런데 대학에 진학하고 마트에서 만나는 농산물들은 너무 일률적이고 예쁜 것들 밖에는 없더라고요. 이질감을 느꼈고, '그럼 내가 알던 못난이들은 어디 간 거지?'라는 의문도 들더라고요."

오랫동안 품어왔던 의문은 최 대표의 두 번째 창업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됐다. 공기업을 다니던 그는 2016년쯤 크리에이터 판로를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첫 창업에 나섰고, 이후 IT 회사 기획자로 이력을 쌓은 뒤 캐비지를 창업했다. 최 대표는 "주말에 한 농장을 방문했는데 수확한 가지의 30%를 '못난이'라며 버리거나 아무나 가져가라고 내놓는 광경을 목격했다"며 "농부 분들은 이런 문제를 오래 겪고 있었고,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에 두 번째 창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늘의 DT인] "못생겼지만 맛 좋고 영양면에서도 탁월… 못난이 농산물 구출 앞장서요"
어글리어스 마켓을 통해 판매되는 정기배송 박스와 품목들 [캐비지 제공]



농민들이 못난이 농산물을 버리는 이유는 수지가 맞지 않아서다. 유통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는 못난이들을 팔아봐야 수확하는데 드는 인건비도 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껏 수확해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 창고에서 썩어가거나 이웃에게 그냥 나눠주는 일이 허다하다. 답답한 마음에 트럭을 몰고 도심지로 나와 직판매를 하는 농민들도 있지만, 고되기만 하고 기름값도 안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소비자에게 와닿는 편익이 없다면 선택을 받을 수 없다. 캐비지는 못난이 농산물에 편리함을 더했다. 선호하는 야채·과일을 고르면 1~3주 간격으로 정기배송을 해준다. 소비자가 고른 품목의 원산지와 보관법, 레시피까지 꼼꼼히 적힌 페이퍼도 동봉된다. 시간 내서 장보기 어려운 워킹맘이나 건강한 식단을 시도하는 1인 가구 등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며 이용자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 대표는 "사실 정기배송을 시작한 건 못난이 농산물이 어디서 얼마나 날 지 예측이 어려워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캐비지는 애써 키운 작물을 버릴 상황에 놓인 농가와 직접 접촉해 채소와 과일 등을 구출해온다. 기상 환경 등에 따라 흠과가 많을 수도 있고, 대부분이 유통 가능한 모양으로 생장할 수도 있어 수급에 변동이 있는 편이다. 그래서 다양한 품목을 패키지로 구성해 정기배송하는 사업 모델을 채택하게 된 것인데 '고민없는 장보기'에 예상보다 소비자 호응이 좋았다는 것이다.

모양은 못나도 맛은 다르지 않다. 오히려 맛과 영양이 더 뛰어난 경우도 많다는 설명이다. 농가에서는 예쁜 사과를 만들기 위해 크기를 키우는 비대제와 색택제를 뿌리고, 반사필름과 봉투까지 동원해 빨간색을 입힌다. 최 대표는 "수확시기도 과일을 맛있을 때 따는 게 아니라, 추석이나 설 등 명절에 맞춰서 당도가 덜 올라와도 그냥 따게 된다"며 "채소도 마찬가지로 수확 시기가 조금 늦어서 '못난이'가 되는 경우가 많아 영양 면에서 더 뛰어나다"고 했다.

캐비지가 그리는 미래는 농산물의 잘생김과 못생김을 구분하지 않는 유통 구조다. 최 대표가 20년 전 하동 화개장터에서 봤던 풍경처럼, 노란 사과도 울긋불긋한 사과도 한 소쿠리에 담겨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것이다. 최 대표는 "우리는 궁극적으로 농산물을 맛이나 품질이 아니라 단순한 모양만 갖고 분류하는 유통 구조를 새로 정립하는 것이 목표"라며 "사실상 못난이 농산물의 폐기 비용이 일반 농산물에 전가돼 있기에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가격도 과대평가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캐비지가 성장하는 만큼 농산물의 외견에 집착하지 않는 문화가 확산하는 셈"이라며 "시장 전체가 바뀌어 30%의 농산물을 버리지 않게 된다면, 시중에서 판매되는 가격도 그만큼 낮아져 물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상현기자 hy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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