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 사흘간 잠행후 회의 주재
金 "자리 목표 아니라고 생각"
당 내부에선 "의견 수용해야"
국민의힘의 혁신이 좌초하고 있다. '희생하지 않으려면 공천관리위원장 자리를 달라'고 요구한 인요한 혁신위원장과 '어림없다'는 김기현 대표 간 기싸움만 노출되며 혁신과는 되레 멀어지고 있다. 최고위원회 내부에서는 '친윤(親윤석열) 핵심·당 지도부·스타 중진' 희생(총선 불출마 또는 수도권 험지출마) 요청을 적극 수용하란 목소리가 표출되기도 했다.
사흘간 잠행을 깬 인 위원장은 30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혁신위 제11차 회의를 열어, 지난 3일 '권고' 수준에서 냈던 희생 요구를 6호 혁신안으로 정식 채택했다. 인 위원장은 브리핑에서 "당의 책임있는 분들께 변화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지금 선거까지 4개월밖에 안 남았다"며 "(안건을) 최고위에서 논의해달라"고 촉구했다.
'12월4일'을 당 지도부의 답변 시한으로 제시한 그는 전면 수용 또는 불수용 양자택일을 촉구했다. 특히 김 대표 등이 끝까지 불응한다는 전제로 "혁신위에 '전권'을 준다던 말씀이 허언이 아니라면 저를 공관위원장으로 추천해달라"고 했다. 지도부에서 대부분 혁신안이 공관위 소관이라며 입장표명을 미룬 것을 겨눴다.
인 위원장은 내년 총선 불출마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이날 오전 CBS라디오에 출연해선 "제 뒤에 '굉장한 백'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변해야 한다'는 국민의 뜻이 뒤에 있다"며 "저는 욕심이 없다. 병원(본업)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필요하다면' 비상대책위 체제로 전환도 해야한다고 했다.
반면 김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국회 상황이 매우 엄중한데 공관위원장 자리를 갖고 논란을 벌인 것"이라며 "그동안 혁신위 활동이 인 위원장이 공관위원장이 되기 위한 목표를 갖고 활동했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박정하 당 수석대변인은 김 대표가 인 위원장 요청을 거절한 것이라고 확인했다.
그러자 인 위원장은 혁신위 입장문을 내고 "지도부가 혁신안을 그저 '공관위로 넘긴다'는 일반적인 입장만을 반복한다면 국민은 혁신의 진정성과 당의 변화 의지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며 "희생 안건마저 공관위로 넘길 경우 국민은 혁신위를 김 대표 체제의 위기 타개용 대국민 눈속임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위원장으로서 혁신 의지가 의심받고 당이 어려움에 빠지는 건 도저히 받아 들이기 어렵다"며 "(희생 요청에) 책임있는 입장 표명이 없다면, 내가 먼저 희생하고 내려놓을 테니 차라리 공관위에서 혁신 작업을 실천으로 완성하게 해달라는 요청이며, 이것이 받아들여진다면 공관위원장을 요청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지도부가 혁신위 의견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김병민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 공개회의에서 "우린 얼마 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로 고개를 숙였고 국민께 한번 더 기회를 얻기 위해 간곡하게 혁신위 출범을 요청드렸다"며 "혁신위가 지도부를 향해 '더 가열찬 혁신과 쇄신에 나서달라'는 주문에 응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발언했다. 수도권 원외당협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세간의 시선은 혁신위 활동의 방향과 속도를 당 지도부가 쫓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매서운 질책을 무척 따갑고 아프게 받아들인다. 혁신위의 실패는 곧 우리 당 지도부의 실패가 된다"며 "수도권 격전지에서 뛰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보면 그 표정에 근심과 걱정이 묻어난다"고 경고했다
장예찬 청년최고위원도 지난 14일 한 방송에서 "지도부에 저를 비롯한 젊은 최고위원들은 전폭적으로 인 위원장과 혁신위 활동을 지지하고 있다"며 "오랜 기간 정치했던 선배님들의 대승적인 결단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인 위원장이 민심과 당심(黨心)에 힘입은 측면도 있다. 지난 24일 공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에선 인 위원장 역할을 두고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42%로 '잘못하고 있다'(39%)를 오차범위(95% 신뢰수준 ±3.1%포인트) 내에서 앞섰고,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65%가 긍정평가(부정 19%)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지난 11월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면담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