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표학길 칼럼] 장기불황 대비 특별위 구성하라](http://contents.dt.co.kr/images/202210/2022102002102269061001[1].jpg "[표학길 칼럼] 장기불황 대비 특별위 구성하라")
이 같이 미국의 핵심물가지표가 예상보다 높아짐에 따라 다음달 2일 미국의 연방준비제도가 4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도 지난 12일 3개월 만에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밟았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수습되지 못하고 한·미의 금리 인상으로 원화의 대(對)달러 환율 평가절하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지난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의 어록을 상기하게 된다. "인플레이션은 과잉 화폐발행의 결과다" "인플레이션은 알콜 중독과 같다" 등이다.
세계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너무 많은 화폐를 발행했다. 이것이 누적된 상태에서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되자 각국은 재정지출 증가와 화폐발행에만 매달려왔다. 이제 악영향이 먼저 오고, 좋은 효과는 나중에야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한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국제 원자재와 곡물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작년 6월보다 6.0% 상승하면서 외환위기 시기인 1998년 11월 이후 24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 됐다. 인플레이션이 상당기간 지속하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누적되면 결국 사회·경제적 약자 계층은 치명적 피해를 입게 된다.
저신용자들이 주로 찾는 대부업체들은 20%의 최고금리 한도로도 채산성이 악화되어 신용대출을 중단하고 담보대출만 취급하고 있다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20·30세대 가구 평균 금융부채는 8455만원으로 1년새 12.7% 증가했다고 한다. 평균부채증가율(7.70%)의 2배에 가까운 속도로 빛이 늘어난 것이다. 60세 이상 고령층의 평균 금융부채 증가율은 13.20%로 더 빨랐다고 한다. 금리인상의 피해가 저신용자들에게만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가계와 기업에게도 확산되는 모양새다.
지난 11일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금리상승에도 2분기 가계 빚(신용)은 1869조40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6조4000억원 늘어나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분기 국내총생산(GDP)대비 민간부채 비율은 173.6%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위기징후 기준(100% 초과)을 훨씬 초과했다. 한은의 가계부채 현황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금융부채 고위험가구는 38만1000가구로 전체 금융부채 보유가구의 3.2%를 차지하고 있디.
회사채 시장의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면서 기업의 은행 원화대출 잔액도 지난달 말 기준 1155조5000억원으로 한달 새 9조1000억원이 급증했다. 이 증가폭은 2009년 6월 통계 집계 이후 가장 컸다. 은행의 기업대출도 9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되기 훨씬 전부터 기업들의 채산성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19세기 말과 1930년대 초를 제외하고는 미국은 대체로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다. 일본은 1998~2012년 4%의 물가하락, 즉 디플레이션을 경험했다.
'프리드먼 준칙'(Friedman rule)으로 알려진 정책 준칙은 인플레이션보다 작은 규모의 예측가능한 정도의 디플레이션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디플레이션이 일어나면 '피셔 효과'를 통해 명목이자율이 하락하게 될 것이고, 이는 곧 화폐 보유의 비용을 낮추게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디플레이션 옹호 준칙은 디플레이션으로 벌어지게 되는 부의 재분배 과정에서 경제적 강자인 채권자는 유리해지고 경제적 약자인 채무자는 불리해진다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특히 디플레이션은 소득감소와 실업증가가 수반되기 때문에 더 깊은 경제적 손실을 야기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적절한 규모의 인플레이션이 진행된다면 전통적 사회적 약자인 채무자에게 유리한 상황이 전개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나면 결국 명목이자율을 높여 사회적 비용이 앙등하게 되고, 소비와 투자의 위축을 가져와 심각한 불황이 초래될 것이다.
프리드먼이 지적한 대로 통화팽창을 멈출 때 악영향이 먼저 오고, 좋은 효과는 나중에야 나타날 것이다. 특히 현재와 같이 코로나 팬데믹이 완전히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 및 곡물 가격의 불안정은 초고속 인플레이션의 종착점으로, 상당 기간 장기복합불황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
한국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안고 있고 대외 부문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다. 때문에 여야는 소아병적인 정쟁을 중단하고 인플레이션압력을 줄여나가면서 장기불황에 대비하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야 될 시점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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