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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방석 위에서 외치는 표현의 자유?[한기호의 정치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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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적 작품에 金賞 준 만화축제 논란
표현자유 논쟁 엇나가는 여야 정치권
문체부 "주최측 승인사항 위반" 경고
野 "블랙리스트…카툰 사전적의미 보라"
불문율·납세자 고려 無…집권기 잣대는?
官 지원 편향作 논란에만 "자유" 핏대
세금방석 위에서 외치는 표현의 자유?[한기호의 정치박박]
지난 9월30일~10월3일 경기 부천시 만화영상진흥원이 주최한 제25회 부천국제만화축제의 23회 학생만화공모전 고등부 카툰 부문 각각 금상·은상·동상을 받은 작품 '윤석열차'(위), '아빠찬스'(아래 왼쪽), '임산부석'(아래 오른쪽).<인터넷 커뮤니티 사진 갈무리>

'윤석열차'란 이름의 전남예고 학생의 그림이 화제를 연발하고 있다. 지난 3일 폐막한 제25회 부천국제만화축제의 23회 '학생만화공모전' 고등부 카툰 부문 금상(金賞)을 받은 작품이다. 청소년들이 창작성과 그림실력을 겨루는 대회서 별안간 '정파성' 논쟁에 불이 붙었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주최측 경고로 '표현의 자유' 시비가 확대되고 있다.

먼저 어떤 그림인지 주목할 수밖에 없다. 어린이용 영상물·장난감 등으로 유명한 인면(人面) 기관차 토마스를 패러디해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이 달린 기관차가 폭주하듯 내달리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일반시민을 괴롭히는 정부라고 본 것인지, 무고한 이미지의 사람들이 당장 기관차에 짓밟힐 듯해 도망치는 모습이 한폭에 담겼다.

윤 대통령의 얼굴은 눈이 반쯤 풀려 있고 실물에 비해 과장되게, 터질 듯이 비만하다. 기관차 가장 앞칸부터 김건희 여사를 닮은 여인과 두껍고 날선 검(劍)을 들고 법복 입은 검사(檢事)들이 '초점없는 눈'을 한 채 서있는 모습은, '똘망똘망한 눈'의 기차 앞 시민들과 인간 대 비(非)인간으로 대조를 이룬 듯하다.

기저에 적개심 또는 공포, '검사 혐오'마저 느껴지니 야당의 만평(漫評)쯤 되리라 여겼는데 고교생 작품이라니 놀랐다. 소위 '불쾌한 골짜기'가 인면 기관차 외적 요소로도 느껴진다. 이 가운데 낙태 반대시위자를 임신부가 코앞에 서 있어도 임산부석에서 비켜나지 않는 험상궂은 노인의 모습으로 '성급한 일반화'한 그림도 동상(銅賞)을 받았다.

은상(銀賞) 수상작은 명문대를 목표로 동아줄을 붙잡고 오르는 입시생들을 저마다 다른 직업과 부(富)의 수준을 상징하는 '아빠'들이 떠받치는 모습으로 대조시킨 그림이다. 여야 모두 장관 후보자를 냈다가 뭇매를 맞은 '아빠찬스'를 소재로 했다. 입상작 중 유일하게 '현실'을 파고들었고, 기득권을 비판하면서 균형감각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누구든 어떤 그림이든 '그릴' 수 있는 게 자유사회고, 필부의 사사로운 작품평은 여기까지다. 핵심 논쟁거리는 관(官)과 정치권의 모습이다. 국민의힘은 고교생의 그림 자체를 두고 2019년 영국 '더 선'지(誌)에 실렸던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총리 풍자 만평을 '표절'했다고 꼬집기부터 했는데, 지엽말단적인 데다 타겟도 잘못됐다.

문체부 대응은 조금 다르다. 부천만화축제 주최측인 만화영상진흥원에 '승인사항 위반' 책임을 묻겠다며 '엄중 경고'와 함께 부처 차원의 '후원 명칭 취소'도 거론했다. 진흥원이 공모전 후원을 요청할 때 '정치적 의도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작품' 등을 결격사항으로 정해놓고도, 실제 공모요강에서 누락시켰다는 게 요지다.

윤 대통령 복심이자 야당에서 '깡패 잡는다고 설치는 검사'라는 한동훈 법무장관도 야당 의원 질의에 입을 열었다. "표현의 자유는 넓게 보장돼야 한다", "다만 이 그림을 보면서 혐오나 증오의 정서가 퍼진 것 자체는 반대한다", "제가 심사위원이었으면 상을 줘서 이런 것을 응원하지는 않았을 것". 주최측을 외과수술식 타격한 셈이다.

반대쪽 관가와 정당은 어떨까.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고등학생 작품을 두고 문체부가 긴급하게 두 차례 협박성 보도자료를 낸다는 현실이 어처구니가 없다"며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가 다시 떠오른다. 그때는 밀실에서 이뤄졌지만 이번에는 아예 공개적으로 예술인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은 "문체부의 조치는 고등학생 수상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 것은 물론 향후 작품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쳐 수상자의 헌법상 창작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으며, 심사위원들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표현의 자유도 침해했다"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 이재명 당대표도 6일 '표현의 자유를 위한 만화 예술인 간담회'를 열었다.

주최측 편에 선 야당 소속 조용익 부천시장도 "카툰의 사전적 의미는 정치적인 내용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한 컷짜리 만화"라고 주장했다. 일명 '웹툰협회'도 똑같은 '카툰의 사전적 의미'를 내세워 "길들이기와 통제 차원에서 국민 세금을 제 쌈짓돈 쓰듯 자의적으로 쓰겠다는 협박"을 호소했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여전히 블랙리스트의 시대"라고 했다.

'글쎄올씨다'다. '사전적 의미'를 꺼낸 것부터 카툰(Cartoon)·웹툰(웹+카툰)이란 말이 쓰여온 '불문율'을 파괴한 게 아닌가. 카툰의 유의어로 '만화'가 적시돼 있고 만평이란 말도 존재하는데, '사전'부터 앞세웠다. 앞으로 모든 만화 공모전을 만화를 수단화한 당성(黨誠)경쟁의 장으로 전락시킬 건가. 대회에 '만평 공모전'을 따로 만들면 되지 않나.

불순한 목적으로 "국민 세금을 제 쌈짓돈 쓰듯" 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진흥원은 부천시 소속 재단법인이지만 문체부의 만화 관련 사업비(올해 102억원) 중 일부를 지원받는다. 공모전 대상(大賞)엔 '문체부 장관상'도 수여된다. 사업비는 국민 혈세에서 나온다. 관의 지원을 받았다면 '납세자'들이 공히 문제삼지 않을 결과물이 요구되는 게 상식 아닌가.

문체부는 학생에게 '윤석열차를 그리지 말라' 하지도 않았다. 그건 '개인의 자유' 영역이고 물건으로 치면 '내돈내산'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집권기에 문노스(문재인+타노스) 합성 풍자화를 돌려보는 네티즌을 "일베"로 몰았고, 청년단체가 이 풍자화 전단을 뿌리자 '불소추특권자' 대통령 초유의 모욕죄 고소와 2년간 보복성 경찰수사로 이어진 적도 있다.

불과 작년, 웃음소리를 '훠훠훠'로 묘사한 웹툰이 '문재인 대통령 비하' 시비 속 검열됐다. 집값 폭등에 '머리가 깨진다'는 묘사를 담던 유명 웹툰작가도 정치색을 문제삼는 팬덤에 휘말려 차기작 중단을 선언했다. 2020년 총선 직전 국토부장관·광주시장 얼굴을 여성 누드화에 합성한 현수막을 건물에 걸고 '미친 집값'을 규탄한 광주 40대 남성도 사법처리됐다.

시사만화가 처벌 사건도 있었다. 집회 중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의식을 잃은 뒤 300일 넘게 와병했다가 사망한 고(故)백남기씨가 가족의 연명의료 동의가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한 와중, 딸은 발리 휴양지에서 '아버지를 살려내라'라고 SNS에 글을 쓰는 모습을 그린 만화가 윤서인씨는 2020년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벌금 700만원형을 받았다.

이밖에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을 "공산주의자"로 말한 고영주씨를 민·형사 고소한 뒤 집권했고, 3심까지 끌다 패소했다. 이재명 대표는 대선후보 때 'n번방 방지법' 카톡 이미지 사전검열 논란에 "모든 자유엔 한계가 있다"고 했다. 2018년 경기지사 선거 토론 중 허위사실유포를 무죄로 뒤집은 '김명수 대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더욱 넓게 보장'한다고 했었다.

세금방석 위에서 외치는 표현의 자유?[한기호의 정치박박]
옛 학생운동권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를 풍자한 청년단체 신(新)전대협이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5월 전국 6개 광역시에서 살포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문노스(문재인 + 타노스)' 전단.<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자유에 따르는 건 '책임'이어야 맞지 않을까. 민주당은 주로 '관 주도' 행사에서 보수당 혐오 정치색을 띤 작품이 논란될 때마다 묵인하거나 표현의 자유 '지상주의자'처럼 대응해왔다. 올해 5월초 전액 광주 시비(市費)로 열린 민족미술인협회 광주지회 거리미술전엔 역대 보수정부 대통령과 신천지·일본, 윤 대통령 등을 엮어 희화화한 그림이 걸렸다.

광주시는 앞서 2014년 8월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에서 민미협 제주지회 소속 홍성담씨가 그린 '세월오월' 걸개그림 전시를 불허해 민주당 등의 비판을 샀다. 홍씨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얼굴을 한 허수아비가 김기춘 비서실장,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종받는 모습을 그렸는데, 주최측의 수정 요청에 박근혜 전 대통령 모습을 닭으로 바꿔놨다.

홍씨는 2012년 대선에선 박근혜 후보를 산모로, 그 선친을 신생아로 그려내거나 여성기까지 묘사하는 등 사실상의 선전화(宣傳畵)로 혐오 논란 중심에 섰다. 2017년 1월 표창원 당시 민주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최한 전시회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나체로 약에 취한 채 잠든 듯한 그림이 출품됐는데 이 또한 민미협 소속 작가의 것이었다.

'박근혜 블랙리스트' 비판은 어떤가. △2012년 문재인 대통령후보 지지선언 6517명 △2014년 6월2일 세월호 시국선언 754명 △2014년 박원순 서울시장후보 지지선언 1608명 △2015년 5월1일 세월호정부시행령 폐기 촉구 서명 594명 등 9473명은 2016년 10월 파문 당시 기사 제목을 단순 합산한 수준에, 이름조차 안 나온 사람도 3106명에 달한 것으로 기억한다.

얼마 전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총 84억5000만원 도·군 보조금을 받아온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지원 중단 의사를 밝혔는데, 문성근 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이 이사장이던 영화제 측은 곧바로 폐지를 알렸다. 문화예술계 일각에선 김 지사의 인식이 천박하다고 힐난한다. 그러나 표현·예술의 자유가 자생력없이 세금방석에 앉은 카르텔의 전유물이 되면 곤란하다.

표현의 자유가 불가침한 것은 '개인'과 '민간'이 각계에서 일군 사적영역까지, 그리고 타인의 인격권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여야 한다고 본다. 자발적으로 '전두환 모의재판' 벌였다고 인신구속 걱정하던 세상과 지금은 딴판이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색이 난무한다. 윤 대통령이 편승했던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말부터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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