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국민이 도구?… 희한한 정치권발 여론조사들

여론조사 급증에 현안조사도 봇물…곳곳 맹점
'통화녹음금지' 통비법 개정 물으면 반대 6할↑
발의자는 비동의녹음 '행위 찬반' 물어 아전인수
아이돌 병역특례 위인설법 여론몰이도 눈살
특정정치인 중심 신뢰·현실성 의문 조사도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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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정치박박] 국민이 도구?… 희한한 정치권발 여론조사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9월15일 UPI뉴스·KBC광주방송 의뢰 넥스트위크리서치 여론조사 결과를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자신이 보수정당의 안방 격인 TK(대구·경북)에서 차기 당대표로 가장 선호받았다는 입장을 암시했다. 사실상 지난 7월부터 공표가 이뤄져 온 넥스트위크리서치 여론조사는 정당지지율 분포 조사가 없어 '선거여론조사'로 분류되지 않아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등재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있다.<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페이스북>

[한기호의 정치박박] 국민이 도구?… 희한한 정치권발 여론조사들
지난 8월29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미디어트리뷴 의뢰 '통화녹음금지법' 법안 발의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 결과 그래프.<리얼미터 홈페이지>



요즘은 여론조사 홍수 시대다. 5~6년 전만 해도 대통령 국정수행과 정당별 지지도를 묻는 주례여론조사는 2~3곳에 그쳤다. 간간이 다른 여론조사업체의 월례조사, 주요언론사 등 주도의 특집여론조사가 덧붙여지는 식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2017년 초유의 조기 대통령선거, 문재인 정부 집권기가 이어진 뒤 양상은 다르다.

이 기간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2022년 대선에 지방선거 등도 거쳤다. 여야는 평시·전시개념 없이 부딪히게 됐고 여론조사도 선거의 '여흥'을 못 잊은 듯 쏟아져 나온다. 갈등수요에 따른 공급일까. 주례·격주로 대통령과 현존 정당 '점수'를 수시로 매기는 업체만 해도 한손에 꼽기 어렵다.

이 과정에 '선거여론조사'로 분류되지 않는 현안조사도 덩달아 늘었다. 굵직한 이슈들에 대한 국민 생각을 가늠해볼 지표들이 여러 곳에서 나오는 건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이젠 점점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커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드는 수준이다. 공교롭게도 '정치권'이 논란에 얽힌 조사들이 여러 가지 맹점을 드러내고 있다.

한달 사이 '통화녹음금지법'으로 불리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주제로만 세번의 여론조사가 나왔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18일 발의한 것으로, 내가 대화 당사자라도 '대화 상대 모두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는 행위까지 금지토록 조항들을 고치는 내용이다. '최장 10년 이하 징역' 등 처벌 대상에까지 이 행위를 포함시켰다.

3건 중 2건은 법안 발의나 법제화 찬·반을 물었더니 '반대'가 6할을 넘은 사례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29일 공표한 ARS 여론조사(미디어트리뷴 의뢰·503명·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포인트)에선 '상대방의 동의 없이 통화 내용을 녹음할 경우 최대 10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법안 발의에 찬성하나, 반대하나'라는 설문이 이뤄졌다.

'통화녹음이 내부 고발 등 공익 목적으로 쓰이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로 쓰일 수 있으므로 법안 발의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64.1%였다. '통화녹음이 협박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있을 뿐 아니라, 개인 사생활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법안 발의에 찬성한다'는 23.6%에 그쳤다. 선택지에 찬성 논리도 충분히 반영했지만 이 결과다.

한국갤럽이 지난 19일 공표한 무선 전화면접 기반 여론조사(중앙일보 의뢰·1007명·표본오차 ±3.1%포인트·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도 '상대방의 동의 없이 통화나 대화를 녹음할 경우 최대 10년까지 처벌하는 통비법 개정안'에 대한 설문 결과 반대 63.4%에 찬성 32.4%로 더블스코어 수준의 차이가 났다.

찬·반 선택지는 '사생활, 통신비밀을 보호해야 하므로 개정안에 찬성한다', '범죄증명, 내부고발 등에 필요하므로 개정안에 반대한다'로 각각 설정됐다. 리얼미터 설문에 비해 구체성은 다소 떨어졌지만 찬성이 오히려 높은 점을 미루어 큰 영향은 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위 2030 세대에서 개정 반대가 8할을 넘나드는 공통된 경향이 나타났다.

이에 '반기'를 드는 듯한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공교롭게도 윤상현 의원실이 자체 의뢰한 '통화녹음 국민여론조사 보고서'다. 한길리서치가 지난 6일 공표한 조사 결과는 무려 2000명을 조사(표본오차 ±2.2%·무선 ARS)했는데 상대방 동의없는 전화녹음 '반대'가 63.6%에 '찬성'은 29.5%에 불과하다는 다른 조사와 상반된 결과를 내밀었다.

그러나 이는 입법 여부가 아닌 상대방의 '행위'를 물은 것이다. 변주(變奏)하듯 8연속 꼬아 설문을 했다. 상대방의 내 동의없는 통화녹음, 나의 상대방 동의없는 녹음, 비동의 녹음의 처벌 찬반, 처벌시 벌금형-징역형 여부, 비동의 녹음 공개 시 처벌 찬반, 처벌 방식, 비동이 녹음의 재판 증거채택 찬반, 부패·갑질·(성)폭력 특정상황에 한한 녹음 및 공개…

비동의 통화녹음 행위 찬반부터 물어 일종의 '죄책감'을 준 뒤 '법적 처벌' 찬반으로 우회했다. 도의적 문제와 제도화 찬반을 뒤섞은 결과 처벌 반대가 41.5%로 낮아졌다. 윤 의원부터가 통화 폭로로 정치적 위기에 몰렸었고, 입법 토론회 패널이 별안간 '이준석-원희룡 통화' 진실공방을 들어 '원희룡(방지)법'으로 이름짓자 주장한 상황에 비춰 우연같진 않다.

현행 병역법상 올해 입대가 불가피한 멤버가 나온 방탄소년단(BTS) 병역특례 여론조사도 우후죽순이다. 대체로 대체복무 찬성이 60%를 넘나든다고 한다. 문제는 정부, 여·야 국회 할 것 없는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치는' 양상과 무(無)원칙, 병역부담을 지는 20대 전후 남성층의 강한 반발은 다른 성별·계층을 주류로 앞세워 외면하는 분위기다.

8월말 국방장관이 국회 국방위에서 'BTS 병역 여론조사'를 채근하는 야당 의원에게 "이미 지시했다"고 답했다가, 이내 뒤집었다. 하지만 여당 정책위의장이 병역특례를 설파하고, 국회 차원의 병역법 개정 여론조사까지 이어졌으니 '협치'지만 희한하다. 병역의무를 졌거나, 면탈로 지탄받은 연예인들과의 형평성 문제조차 뒤로 한 위인설법 시도 아닌가.

정치인 중심 여론조사들도 가려 봐야한다. 특정당 의사결정에 반대당 지지층을 포함시켜 찬반 평균을 낸다든지, 조사 신뢰를 담보할 요소가 빠진 경우가 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에 대한 당내 중징계(7월8일) 다음주부터 발표된 '넥스트위크리서치' 여론조사는 이준석·유승민 등 반윤(反尹) 인사들이 차기 당권 선호도 선두권이란 결과를 내왔다.

조사업체는 9월 무렵부터 홈페이지 운영을 본격화했다. 조사 초기엔 보수층 일각에서 업체 소재를 따져묻는 등 민감한 반응이 있었고, 한 시사평론가는 같은 곳에서만 7차례 설문 전화가 와 항의전화하려 했지만 연락처조차 못 찾았다는 후문이다. 내용 측면에선 민감한 여야 현안을 묻지만 정작 '정당지지율 조사'가 빠져, 여심위 미등록인 채 공표되고 있다. 현실과 거리가 멀어 묻는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드는 조사 사례도 있다. 지난 21일 공표된 한길리서치 여론조사(쿠키뉴스 의뢰·1000명·표본오차 ±3.1%포인트) 설문 중에는 '이 전 대표가 출당·제명 수준 재징계를 받을 경우 신당을 창당한다면'이란 이중가정 아래 지지여부를 물었는데 '지지한다' 35.9%, '지지안함' 56.0% 결과가 나왔다.

언뜻 '이준석 신당'이 거대양당 맞먹는 35.9% 지지를 얻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다만 기존 제정당과의 비교설문이 아니라, 각당 지지층이 발벗고 신당을 지지할지는 불분명하다. 탈당 후 창당여부 찬반을 물었다고 치더라도 대통령 국정 지지층에서 '지지안함'이 8할을 넘어 인과를 따지기도 쉽지 않다. 창당 생각 없다는 이 전 대표의 언행들과도 배치된다. 안철수 의원이 첫 '국민의당'을 창당(2016년 2월)하기 직전까지 '안철수 신당(가칭)'을 추가한 정당지지율 여론조사나, 2016년말 새누리당 탄핵찬성파가 이듬해 '바른정당'을 차리기 전 가칭 '개혁보수신당'으로 지지율 조사에 포함된 사례가 정석(定石)이라 할 수 있다. 이밖에 '국민의 도구'같은 태도가 아닌 '국민을 도구삼는' 꼼수가 횡행하는 걸 경계한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한기호의 정치박박] 국민이 도구?… 희한한 정치권발 여론조사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9월 5일 실시, 6일 발표한 통화녹음 국민여론조사 보고서 중 '상대방의 동의 없는 전화녹음 찬반' 설문 결과 그래프. <윤상현 국회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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