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에게 고견을 듣는다] 국회의원 직 미련없이 던지고 연구재단 설립… 사회문제 해법 찾는 `천성 학자`

정덕구 이사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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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에게 고견을 듣는다] 국회의원 직 미련없이 던지고 연구재단 설립… 사회문제 해법 찾는 `천성 학자`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고견을듣는다 인터뷰.



이슬기기자 9904sul@

[]에게 고견을 듣는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前산업자원부장관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지난달 30일 재단 설립 기념 세미나에서 "15년 전 성공을 의심했던 사람들이 다들 기적이라 한다"며 민간 독립 싱크탱크를 키워온 감회를 밝혔다.

2007년 돌연 비례대표 국회의원 직을 던지고 재단을 설립하게 된 것은 정 이사장의 학구적 품성에도 기인하지만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독립된 민간 영역에서 연구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재단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소명에서였다. 그렇게 해서 2007년 6월 순수 민간 독립 싱크탱크로서 니어재단(North East Asia Foundation)이 설립됐다.

정 이사장은 2000년 1월 산업자원부 장관을 끝으로 30년간의 관료 생활을 접고 연구와 후진 교육에 전념하던 중 여당의 권유로 국회의원이 됐다. 그러나 정치는 그의 천성에 맞지 않았다. 의원직을 내려놓고 중국 지인의 초청으로 중국 북경대에서 연구생활을 했다. 거기서 중화민족 굴기에 대한 중국인들의 결기를 느꼈다고 한다. 그것이 재단 설립의 주요 이유가 됐다. 대한민국이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여기에는 정 이사장이 1997년 외환위기 때 IMF협상수석대표, 뉴욕 외채협상수석대표로서 국난 극복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경험도 작용하고 있다.

민간 싱크탱크가 존립하기 위한 재정적 환경은 부박하기 짝이 없었다. 대기업들은 외면했다. 정 이사장은 주로 중소기업들의 십시일반 후원으로 니어재단을 운영해오고 있다. 한·중·일 동북아 평화와 미래 단일시장 가능성 연구에서는 주목할 만한 축적물을 갖고 있다. 세미나를 가진 후에는 꼭 책으로 발간해 많은 시민들과 결과물을 공유한다.

정 이사장은 미국과 일본의 지한파 지식인들 뿐 아니라 중국의 대표적 지식인들과 교류를 해오며 깊은 교분을 쌓아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유용딩 소장과 칭화대 후안강 교수, 북경대 린이푸 소장 등은 10여년간 강연과 세미나 등을 매개로 한·중 양국의 민간 브릿지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가 이끄는 니어재단은 니어와치포럼, 외교안보포럼을 운영하며 두 달에 한 번씩 세미나를 열고 있다.

△1948년 충남 당진 △배재고△고려대 상대 △위스콘신대 매디슨캠퍼스 경영학 석사 △1971년 제10회 행정고시 합격 △1994년 재무부 국제금융국 국장 △1996년 재정경제원 차관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협상 수석대표△1998년 재정경제부 차관 △1999년 5월~2000년 1월 산업자원부장관 △2000년 9월~2004년 4월 서울대 국제금융연구센터 소장 △2003년 9월~2004년 1월 중국 북경대 초빙교수 △2004년 5월~2007년 2월 제17대 국회의원 △2005년 9월 ~ 2008년 2월 중국 인민대 초빙교수 △2007년 6월 니어재단 설립 △2011년 1월~2016년 12월 국제회계기준재단(IFRS) 이사 △현재 니어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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