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 고견을 듣는다] "백신 수급 정보 지나치게 불투명… 국민에 모조리 알려줘야"

코로나 발생 초기 중국서 오는 외국인 입국금지 안해 확 퍼지지 않았나
야권 지지자 열망 담은 윤석열, 정권교체 힘 보태주시는 역할 해주셨으면
중도는 중심 잡는 것… 문제 해결·세상 변화 시킬 방법 찾는 것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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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 고견을 듣는다] "백신 수급 정보 지나치게 불투명… 국민에 모조리 알려줘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이슬기기자 9904sul@

[]에게 고견을 듣는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안철수 대표는 다양한 직업을 가졌었지만 현재 정치인 직업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벤처기업을 할 때 세상 바닥을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정치를 해보니 지하 10층도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소명의식이 있기 때문에 버티고 있고 그래서 힘들지 않다"고 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매니페스토(정치입문선언)를 않고 있는 데에 대해선 "정치에는 선언이나 말이 중요하다"는 말로 갈음했다.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좀더 편한 삶을 즐겼을 텐데 하는 후회는 하지 않으시나요.

"(웃음)저는 정치를 않더라도 다시 벤처기업 경영을 할 수 있고 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칠 수도 있고 의사로서 역할도 할 수 있고, IT전문가로서 관련된 역할도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도 제가 이렇게 힘들고 욕만 먹는, 명예만 실추되는 정치를 하는 데는 소명의식이 없으면 못 합니다."

-정치 해보시니까 힘드시죠?

"소명의식을 갖고 하니 안 힘듭니다. 저는 벤처기업이라는 말도 없었을 때인 95년,IMF외환위기 전이었으니까요, 벤처캐피탈도 없었을 때 중소기업을 했습니다. 그냥 중소기업 사장 한 거거든요. 한 10년 회사 경영하면서 세상에 사기꾼이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습니다.(웃음) 정말로 많더라고요. 비즈니스 하면서 저도 IMF도 겪고 '어음 깡'해서 겨우 버티고 은행에 대출 받고 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습니다. 저 말고도 안 겪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버틴 1세대 벤처기업들이 2, 3세대 벤처기업들의 길라잡이가 돼주었습니다.

"사실 IMF 이후 벤처들은 차라리 좋은 여건이었습니다. 그 이전에 창업한 사람들은 거의 다 저 같은 경로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을 다 안고 생각했어요, 바닥까지 다 경험했으니까요. 그래서 정치권에서 들어와서 뭐 새롭게 세상 경험 할 수 있나 생각했었는데요, 이게 바닥이 아니고 지하가 있더라고요.(웃음) 지하 10층까지 가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정치 입문 8년 반, 결코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는데 많은 경험과 이력을 쌓았습니다.

"거의 모든 선거를 당대표로 지휘하고 큰 선거에 출마하고 큰 성공을 이루면서도 실패도 했습니다. 실례될 수도 있습니다만, YS(김영삼 대통령)나 DJ(김대중 대통령)가 정치 8년 차일 때 경험하신 것과 비교하면 농축적 경험을 한 거지요. 제가 잘나서가 아니고 국민들이 기회를 주셔서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이 경험들, 작년에 대구에서 코로나 감염 한창일 때 의료봉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정치 경험뿐 아니라 의사로서, 벤처기업을 경영한 IT전문가로서, 대학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쌓았던 이 모든 경험을 국가를 위해서 쓸 수가 있으니 그게 제 소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경험이 젊어서 정치에 뛰어들어 쭉 정치만 해온 사람들과 다른 대표님의 차별점인데요.

"그 중에서 가장 안 쓰이는 게 어셈블리 프로그래밍 언어(assembly language, 컴퓨터를 작동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컴퓨터프로그래밍 언어)죠. 그거는 지금 어디 쓸 데가 없더라고요.(웃음) 'V3'(안 대표가 개발해 1991년 출시한 국내 최초 컴퓨터 보안프로그램)도 처음에는 어셈블리어로 만들었거든요, C언어도 아니고."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된 동기는 대중들에게 이미 재밌는 일화로 알려져 있어요. 어려서부터 컴퓨터 버프였나요?

"아닙니다. 어릴 때, 그러니까 PC가 처음 나온 게, 제가 대학교 들어가서 80년대 초 8비트 컴퓨터 애플2플러스가 처음 청계천에 복제품으로 나왔거든요. 본과2학년 그러니까 대학교 4학년 정도에 컴퓨터를 사실은 처음 접한 겁니다. 굉장히 늦었지요. 그때부터 독학을 시작해 나중에 어셈블리어를 터득했습니다."

-그래도 기초적 지식과 재능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나요.

"그게, 의대를 졸업하면 대다수가 환자를 대하는 임상 쪽으로 가는데, 저도 그랬으면 초기에 컴퓨터 접할 기회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병의 원인을 밝히거나 치료제를 개발하는 의약연구 쪽으로 가게 됐어요. 그 중에서도 제가 연구한 분야가 심장이었거든요. 그런데 심장이 다른 모든 장기와 다른 것이, 스스로 전기를 발생을 시켜서 저절로 뛰는 게 심장입니다. 그러니까 심장에서 발생되는 전기를 연구한 건데요, 그것을 제대로 잘 하면 부정맥 같은 것을 치료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관련 연구를 하다 보니 전기신호를 분석하려면 컴퓨터에 연결을 해서 분석을 해야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전용소프트웨어가 있을 리가 없죠, 처음 하는 거니까. 그래서 논문을 쓰려고 할 수 없이 컴퓨터 공부를 했어요."

-그것도 독학으로 하셨습니까.

"예, 제가 연구하는 소프트웨어도 제가 만들고요. 약간 더 들어가면 심장에서 일어나는 전기는 아날로그잖아요. 컴퓨터는 0과 1 디지털 아닙니까. 그래서 생체신호를 컴퓨터에 집어넣으려면 중간에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바꾸는 게 있어야 합니다. 그게 AD 컨버터입니다. 그건 어셈블리어를 모르면 제어할 수가 없어요. 이런 것은 기계제어계측학과 이런 데서 할 건데요, 그거 하다보니 어셈블리어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걸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됐을 때 1988년 박사과정 1년 차일 때 석사논문으로는 쓰고요. 박사과정 1년차 일 때 세계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였던 브레인(brain) 바이러스가 한국에 들어와서 그에 대응해 개발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전자기기에 관심이 많았다면서요.

"컴퓨터는 대학교 4학년 본과2학년 때부터 시작했지만, 사실 그 전부터 전자 쪽에 관심이 많아서 중학교 중1, 중2 때인가요, 그 때는 트랜지스터 나오기 전이라 진공관이 있었어요. 진공관 라디오 설계도를 구해가지고 그걸 갖고 뜯어봤습니다. 저는 부산에서 자랐는데요, 부산에도 남포동이었나 세운상가 같은 곳이 있었어요. 거기에서 부품들을 사가지고 조립해서 진공관 라디오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중2 때인가 트랜지스터가 나왔어요. 사이즈가 확 줄더라고요. 아, 그리고 그 전에 광석라디오를 만들었어요. 그 때는 오석, 그러니까 트랜지스터 다섯 개 라디오 등도 있었습니다. 제가 일렉트로닉스(전자공학) 공부는 사실 중고등학교 때 한 셈이지요. 그런데 의대를 간 거지요, 공대를 갔어야 하는 사람이.(웃음)"

-학생 때 얘기가 나온 김에 궁금한데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진 않았다고요?

"초등학교 때 중간 정도, 중학교 때는 반에서 5등 안? 처음 중학교 1학년 때는 반에서 10등정도 했습니다. 올라가면서 졸업할 때쯤은 반에서 5등 안에, 전교가 아니고요(웃음), 들었던 거 같아요. 그 다음에 반에서 처음 1등 해본 게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그랬습니다. 그 다음에 고3 때 전교 1등을 했습니다."

-학생 때 성적은 줄곧 우상향 패턴을 그렸는데, 정치도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학교를 1년 빨리 들어갔어요. 정확하게 들어가긴 했는데, 제가 생일이 62년 2월생이니까 그 전해 3월 생하고 한 살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초등학교를 들어간 거예요. 사실은 거의 한 살 많은 아이들하고 공부 같이하고 경쟁하니까 처음에는 좀 뒤쳐졌지요. 그러다가 조금씩 따라잡은 거지요."

-어렸을 때부터 축적한 독서력이 성장하면서 학습능력으로 발휘된 것이라는 말도 합니다.

"책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읽었고요. 그때만 해도 동네에 문학전집을 파시는 외판원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특히 회사 사업하다가 망하신 분들이 친척이나 친구한테 사달라고 하는 분들이 많아서 저희 아버님이 방학 때마다 문학전집, 열 권 내지 많으면 서른 권까지 있는 전집을 사셨어요. 한국단편문학전집 같은 거지요. 저는 그때 방학 내내 책만 봤습니다. 초등학교 때요. 카뮈의 '페스트'를 초등학교 5, 6학년 때인가 봤어요. 그 때 인상이 굉장히 깊게 배었어요. 처음에 감염병이 퍼져서 도시가 봉쇄가 되니까 사람들이 공포감에 휩싸이고 적응을 못 하는 거에요. 옛날 삶과 너무 다르니까. 그러다가 고생고생해서 의사도 죽고 나중에 봉쇄가 풀리니까, 또 환경에 적응을 못 하는 모습, 이런 게 기억에 남아있는데, 코로나19가 거의 비슷하게 전개되더라고요."

-정부가 백신을 조기 확보 못한 것이 뼈아픈 실책으로 지적됩니다.

"예, 그런데 V3로 치료가 된다면 좋을 텐데 안 돼서.(웃음) 제가 그동안 백신과 방역과 관련해 얘기 한 것만 말씀 드릴게요. 작년 1월 말에 처음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2월 초에 의학저널, 자마(JAMA, Journal of American Medical Association)라고 있어요. 거기 보니까 대만에서 초기 방역을 굉장히 잘 한 논문이 났더라고요. 대만이라는 나라가 인구가 2500만으로 우리나라의 절반 정도가 되는데, 1년에 중국과 왕래하는 숫자가 대한민국 왕래자보다 6배 정도 많아요. 그리고 전체 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우리는 약 30%면 거기는 50%나 됩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오는 모든 외국인 입국 금지를 한 거에요. 그래서 초기에 확산을 잡았어요. 그래서 제가 그 때 주장했던 게, 계속 문을 열어놓고 있길래, 최소한 중국에서 오는 모든 외국인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거든요."

-정부가 따르지 않았지요.

"그래서 우리나라가 불행하게도 중국에 이어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대규모로 확산된 나라가 됐어요. 초기에 우리가 대응을 잘 못했습니다. 저는 그때 알았던 거지요. 그때 대응을 잘 했으면 대구 코로나 확산도 안 생겼거나 최소화할 수 있었겠지요. 대만은 지금도 보면 누적확진자가 1100명이더라고요, 사망자가 아니고. 우리는 사망자가 그보다 많지 않습니까. 2000명 가까이 되잖아요."

-초기 해외 유입을 막지 못해 손해보는 것이 막대합니다.

"그렇죠. 초기 유입을 잘 막았으면 재난지원금을 쓸 필요도 없고요. 그리고 경제성장률도 높아지고 마스크도 안 쓰고 다니고…. 참 아깝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백신' 하면 대표님 아니십니까. 백신 조기 확보를 촉구하셨었나요.

"작년 5월에 제가 대구에서 강연한 동영상을 찾아보시면 나옵니다만, 그때 제가 한 얘기가 두 가지였어요. '아마도 올 겨울에는 코로나19 대규모 확산이 있을 거다, 그리고 또 백신이 빠르면 올 연말 나올 테니까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요. 그걸 저만 알았겠습니까. 전문가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니까 저도 알았지요. 그러니까 그때 외국 정상들이 누구에게 안 맡기고 개발 중인 백신에 연구비를 대는 겁니다. 그런데 연구개발이 실패할 수도 있고 돈 안 돌려주고 날리는 건데도 이 사람들이 전부다 그렇게 하더라고요. 선진 외국 정상들은요."

-문재인 대통령은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것이어서 그렇게 못 했다는 의미로 말합니다.

"그래도 그 중에 하나만 성공하더라도, 만약 한 달만이라도 코로나19 종식을 앞당기면 그 한 달의 사람 구하는 숫자나 경제적인 이득이 엄청나거든요. 그러니까 1조, 2조 때문에 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그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데. 미국 같으면 최근에 보니까 백신을 두 번 이상 맞은 사람이 1억 명 정도, 미국 인구가 3억 명 넘으니까 약 3분의1이고 한 번 이상 맞은 사람들을 따지면 절반 이상 될 겁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같으면 자기 여권 안 보여줘도 누구나 백신을 맞게 해주거든요, 불법 입국자까지도. 그게 당연한 것이 불법입국자들도 거기서 사는데 모두 맞춰야지 종식을 할 수 있으니까요. 미국은 또 남아가지고 인도에 갖다주고 있어요."

-정부는 백신확보에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보면 기약이 없잖아요. 몇 월에 어떤 종류의 백신이 몇 개가 들어오고 누가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자기 주민등록번호 처넣으면, 나는 언제 정도 예정이라는 게 검색이 돼야 하지 않나요? 그런 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 날짜일 필요가 없는 게, 중간에 긴급하게 추가계약을 해서 빨리 들어오면 날짜가 앞당겨질 수 있는 거지요. 그렇게 투명해야 하는 거고, 지금 데이터를 정부가 다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적인 제약사들은 1년 생산계획이 다 있습니다. 몇 월에 몇 개를 생산하고 어느 나라에 보낸다는 것이 있고 그걸 모든 나라에 알려줬기 때문에 일본 같은 경우는 달마다 국민들에게 알려주거든요. 안 알려주는 우리가 문제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순전히 국민이 이룬 성과인데, 정부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말도 안 되는 주먹구구식의 사회적 거리두기죠. 9시 영업금지를 하는데, 제가 그랬습니다. 코로나가 무슨 야행성이냐고, 밤 9시까지는 안 걸리다가 9시 넘으면 돌아다니냐고요. 비과학적인 기준으로 하고 있어요. 코로나와 관련해서는 참 할 말이 많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 종식 시점에서 5차 전 국민 지원금 필요성을 언급한 적 있습니다. 연말 대선 국면에서 또 지급할 수도 있을 텐데요.

"이번에 서울시장 부산시장 선거 직전에 재난지원금을 의도적으로 지원했지만 이제 국민들이 다 아는 것 같아요. 이게 정부 돈이 아니고 우리가 낸 세금을 받는 거니까 재난지원금은 받고 정당을 찍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로 보는 것 같아요. 현명한 국민들이 판단을 잘 한 거지요. 또 작년 총선 직전에 보편지급을 했잖아요. 저는 처음부터 반대했습니다. 급할 때는 물에 빠진 사람부터 구해야지, 코로나가 언제 종식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 돈 있다고 써버리고 고갈돼 버리면 그 다음에 답이 없거든요."

-대표님이 정치 입문해 초기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에 윤석열 총장이 정치를 하면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조언을 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최근 만나거나 통화한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5년 전에 2016년 비례대표 제안을 하느라고 한 번 같이 저녁을 먹은 적은 있었습니다. 선배 정치인이 소개를 시켜주셔서 셋이 만난 적 있습니다. 세 사람이 저녁을 먹었는데요, 그 이후에 만나거나 통화한 적은 없습니다."

-윤 전 총장이 아직 정치하겠다고 표명한 적은 없습니다만, 행보를 보면 국민들이 대선 출마에 뜻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트로이카가 돼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정치 하실 확률이 많다고 보고 있습니다만, 정치라는 것이 원래 본인이 선언하기 전에는 여러 가지 불확실성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선언이나 말이 중요하잖아요, 사람이 살아 갈 때.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데 결혼하자고 말을 안 꺼내면 결혼 못 하잖아요. 말을 해야 하는 겁니다."

-윤 전 총장에 조언을 하신다면.

"그 분이 정치를 하시든 하지 않든 지금 현재 정권교체를 바라는 야권 지지자들의 열망을 다 담고 있는 거대한 댐 역할을 하시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정권교체에 힘을 보태주시는 역할을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아직 그 분의 주의주장이 무엇인지 모르고 정치력도 확인된 게 없고 또 야권으로 나온다면 여권의 공세가 엄청날 텐데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본인의 몫입니다. 저도 2012년에 정치 시작할 때 바로 대선에 뛰어들었으니까요. 당연히 네거티브가 있고 여러 가지 국가의 다양한 현안에 대해서 대답을 강요받는 상황을 당연히 맞을 수밖에 없죠. 또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이, 정치를 하는 사람의 의무이기도 하고요. 찾아보면 아시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네거티브 공세들이 거의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었고요, 금방 해명이 다 됐습니다. 예를 들면 논문 표절했다고 MBC TV 9시 뉴스 톱으로 때렸어요. 그런데 그것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지고 MBC 사장이 저한테 사과까지 한 적이 있거든요. 2012년 9월에 제가 정치를 한다고 선언하자마자 가짜 뉴스를 공영방송이 한 거지요. 그 때 서울대학교 연구진실성위원회에서 표절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경력이 다양해서 무슨 이력에 대해 설명이나 해명을 요구 받을 때 헷갈리지 않습니까.

"저는 어떤 현안에 대한 답변에 있어서 나중에 문제가 됐던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노릇인데요. 아마 전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의학이라는 분야, IT 분야, 경영 분야, 그 다음에 또 학교에서의 교육 분야 전부 다 제가 직접 한 것이었거든요. 대한민국에서 중요한 영역들을 거의 다 포괄하고 있거든요. 거기에 포괄 안 되는 게 외교 분야가 있습니다만, 저는 외국 여러 군데에서 학교를 다녔거든요. 그러다보니 현안에 대해서 문제가 됐던 경우는 없었던 것 같아요. 아무튼 답변의 일관성과 진실성에 대해서는 순전히 윤 전 총장님 몫입니다."

-2018년 지방선거 후 또 해외에 나가셨잖아요.

"2018년 9월에 제가 현실정치에서 물러나겠다고, 정계 은퇴는 아닙니다만, 어쨌든 물러나겠다고 하고 독일에 갔습니다. 독일 막스프랑크연구소에서 1년 조금 넘게 13개월 비지팅 스칼라, 방문학자를 하다가 곧이어 스탠포드 로스쿨에 가서 비지팅 스칼라를 했습니다. 지금도 거기 소개 보면 제 이름이 나오거든요. 그 때 생각을 정리했어요. 제가 계속 정치를 할지 아니면 다른 분야에서 나라를 위해서 공헌할지 고민을 하면서 책 두 권을 썼습니다."

-마라톤 책도 쓰셨어요.

"저는 책을 집적 쓰거든요. 열 세 번째 쓴 책이 마라톤 책(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이고요, 열 네 번째 책(안철수,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은 독일에 있으면서 유럽 14개국을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 배웠던 교훈을 어떻게 대한민국에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비전을 스탠포드 로스쿨에서 정리해서 낸 겁니다. 저는 책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타입입니다. 저는 대필 작가를 쓰지 않고 직접 쓰는 사람이라서 처음에는 컴퓨터 바이러스 분석 책부터 프로그래밍 책, 수필집, 그리고 한동안은 경영학 관련한 책(영혼이 있는 승부)을 냈어요. 그러다가 마라톤 책에 이어 정치 쪽 책을 두 권 낸 셈이지요. 바로 정치하기 전에 낸 '안철수의 생각', 가장 최근에 낸 '안철수,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가 그겁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시고 귀국한 게 작년 1월이었나요.

"작년 1월 19일이었습니다. 제 이력에 19일이 많네요. 정치 선언을 한 것도 9월 19일이고요."

-대표님의 정치 슬로건은 '중도실용'으로 각인돼 있습니다. 좌우 양극단으로 갈린 상황에서 대표님의 중도실용이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까요.

"우선은 중도실용에서 중도에 대한 착각이 있습니다. 진보적인 정책과 보수적인 정책의 중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틀린 겁니다. 지금 현재 상황에 따라서 노동정책을 보수적으로 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고 대북정책을 진보적으로 해야 할 시기도 있는 것입니다. 대북정책에서 또 어떤 때는 보수적으로 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고요. 정답이라는 것을 양쪽 진영은 미리 갖고 있는데, 그게 현실에 맞는 경우도 있지만 틀린 경우도 상당히 맞습니다. 그래서 실용적인 접근이라는 게 필요한 거고요."

-최대한 정책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실용이라는 말씀인가요.

"가령, 경제 분야는 지금 현재는 진보적인 것보다는 보수적인 해법이 맞는다고 하면 그걸 택하고요, 안보정책에 대해서는 이것이 맞는다고 하면 그쪽을 택하는 겁니다. 어정쩡하게 중간에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둘 다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해법을 내는 겁니다. 그래서 중도라는 것은 중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중심을 잡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에만 관심을 집중해서 그 방법을 찾는 거거든요."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고 얘기하신 적 있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까.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을 사전을 찾아보시면 이렇게 나옵니다. '어떤 이상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거나 세상을 바꾸는데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는 것.' 전에 굉장히 단순화해 그렇게 말한 적 있어요. 단순화시킨 건데 지금 맞지도 않거든요. 지금 현재 정부가 취하는 정책이 진보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득주도성장정책이 진보 주류 정책이 아니거든요. 어쨌든 제가 추구하는 방향은 제대로 된 해결방법을 찾아야지 틀린 답이 섞여 있는데 몇 십 년 전 것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거기 오답이 더 많거든요. 그것을 붙잡고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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