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100년前 미국 대선도 시끄럽고 위험했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011/2020112602102269061001[1].jpg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100년前 미국 대선도 시끄럽고 위험했다")
대선 전후 흑인들 대상 끔찍한 일 많이 일어나
당선된 공화당 하딩 '역대 최악의 대통령' 1위에
우리나라도 '백열화한 선거전' 논란으로 시끌시끌
미국 대선이 끝났지만 여전히 분열과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전 세계는 이번 대선에 주목했다. 특히 한국은 안보, 외교, 경제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큰 관심을 보였다. 100년 전 우리 선조들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외교적 지원하에 독립을 이루자는 '외교독립론'을 주창하는 사람들도 있어 미 대선은 그 때에도 예의주시의 대상이었다. 당시 신문기사들을 보면 놀랍게도 100년 전 대선이 2020년 대선과 닮아있음을 볼 수 있다. 역사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근대뉴스다.
미 대선은 예나 지금이나 지구촌의 뜨거운 이슈였다. 100년 전 신문들도 지금처럼 미 대선에 큰 관심을 가지고 비중있게 보도했다. 1920년 10월 5일자 매일신보에는 "무거운 짐을 진 공화당 후보자 하-딩 씨가 지금 미국 여론의 중망(衆望)을 한 몸에 받아 대통령 당선이 거의 확정되었다는 소문이 있는 터이다"라는 기사가 실려있다. 그리고 한 달 뒤 1920년 11월 5일자 매일신보에 후속 기사가 게재된다. '하-딩 씨, 미국 대통령에 당선'이란 제목의 기사에는 "득의만면(得意滿面)한 새 대통령, 미국 공화당 영수 상원의원 하-딩 씨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민주당 영수 칵쓰 씨는 섭섭히 낙선되었고, 공화당의 대승리로 하 씨가 영광을 차지했다. 하 씨의 이 뒤 정계의 수완은 과연 어떠할까" 라고 쓰여 있다.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100년前 미국 대선도 시끄럽고 위험했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011/2020112602102269061001[2].jpg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100년前 미국 대선도 시끄럽고 위험했다")
100년 전 미 대통령 선거일은 1920년 11월 2일이었다. 야당인 공화당 후보는 워런 하딩이었고 여당인 민주당 후보는 제임스 콕스였다. 하딩은 고향인 오하이오주 부지사를 거쳐 당시 상원의원을 지내고 있었다. 하딩의 선거 구호는 100년 후 조 바이든이 외친 '정상으로 돌아가자(Return to normalcy)'였다. 전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추구했던 개혁 드라이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정책이었다. 하딩은 55세 나이로 29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당시 미국 남성의 평균 수명이 56세여서 그는 고령에 속했다. 그는 미국 '역대 최악의 대통령' 1위로 꼽힌다. 잘못된 인사 탓이다. 자신의 선거를 도왔던 고향 친구들을 대거 고위 공직에 앉혔다. '오하이오 갱'으로 불렸던 이들은 하나같이 비리 스캔들의 주인공이 됐다. 하딩 자신도 무능했고 도박, 여자, 술을 즐겼다. 하딩은 취임 2년 만인 1923년 심장마비로 재임 중 사망했다.
이처럼 미 대선은 전세계의 관심을 모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인종갈등의 모습은 선명하다. 올해 미 대선에선 흑인에 대한 경찰의 가혹행위로 촉발된 폭동사태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지난 5월 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관이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숨지게 한 사건을 비롯해 곳곳에서 인종주의적 사건·사고가 터져 미 대선판을 흔들었다. 흑인에 대한 가혹 행위는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인종차별과 백인우월주의는 100년 전에는 더 심했다. 대선 전후에 흑인들을 대상으로 끔찍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1920년 11월 9일자 매일신보에 '정의(正義)와 인도(人道)의 암흑면(暗黑面)'이란 제목으로 "백인들이 흑인 다섯 명을 불에 태워 죽였다"는 내용의 외신기사가 눈에 띈다. "지난 1920년 11월 2일 밤 미국 대통령 선거 투표를 마친 후, 한 시(市)의 투표장에서 백인과 흑인 간 쟁투가 일어나서 흑인 다섯 명이 불에 타 죽고, 여섯 명은 나무 위에 목을 매어 죽였더라. 그 까닭은 선거감독관이 '모-체투만'이라는 흑인 한 사람에게 인두세(人頭稅)를 못냈다는 이유로 투표를 못하게 거절한 즉, 그것으로 시작되어 백인 두 명이 흑인에게 사살되고 전 경찰서장 등을 비롯한 약간의 부상자를 내었더라. 이 싸움에 분(憤)이 생긴 백인단체는 대대적으로 사형(私刑, 사적처벌·린치)을 집행했더라. 다섯 명의 흑인을 집 안에서 태워 죽였고, 여섯 명의 흑인을 감옥에서 끌어내 목을 매어 죽였다더라."
남북전쟁이 끝나고 1870년 수정헌법 15조에 의해 마침내 흑인 남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 하지만 인두세(Poll Tax)와 리터랙트 테스트(Literact Test)를 만들어 흑인의 참정권을 제약했다. 인두세란 흑인의 투표권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흑인들은 2달러를 내야 투표용지를 받을 수 있었다. 1900년 코닥이 내놓은 카메라 '브라우니'의 가격이 1달러였으니 가난한 흑인에게 2달러는 정말 큰 돈이었다. 리터랙트 테스트는 투표할 만큼 기본지식이 있는 지를 측정하는 시험이었다. 기초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흑인들에겐 거의 통과하지 못할 관문이었다.
1926년 7월 8일자 신한민보 기사도 선거를 둘러싸고 해외에서 벌어진 폭동 소식을 소개하고 있다. '멕시코 선거에 폭동'이란 제목의 기사다. "멕시코 전국에서 거행된 상원의원 선거로 인해 폭동이 일어나 다수의 사상자를 냈다. 의원들이 살해되고 군대까지 출동하였다더라."
당시의 우리 선거 상황도 한 번 들여다 보자. 1920년 11월 21일 매일신보에 '백열화(白熱化)한 선거전'이란 제목으로 경성부 협의원(協議員) 선거에 관한 기사가 나온다. "요사이 며칠 전부터 경성부 협의원 후보자들이 여러 가지로 운동이 있는 모양이던 바, 지난 20일은 선거를 하는 날이었다. 선거자와 피선거자들은 남대문통 회장 부근에 모여들어 각각 천막을 쳐놓고 후보자의 이름을 남보다 더욱 크게 하고자 간판을 세워놓았다. (중략) 제각각 오고가는 사람들을 이끌어들이는 등 여러 가지의 운동이 진실로 백열적(白熱的)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부군면협의회(府郡面協議會)라는 기초의회 선거가 실시됐었다. 하지만 유권자의 자격은 제한됐다. 1년 이상 그 부(府)나 면(面)에 살고, 5원 이상의 국세를 낸 25세 이상의 남자만이 선거권을 가졌다. 국세 5원은 지금으로 치면 한달 월급이 300만원 정도 되는 사람의 근로소득세에 해당된다.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정야정자'(政也正者)라는 글귀가 있다. 즉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이란 뜻이다. 먼저 자신을 바르게 하고 그 바름으로써 백성들을 이끌어 나간다면 백성들이 어찌 바르지 않은 일을 하겠는가? 미국 대선이든 한국 대선이든, 또는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 선거든, 모든 선거가 '정'(正)에 따라 이뤄지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정'(情)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사단이 생기는 것이다. 앞으로 100년이 지나 2120년 미 대선이 끝날 때 우리 신문에도 좋고 아름다운 관련 기사들만 실리기를 축수(祝壽)한다.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