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인호 칼럼] `빨간약`을 먹다

우인호 디지털전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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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인호 칼럼] `빨간약`을 먹다
우인호 디지털전략부장
요즘 빨간약을 먹고 있다. 아니 강제로 먹히는 듯하다. 소독할 때 쓰는 빨간약, 머어큐로크롬액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99년에 개봉했던 영화 '매트릭스'의 모피어스가 키아누 리브스가 분한 주인공 네오에게 내밀었던 그 '빨간약'이다.

모피어스는 말한다.

"만약 빨간약을 먹는다면, 자네는 이상한 나라에 머물게 될 것이야. 그러면 내가 그 토끼 구멍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겠네. 명심하게, 내가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진실뿐이라네"(You take the red pill, you stay in Wonderland, and I show you how deep the rabbit hole goes. Remember, all I'm offering is the truth. Nothing more).

'매트릭스' 속 인간들은 인공지능에게 속박된 존재이지만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가상 세계를 실재라고 믿고 살아가는 존재다. 그러나 이것이 '거짓 세계'임을 먼저 깨달은 모피어스는 빨간약과 파란약을 제시하며 네오가 선택하게 한다. 빨간약을 먹으면 지금 완벽하게 보이는 아름다운 세상이 거짓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고 파란약을 먹으면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가상 세계를 잘 살아가게 된다.

아무런 일도 없이 그저 잘 살아가고 있을 우리에게 빨간약을 억지로 먹이는 사람은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정대협이 30년간 할머니를 이용했다"고 외치는 순간,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서게 됐다. 마녀사냥이라는 볼멘 소리도 있지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기억연대라는 가상 세계가 깨진 이상 진실을 찾아 어서 토끼 구멍에서 나와야 한다. 정의연의 회계문제라는 작은 진실보다는 이 역사적 진실을 어떻게 다루며 미래로 나아갈 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이용수 할머니가 이미 답을 제시했다. "저는 데모방식을 바꾸자는 거지, 끝내자는 게 아니다. 일본과 한국 학생들이 서로 왕래하면서 친해지고 (역사를) 배워야 안다." 할머니는 늘 빨간약을 드시고 계셨던 거다.

윤미향 당선인이 내밀었던 빨간약, 파란약보다 훨씬 색깔이 진한 빨간약, 파란약이 사실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애써 어느 약을 택할지 피하고 있지만, 무엇이든 먹지 않을 수 없다. '4·15 부정 개표 의혹'에 대한 얘기다.

어느 쪽이 가상 세계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사전 투표와 당일 투표를 선택한 유권자들 사이에 경향성이 있다고 믿는 자들은 지금 현재가 현실이고 부정개표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가상세계에서 넘어온 자들이다. 1000만 명이 넘는 모집단인 사전 투표가 당일투표와는 확연히 다른 경향성을 보이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믿는 자들에겐 180석에 가까운 여당의 의석은 조작된, 가상 현실일 뿐이다.

눈 앞에 놓인 두 약 중 아무 약도 선택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해결될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현재 상태대로라면 재개표가 이뤄져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출할 것 같은 우려가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 소홀'이라고 믿고 싶기는 하지만 인쇄가 한쪽으로 쏠린 투표지, 아래 여백이 긴 사전투표지, 전표처럼 두 장씩 붙어 있는 사전 투표지(한 장씩 프린트돼 나온다) 등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투표함 증거보전 집행 과정에서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부정개표 의혹 제기의 핵심인 서버, 분류기 등의 전자장비에 대한 증거보전이 거의 모두 기각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4·15 총선 결과가 진실된 세상이라고 보는 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 '총선 결과가 조작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실체를 보여주는 게 어떨까.

먼저 깨달은 사람인 모피어스는 빨간약과 파란약 둘 모두를 주고 네오에게 선택하도록 했다. 네오 스스로 빨간약을 선택했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했고, 매트릭스라는 가상 세계를 부쉈다. 빨간약은 상처에 발라야 하는데, 자꾸 먹으라는 현실이 불편하다.

우인호 디지털전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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