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잘못 꿰어진 단추` 브렉시트

최진우 한양대 정외과 교수·前한국정치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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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0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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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잘못 꿰어진 단추` 브렉시트
최진우 한양대 정외과 교수·前한국정치학회장
10월 31일로 예정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노딜 브렉시트'(No deal Brexit)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브렉시트 강경론자 보리스 존슨이 총리직을 승계하고 나서부터다. 존슨 신임 총리는 전임 테레사 메이 총리 재임 당시 EU와 합의한 영국탈퇴안을 거부하고 있다. 이른바 '백스톱'(backstop) 조항 때문이다.

이 조항은 EU에서 탈퇴하게 될 영국의 영토인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으로 남게 될 아일랜드 사이의 국경문제에 관한 것이다. 지금은 자유왕래가 가능한 이 국경이 브렉시트 이후 닫히게 되면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주민들의 불편이 커짐은 물론 1990년대 말까지 영국을 괴롭혔던 북아일랜드 신·구교도간 갈등이 재연될 수 있어, 전임 정부가 고심 끝에 국경 왕래의 자유를 유지할 수 있는 해법이 만들어질 때까지 영국의 완전 탈퇴를 유보한다는 데 EU와 합의했던 것이다. 존슨 총리는 이 조항이 영국의 의사에 상관없이 브렉시트의 실현을 무기한 가로막을 수 있다며 철회를 위한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EU 측은 아일랜드-북아일랜드 국경 복원은 수용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경문제에 대한 창의적 해법이 찾아지지 않는 한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언론에 유출된 영국 정부 문서에 따르면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 영국은 적어도 수개월 간 연료, 식료품, 의약품 부족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한다. 생필품 공급 차질로 국민들의 일상생활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 집값 폭락도 점쳐지고 있고 영국의 금융산업도 직격탄을 맞으리라는 예상이다. 이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한 것이라고 영국정부가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실제 상황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이미 몇달 째 정체상태고 파운드화 가치도 떨어지고 있다.



영국은 세 가지 선택지를 가지고 있다. 브렉시트 철회, 브렉시트 연기, 노딜 브렉시트 강행이 그것이다. 다 일장일단이 있다. 장기적으로는 브렉시트 철회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그렇지만 브렉시트 찬성론자의 거센 반발로 온 나라가 헤어나기 어려운 극한 대립의 늪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브렉시트 연기는 준비기간을 벌어준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결정이 미루어지면서 불확실성 지속에 따른 경제환경 악화 가능성이 농후하다. 노딜 브렉시트는 불확실성 제거라는 장점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단기적으로 큰 진통을 가져다줄 것이 분명하며 그 충격의 규모와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여전히 불확실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세 가지 중 어떤 시나리오든 영국이 맞닥뜨린 최대 도전은 결국 불확실성이다. 브렉시트가 이루어질지 아닐지, 어느 쪽으로 귀결되든 그 이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지극히 불투명하다. 불확실성의 증폭과 지속은 누군가에겐 기회가 될 수 있겠지만, 대다수 국민에게는 고통의 기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난세에 영웅이 날 수도 있지만 그 난세 동안 많은 민초들은 어마어마한 고생을 겪어야 한다. 예측가능성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지금까지 민주주의 발전사는 일반시민을 위한 정치의 예측가능성을 높여온 과정이었다. 과거에는 전제군주의 변덕에 따라 정치가 요동을 쳤다. 군주를 잘 만나면 태평성대를 맞이하지만 잘못 만나면 백성들은 죽을 고생을 해야 했다. 견제와 균형, 보통·비밀·직접·평등 원칙에 입각한 민주적 선거제, 대의제, 시민권 제도 등이 바로 정치의 자의성과 불확실성을 낮추고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다.

브렉시트는 아무리 봐도 잘못 꿰어진 단추다. 권력의 유지 및 획득을 위한 정치인들의 셈법에 따른 결과였다. 몇몇 정치인에게는 정치적 입신양명의 기회가 될지언정 이로 인해 영국사회는 불확실성의 무한 증폭이라는 큰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최대 피해자는 당연히 일반 시민이다. 잘못 꿰어진 단추로 인한 위기 상황을 부인·방관하거나 이를 기회로 이용하려는 무책임한 정치공학적 행태를 우리는 영국에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로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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