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재정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박종구 초당대학교 총장

  •  
  • 입력: 2019-08-29 18:19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시론] 재정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박종구 초당대학교 총장
내년도 예산이 513조5000억원에 달하는 슈퍼예산이 됐다. 내년 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500조원을 넘어서면서 GDP 대비 국가채무는 올해 37.1%에서 39.8%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적자재정에 대한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우려감이 증폭된다.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급속도로 식어가는 양상이다. 3대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 스탠더드앤푸어스, 피치는 2~2.1%의 낮은 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았다. 블룸버그는 국내외 42개 기관의 성장률 전망치 평균을 2.0%로 집계했다. 미국 경제가 경기 침체의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럽 경제도 독일의 성장 둔화, 영국의 노딜 블렉시트 가능성 등으로 혼조 상태다. 중국도 경기둔화 징후가 뚜렷하고 일본의 아베노믹스도 약효가 떨어지고 있다.

적극적인 재정운영으로 경기침체에 대응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슈퍼예산 편성은 재정 여건상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재정수지 적자가 심각하다. 상반기 정부 통합재정수지가 38조5000억원 적자다. 4대 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도 59조5000억원 적자다. 2018년 국가채무 비율은 35.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나 주요 선진국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다.

문제는 국가채무 비율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이다. 저출산·고령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문재인케어 실시에 따라 건강보험 관련 재정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가계부채 급증, 통일 대비 등 재정이 늘어날 요인이 수두룩하다. 저출산·고령화로 오는 2060년 복지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30% 선에 이를 전망이다. 2007-17년 OECD 32개 회원국 중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4번째로 빠르다. 라트비아, 룩셈부르크, 에스토니아 등 소규모 국가만이 우리보다 낮다. 기축통화국이 아니고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은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 건전 재정과 안정적 경상수지가 한국 경제를 외풍에서 지켜줄 안전판임을 유념해야 한다. 건실한 재정지표 덕에 98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세수 상황이 녹녹치 않다. 상반기 국세수입이 전년 동기 대비 1조원 감소했다. 법인세가 작년에 비해 2.2조원 더 징수되었지만 작년의 양호한 실적 덕분이다. 10대 그룹 소속 90개 상장기업의 상반기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54% 격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각각 70%, 84% 감소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법인세 비중이 높을수록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여준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법인세 인하를 고려해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도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선심성 현금 살포가 과도하다. 금년도 470조원 예산 가운데 보건·고용을 포함한 복지 관련 예산이 전체 예산의 34%를 넘는다. 2018년에 신규 도입된 복지정책 668건 가운데 현금성 복지가 446건으로 66.7%를 차지한다. OECD는 복지 지출을 제어하지 못하면 재정파탄에 이를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특히 지방 정부의 선심성 복지가 심각한 상황이다. 금년 지자체 예산 증액분 26조원의 절반이 복지 관련이다. 성남시는 3년전부터 연 100만원 상당의 지역상품권을 지급하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25.7%에 불과한 전라남도는 내년부터 농민 24만명에게 연 60만원씩 농민수당을 지급한다. 작년에 신설된 지자체 복지 중 현금 복지의 소요예산만 4300억원에 달한다. 기초자치단체 중 51곳은 복지예산 비중이 50%를 넘는다. 청년수당, 출산장려금, 육아수당 등 현금성 복지 경쟁이 갈수록 심화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중복지-중부담으로 나가야 재정파탄을 방지할 수 있다. 소득주도 성장과 세금주도 성장이라는 포퓰리즘적 정책 실험에서 탈피해 경제의 펀더멘털을 굳건히 하는 친시장·친투자 정책을 펴야한다. 규제개혁과 노동개혁을 통해 기업의 야성적 충동을 살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타날 단기적 경기침체와 실업 증가는 재정확충과 통화신용 확대로 대처해야 한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재정 여력이 있으면 성장잠재력을 키우는데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은 정부, 큰 기업이 윈윈 전략이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