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권보다 국가 미래가 더 중요하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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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0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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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권보다 국가 미래가 더 중요하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국가 간 경제 관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신뢰의 근본은 재산권보호이고 신뢰 보호는 지도자의 책무다. 당사국이 반발하는 재산 압류는 양국 간 신뢰를 파괴한다. 쿠바의 비극은 미국 기업의 압류에서 시작됐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지도자의 해결방식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카스트로(Fidel Castro)가 정권을 잡고 적폐청산으로 3000명 이상을 처벌한다. 정권의 이익을 위해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고, 미국 기업의 재산도 몰수한다.

미국은 대응 조치로서 쿠바로부터의 설탕 수입을 금지한다. 카스트로는 미국인의 재산권보호를 외면하고 소련과의 연대를 선택했다. 반미·친소 정책에 대한 반발로 카스트로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이 형성됐다. 카스트로는 수천 명의 반대세력을 학살하고 사회주의의 승리를 선언한다. 물론 미디어를 총동원하여 반미 운동과 정권 찬양에 몰두했다.

카스트로는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를 경제 관련 책을 썼다고 중앙은행 총재와 산업부 장관을 겸임하도록 했다. 체 게바라도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면서 경제를 살리기보다는 선전 선동에 매진했다. 산업부장관의 신분으로 웃통을 벗어 던진 채 노동자와 함께 벽돌을 나르고,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모습을 미디어를 통해 방영했다. 경제학적 지식도 없는 장관이 전략도 자본도 없이 생필품 가격 통제 등 사회주의 정책을 실시했다.

인민재판으로 정권은 강화됐지만 수십만 명의 국민은 쿠바를 떠났다. 144㎞ 떨어진 마이애미로 가는 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소련과 동구의 몰락으로 경제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자, 관광업을 활성화하며 농산물 직거래를 허용하고 미국 달러를 법정화폐로 지정하면서 생존을 모색했다. 카스트로 혁명의 빌미였던 미국의 관광객으로 지탱하는 수십 년 전 경제로 돌아갔다. 카스트로가 집권할 당시 쿠바가 사회주의국가가 될 것으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카스트로가 집권 초기 대외적으로 공산주의를 부인했지만, 정권의 반미 민족주의적 성격으로 쿠바는 공산화의 길을 걷게 됐다.

2018년 4월 대법원은 '강제징용 재판거래'에 관한 자체 조사를 시작했고, 6월 검찰에 관련 자료를 넘겼다. 7월 26일 언론은 양승태 행정처가 '강제징용 재판거래'에 총동원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서 '거래' '대가' '정황' 등의 용어가 사용됐지만 '거래'를 통해 전 대법원장이 개인적으로 얻을 수 있는 '대가'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10월 30일 '강제징용' 관련 일본 기업의 재산을 압류하는 대법원 결정이 내려졌다. 국가 간 갈등이 정치적 수준을 넘어 실체적 수준으로 악화한 계기가 됐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백색국가 목록'에서 제외한 것은 우리나라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은 고사하고 시대착오적 행태만이 벌어졌다. 심지어 한일 갈등 양상이 총선에서 여당에게 유리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는 한일 갈등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닌가.

1965년 한일기본조약의 틀이 흔들리면서 한·미·일의 안보체제도 흔들렸다. 러시아와 중국이 우리의 주권을 유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엄중한 시기에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폐기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국가 안보와 정권의 이익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남북경협으로 일본을 이길 수 있다는 식의 사고는 쿠바의 선택과 같이 매우 위험하다. 한일 경제 관계는 지고 이기는 관계가 아니다. 소재와 부품을 국산으로 대체하는 정책도 단기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정책들은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

불매운동은 시대착오적 행태일 뿐만 아니라 복잡하게 얽혀있는 국민의 생계를 위협한다. 한일 갈등을 불매운동으로 해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추기는 행태도 역시 국내 정치용이다. 정권의 이해관계를 넘어 문제의 핵심을 해결해야 한다. 우선 우리의 대북제재 조치와 관련하여 그동안 제기됐던 의혹을 철저히 해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체결했던 조약을 준수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조치들을 실행해야 한다. 정권보다 국가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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