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막말 정치`의 末路

최진우 한양대 정외과 교수·前 한국정치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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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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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막말 정치`의 末路
요즘엔 정치 관련 뉴스를 보기가 영 불편하다. 명색이 정치학자이고, 학생들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과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설파하면서 민주시민으로서의 책무를 거듭 강조해 오던 터인데, 지금은 정치판을 들여다보고 싶지가 않다. 쳇바퀴 같은 대립과 갈등의 끝없는 악순환도 싫고, 인신공격이 태반인 가시 돋친 설전을 지켜보는 것도 화가 난다. 유신도 겪었고 신군부도 겪었던 나로서는 오늘날 민주화된 우리나라가 너무나 대견하고 고맙지만, 그래서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에 깊이 감사하지만, 그래도 지금 정치판은 꼴도 보기 싫다.

시쳇말로 '막장 드라마의 끝판왕'이 돼버린 벌거벗은 권력 쟁투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정치혐오증이 절로 생긴다. 명색이 학생들에게 정치를 가르치는 선생이란 사람이 이렇게 험한 말을 그것도 언론에 이렇게 마구잡이로 쏟아내면 안 되는데, 참기가 쉽지 않다.

영국의 전 총리,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여사에 대해서는 영국인, 나아가 전 세계인의 호볼호가 갈린다. '영국병'을 치유한 영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영국을 두 개의 나라로 쪼개버린 신자유주의적 양극화의 화신이라는 비난의 대상이기도 한다. 엇갈리는 평가로 인해 대처 전 총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영전에 꽃을 가져다 놓는 사람도 있었지만 샴페인 잔을 치켜든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정치노선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대처 전 총리는 정치가로서의 능력과 소명의식에 대해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신념의 관철에 거리낌 없는 저돌적 추진력의 철의 여인 대처를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사실 별로 없었다. 하지만 12년 간 영국을 이끌며 나라 체질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대처 전 총리는 누구나 인정하는 대단한 정치가였다. 그랬던 대처 여사가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던 문구가 있다. "생각을 조심하라, 생각이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하라, 말이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하라, 행동이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하라, 습관이 품성이 된다. 품성을 조심하라, 품성이 운명이 된다."

좋은 생각을 하고 고운 말을 써야한다는, 유치원에서부터 듣던 이 이야기를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까맣게 모르는 것 같다. 여야를 가릴 것 없다. 막말 경연에는 너나없이 하나가 됐다. 정치권의 말이 갈수록 독해지고 있다. 독기와 살기가 번득인다. 상대에 대한 인정은 커녕 예의를 차리려는 시늉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관용과 포용은 간 데 없고 증오와 혐오, 경멸의 언어만 난무한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어린이들이 보고 듣고 배울까 무섭다. 왜 이렇게 됐는가. 어디까지 갈 건가. 정치인에게 품위와 온유함이란 진정 사치인가.

그리고 정말 궁금하다. 상대를 향해 쏘아댄 말의 화살이 다시 어떻게 되돌아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을 안 하는지, 공격적인 언사는 더 공격적인 언사를 부른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지, 독설과 막말로 상대를 진정 제압할 수 있다고 믿는지, 나름대로 의표를 찌르는 촌철살인의 명언을 구사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설마 그렇진 않겠지만, 이 사람들 혹시 독설과 막말로 스트레스 풀고 있는 것 아닌지, 유머감각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이 적대와 배척의 언어를 습관적으로 거리낌 없이 쏟아내는 이들은 어떤 품성의 소유자이고 앞으로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너무도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정치인 탓을 할 처지가 아닌 것 같다. 나 자신 지금 당장 분노의 언어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만 탓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 우리의 삶은 생각과 말과 행위로 구성된다. 생각과 말과 행위로 생업을 이어가고 선행을 베풀기도 하며 죄를 짓기도 한다. 내가 품고 있는 생각, 내가 뱉고 있는 말, 내가 하고 있는 행위가 무엇을 위한 것이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혹시 누군가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두려운 마음으로 돌아보기를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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