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아! 사법부여

[시론] 아! 사법부여
    입력: 2019-02-10 18:22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시론] 아! 사법부여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이기적 속성을 지닌 인간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으므로 인간은 도덕 규칙을 지키도록 훈육된다. 즉 인간은 자발적 동의에 바탕을 둔 도덕 규칙을 지키면 서로에게 이익이 되고 생존 기회를 높여준다는 사실을 장구한 세월을 살아오면서 경험적으로 체득한다. 사회 질서는 그러한 도덕 규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인간은 질서 유지를 위한 도덕 규칙을 지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유쾌한 감정을, 위반하는 행위에는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공통의 감정을 공유한다. 이를테면 남의 생명을 위협하고 재산을 약탈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불쾌감을 느끼며, 교통신호를 잘 지키고 여러 사람들이 은행에서 업무를 볼 때 순서를 지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유쾌감을 느낀다. 인간들이 그렇게 공유하는 감정이 곧 정의감이다. 이와 같이 도덕 규칙은 인간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자발적으로 지키도록 요구하는 비공식적 제약이며, 이는 정의감에 의해 지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곧잘 도덕 규칙을 위반하는 행위를 하는데, 그런 행위는 정부가 강제력을 가진 법으로 제어함으로써 사회 질서를 유지한다. 법은 도덕과는 달리 강제력을 가진 명시적 규율로서 공식적 제약이다. 그런데 법(law)은 위에서 말한 도덕에 그 뿌리가 있다. 법을 지칭하는 노모스(nomos)라는 그리스어는 도덕, 전통, 관습 등을 아우르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 질서는 도덕 규칙과 이를 지탱하는 정의감, 그리고 법적 규율에 의해 유지된다. 정의가 지켜져야 도덕 규칙이 지켜지고, 도덕 규칙에 더하여 법이 지켜져야 평화로운 사회 질서가 유지된다.

거꾸로 보자면, 사회 질서가 파괴되는 과정은 곧 정의감의 실종과 도덕 규칙 및 법적 규율의 붕괴 과정이다. 그리고 그것은 먼저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재산을 약탈하는 행위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민주정(民主政)에서는 법치는 실종되고 합법을 가장한 위선이 정의감을 삼킨다. 지금 한국에서 조세 정의라는 이름 아래 다수가 소수를 약탈하는 행위, 노동 3권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강성 노동조합의 이익 챙기기, 통치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정치권력을 이용한 파당의 이익 챙기기 등이 모두 그런 것들이다.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개인이나 집단을 적폐로 규정하는 사회에 정의감은 공유될 수 없다. 정의감에는 관용의 여지가 있지만 상대방을 동반자나 라이벌이 아닌, 적폐로 규정하면 관용도 사라진다. 정의감이 실종되면 도덕 규칙이 파괴되어 사회 질서 유지에 긴요한 한 축이 무너진다. 남은 것은 법 규율인데 사법부의 판결이 사회적 논란에 자주 휩싸이면 사회 질서 유지에 필수적인 다른 한 축도 무너진다.

삼권분립은 바로 이런 질서 파괴의 문제를 염두에 두고 부처 간 힘의 균형과 견제, 그리고 협동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삼권분립이 이뤄지고 있는 나라는 많아 보이지 않는다. 미국도 트럼프 대통령의 괴팍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독주에 의해 삼권분립이 위협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사법부는 중심을 잃지 않고 행정부를 적의(適宜) 견제하며 질서 유지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

한국의 사법부는 어떠한가? 질문하는 이유는 각종 정치적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을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신뢰하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사법부가 지금 한국 사회가 당면한 분열의 싸움판을 제어하기는 커녕, 도리어 어느 한 편의 도구로 전락하면, 한국 사회에 치유하기 어려운 넓고 깊은 생채기를 남긴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한국의 사법부는 존재 이유와 역할에 대해 스스로 준엄하게 질문하고 성찰해야 한다.

국가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국민은 특정 정권이 이와 같은 국가의 책무에 거스르는 국정을 하도록 위임한 적이 없다. 국가가 그 책무를 거스르는 경우에는, 국민은 보유하는 주권적 권리와 힘으로 정권에 불복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명백하게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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