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知性이 증발해버린 사회

[시론] 知性이 증발해버린 사회
    입력: 2019-01-03 18:06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시론] 知性이 증발해버린 사회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지성(知性)이란 각종 사물과 세상의 운행 이치에 대한 광범위한 배움과 이해를 바탕으로,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일컫는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은 지성이 모두 증발해버린 모습이다. 아니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지성의 결핍 사회가 이르게 되는 모습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의 지성의 부재와 결핍이 한국 사회를 끝없이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특정 개인이나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수의 인사들을 제외하면 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지성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 논거도 찾을 수 없거나 이미 죽어버린 공허한 이념이 지성이 있어야 할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오늘의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의 본질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1960년~80년대에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주로 중·고등학교 및 대학 입시와 행정고시, 사법고시, 기술고시 등을 비롯한 각종 시험을 관통한 세대들이다. 시험에서의 당락이 사람들의 인생 진로를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이런 저런 시험에 합격한, 이른바 엘리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지금 왜 이렇게 무지와 혼돈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시험을 관통한 세대이다 보니 공부는 의당 시험에 맞춰졌다. 문제는 투명성과 객관성이 시험의 원칙이 되다보니 개인의 주관적 사고방식이나 지식의 깊이보다는 만인이 동의할 수 있는 형식적이며 수박겉핥기식 지식을 묻는 것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지성 능력은 시험에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가진 자부심은 가득하지만 지성적 능력은 별로 갖추지 못했다. 사회 문제에 대한 이해 수준이 부끄러울 정도의 전문가들도 많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를 끝내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지금의 한국 사회는 지성이 텅 비어버린 지적 공황 상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아픈 현실이다. 지금의 교육도 그러하다면 한국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성의 공백에 따른 무지와 혼돈의 세월을 겪어야 할 것이다.

누가 뭐래도 한국 사람들은 두뇌가 우수하고 근면하며 끈질긴 성격을 지닌 소유자들이다. 그 덕분에 6.25 동란의 잿더미 위에서 오늘의 빛나는 한국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런 한국이 지금 빛바랜 영광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따라 잡기'에 성공하여 부강해진 한국 사람들이 그에 걸맞은 문명사회의 형성과 운행 질서를 깊이 이해하고 행동할 줄 아는 지성적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성적 능력이 결핍된 인사들이 주도하는 사회의 치명적 결과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질곡의 구렁텅이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그런 인사들은 인류가 오랜 기간을 살아오는 과정에서 발견된 지식과 형성된 도덕 등의 경험적 요소들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스스로 만든 터무니없는 가공의 세계에 갇히기 때문이다. 일천한 이성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 되려면 지성적·문화적 분위기에서 많은 관찰과 경험, 그리고 사고하는 시간을 탐구하는 자세로 보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인내하며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다음 세대를 위한 지성적·문화적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래야 세대를 거듭하면서 축적된 지성과 문화적 소양을 겸비하고 세상사를 두루 살피며 사고할 줄 아는, 미래의 한국을 위한 지혜로운 두뇌들이 많이 나올 수 있다.

가치의 다양화와 개성과 창의의 시대에 지성적 능력이 결핍된 인물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에는 적합하지 않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그러나 정작 세상의 운행 이치를 모르는, 이른바 입지전적 인물들이 항상 평화로운 세상을 어지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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