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
![[디지털산책] 헬스4.0 맞을 준비 돼 있는가](http://contents.dt.co.kr/images/201802/2018020202102251607002[1].jpg "[디지털산책] 헬스4.0 맞을 준비 돼 있는가")
기술의 발전은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기술의 급격한 발전에 따라 전통적인 것들의 중심이 달라지고 있다. 2008년 스마트폰과 3G 네트워크가 소개된 이후 10년 만에 휴대폰의 주 기능은 더 이상 음성통화가 아니다. 의료 영상 진단 분야도 2000년도 이전까지는 전통적인 필름 인화의 방식을 이용했지만 이제는 디지털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이용한 의료영상전송시스템(PACS, Picture Archiving Communication System)을 중심으로 진료가 이뤄진다. 이런 변화의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데이터의 생산과 공유, 그리고 효율적 활용이다. 이와 관련된 인간의 욕구는 매우 강렬하다.
기술의 변화에 따라 단계를 나눈 것이 Version(판, 版)이다. 인터넷 기술이 맨 처음부터 지금과 같지 않았다. 넷스케이프(Netscape)라는 매우 투박한 소프트웨어에 그래픽 파일과 텍스트를 읽을 수 있다는 것에 열광하던 지금 HTML5라는 기술로 무장한 멀티미디어 홈페이지가 고해상도 동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의 웹(Web), 네트워크 기술은 단순히 정보를 읽을 수 있게 게시하던 web 1.0, 댓글을 쓰고 독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가능하게 만든 web 2.0을 거쳐 사용자들이 적극적으로 웹페이지의 데이터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기능을 지닌 web 3.0 단계에 사회관계망서비스(Social Network System)이 가세한 실시간 지금의 웹 서비스에 이른다.
의료도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분류한 것이 헬스 1.0 부터 헬스 3.0이다(Deloitte, Health 3.0, Healthcare for the new normal, https://www2.deloitte.com/lu/en/pages/life-sciences-and-healthcare/articles/healthcare-3-0-new-normal.html). 단순히 아픈 사람이 병원을 방문해서 치료받던 1.0 단계를 지나 지금은 환자(의료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하여 진료행위에 참여하는 3.0 단계가 web 3.0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도입됐다. 인터넷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헬스 3.0은 완전히 구현되지 못한다.
의료행위는 인간의 생명에 영향을 주기에 처절한 검증과정이 필요하고 정책과 법을 바꾸는 과정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 기술은 이미 멀리 앞서 발전해버려 검증 중인 기술이 인정되는 시점에는 이미 기존의 기술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많은 전문가가 열심히 기술을 개발하고 검증을 받으려 하는 순간 이미 그 기술은 필요 없는 것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최근 대두되는 블록체인 기술, 양자 컴퓨팅 등이 일반화될 가까운 미래를 생각한다면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존의 헬스 3.0은 의료소비자와 의료전문가, 그리고 정책 입안자의 실시간 연결을 통해 최적의 개인맞춤형 의료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제는 그 개념에 4차 산업혁명의 주요 대상인 ICBM(사물인터넷,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기계학습)을 적용한 최적의 실시간 의료서비스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헬스 4.0(Health 4.0)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헬스 4.0은 4차 산업혁명의 대두와 함께 제안됐다(Christoph Thuemmler, Chunxue Bai, Health 4.0: How Virtualization and Big Data are Revolutionizing Healthcare, Springer 2017). 개인맞춤형 의약품, 정밀의학, 알파고 제로의 신약 연구, 의료인공지능 왓슨의 등장을 보면 이미 시작됐다. 전통적인 보건의료 분야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로 재해석을 적용하는 과정이다.
새로운 기술은 처음에는 매우 불완전하지만 점차 새로운 지식(데이터)을 습득하고 다른 기술을 융합시키면서 완성체가 된다. 과거와 다른 점은 그 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프로그램 코딩을 하고 오류를 스스로 교정해 나가는 상황에 논의와 고민만 하고 있다면 기술을 주도하지 못하고 종속되는 불편한 미래를 맞이해야 할지 모른다.
헬스 4.0을 공공 의료 서비스 제공의 도구로만 사용할 것이라면 적극적인 기술 개발과 선도 노력은 불필요하다. 글로벌 대기업과 선진국들이 개발한 기술을 검증하고 도입해 적용하는 것이 비용대비 효율에는 매우 적합하다. 하지만 보건의료는 공공 서비스에 국한된 분야가 아니다. 생산업 관련 직업이 로봇에 의해 빼앗기는 미래에서 보건의료 분야는 중요한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서비스 산업이 경쟁력을 가지게 된 이유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중시하는 가치에서 찾을 수 있다. 빨리빨리, 정확하고 확실한 결과를 보다 저렴하게 제공받고, 오래된 것 보다 새로운 것을 선호하는 가치에 서비스 산업이 적응하면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한 것이다.
의료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의료서비스의 비용이 낮아져도 빨리빨리, 정확하고 최신의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의료소비자들이 만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 건강이라는 기본적인 요구 분야(의료보장)는 헬스 4.0을 적용한 효율적인 공공서비스로 확보하고 기타 분야(첨단, 미래 의료)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위해 철저한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 가능하도록 하는 정책수립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종속될 것인가 주도할 것인가가 결정되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우리에게 시간을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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